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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주의와 박애주의

by 이매송이

대학 때 별명 중 하나가 <임박애>였다. 세상 모든 것에 사랑을 느낀다며 독문과 친구인 <김염세>가 지어

주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영어회화 교양 수업이었는데, 지각을 하면서도 풀-착장을 하고 오는 내가 특이 했다고 한다. 우리는 이름이 같았다. 둘 다 영화를 좋아했다. 따로 말하지 않아도 부국제나 전주에서 마주치곤 했다.

박애주의와 낙관주의는 동일어가 아니다. 나는 많은 걸 사랑 했으나, 실패를 먼저 생각하고 시작 하는 사람이었다.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박애와 염세를 오가게 되었지만, 단 한번도 낙관적으로 삶을 살아 보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내가 <낙관주의자>라고 한다. 말 만 앞에 두고 막상 필요한 요소들은 “어떻게든 된다.”로 후려친다고 말한다. 현실적이지 않다고도 한다. 늘 쫓기듯 사는 내가 낙관…낙관주의자라니… 단 하루도 쉴 수 없는 나를… 아직 몰라도 한참 모르는 모습에 눈물이 난다.

순간 마다 열심을 하면 어떻게든 된다. 그러나 계획을 미리 세워 두면 어느 부분에서 바람이 샌다. 닥쳐서 해결 하려는 게 아니라, 그때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면 적어도 실패 없는 결과가 나온다. 플랜 비, 플랜 씨는 한번에 무너질 수 있지만, ‘난 이것을 할 거야.’ 하고 눈앞에 놓인 돌들을 건너다 보면 종국엔 다다르게 된다. 그게 언제일 지는 몰라도 구덩이에 빠지지 않고 도착한다. 적어도 나는 그런 사람이다.

그는 ‘그래서, 그 다음은? 다다음은?’ 하고 반격 한다. 나에게 인생은 펼쳐지는 것이지 퀘스트를 깨는 게임이 아니다. 그 시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다 보면 언젠가는 기회가 주어 졌다.

영화 [기생충]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지 알아? 무계획이야. 노 플랜(No plan). 왜냐, 계획을 하면 반드시 계획대로 안 되거든 인생이.’

더 넓은 세계에서 많은 경험을 하며 일하고 싶다는 당신의 말을 이해 한다. 나도 20대 때 그랬으니까. 서른 보다 마흔이 가까운 나이에 한국에 살고 있을 거라는 미래는 내 머릿 속에 없었다. 당연히 이매송이는 해외에 있을 거라고, 그게 더 어울린다고 주위에서 부추겼지만(부정적이게 받아 들이지 않았다.) 이렇게 흘러 왔고, 후회는 없다. 당연히 아쉬움은 남지만 내 것이 아니었다고 보내 버리면 된다.

그는 아직 나의 집요함을 모른다. 그가 떠난다면 나는 어떻게든 따라갈 수 있다. 그리고 그곳이 어디든 살아 남을 수 있다. 대책 없는 계획이 나은 것인지, 러프한 계획 속 열심이 나은 지는 우위를 가르는 문제가 아니다.

지각은 해도 결석은 하지 않고, 한껏 꾸미면서도 왕복 5시간을 6년 동안 통학 했던 나다. 일산에서 양재까지 하이힐에 정장을 입고 통근 했던 것도 나다. 매일 압구정에서 막차 시간까지 야근을 하다가 텅 빈 지하철 좌석에서도 일했다. 주 5일제의 시대에 살면서, 대부분의 날들을 주말에 자의로 출근 했다.

그는 내가 과거의 이야기를 혼자서 떠들고, 당신의 얘기를 들어 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말을 좋아하는 내 성정에도 있지만, 지금의 나를 신뢰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증거를 내미는 것이다. 나를 멋지다고 하면서도 실상 나를 약하게 보는 그에게 말이다. 아픈 것과 약한 것은 다르다. 이 중요한 사실을 그는 아직 모르는 듯 하다. 힘들고 지친다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다. 그러니 제발 이제 나를 믿어 봐. 가장 가까이 있는 그녀의 확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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