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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5일과 26일, 27일

by 이매송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갑자기 일어난 지진 같은 것이라고 그가 말했다. 일 년을 가까이 노력 했으나 그 수고가 0으로 돌아가 버린 거 같은 느낌에 힘이 빠진다고 하였다. 그런 사람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일 월은 나에게 가장 잔인한 달이다 신춘문예가 떨어진 것을 인정해야 하고, 설날이 있기 때문이다. 가족이 없는 나는 가장 고독한 한 달을 보내야 한다. 물론 가끔씩 볼 수 있는 조카가 있다. 그 계기로 아주 가끔 ‘나에게도 가족이란 게 생길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나마 핏줄이란 걸 느끼게 해 주는 것은 조카의 얼굴과, 나의 첫사랑 막내이모 뿐이다.

한때는 내가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생각 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가상의 무엇이었다. 겉으로 나는 자아가 강하고 진취적이고 혼자서 잘 살아 낼 수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것, 공허함을 채우려 이리저리 헤매며 사람들의 감정을 뽑아 먹고 살았다. 뭘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정확히 아는 것은 맞으나, 그것은 나를 보호하기 위해 생긴 어떠한 벽이지 내 안 속에 잘 자리잡고 자라나는 이고는 아니다


나는 아마도 생각과 말에 잡아먹힌 것 같다. 그나마 살아 남은 것은 글이다. 나 스스로도 버거울 정도로 다양한 생각이 입밖으로 나오게 되면 어떤 누구라도 지쳐 나가 떨어질 것이다. 평온함, 평안함, 안온함 이런 것들이 내 생에 한번이라도 스쳐지나 간 적이 있는가… 아니 없었다.



내가 기대한 서른 일곱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피아노를 치는 사람,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 라디오 방송작가, 소설가, 시인, 그냥 글 쓰는 사람… 이런 형태로 변해 왔던 것 같은데 지금의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 같다. 한때는 20대 중반에 결혼해서 아이를 많이 낳고 사는 게 꿈이었을 때도 있었다. 지금은 상상조차 못하지만 그때 나는 탈출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방법이 결혼 밖에 없다고 생각 했었고 그것이 옳지 않다는 걸 깨달았을 때 이미 나는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오늘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휘발 되는 말은 없다고. 그 누구의 이야기도 상대방의 몸 속에 다 박혀 있을 거라는. 빨리 말하든 천천히 말하든, 많이 말하든 적게 말하든 그 흔적은 다 남게 되는 것 같다. 꼭 해야만 하는 말 만 하자는 사람이 있었다. 옛날에 나는 이 의견을 온몸으로 부정 했겠지만, 오늘의 나는 그렇지 않다. 솔직한 것이 착한 것은 아니며, 착한 것이 솔직한 것도 아니다.


의식의 흐름 대로 쓰다 보니 내가 왜 첫 문장을 쓰게 되었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것은 나만의 일기 그러나 누구라도 볼 수 있는 그런 일기. 사람은 일기를 쓸 때도 거짓말을 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래 본 적이 없어서 어쩌면 다행인 지도 모른다.


캐나다에 사는 나의 친구는 약혼자와 여전히 다투고 산다고 했다. 나처럼 사랑에 늘 고파 헤매던 언니는 곧 결혼을 앞두고 있다. 나의 따뜻함을 지켜 준 이들을 조만간 만나게 될 것이며, 저 멀리 네덜란드에서 사는 그녀는 나에게 좋은 어른을 소개해 주고 싶다 하였다. 생일, 참 저주 했었다. 태어나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그래서 어제 나는 너무 불행 했고, 오늘의 나는 불행하지 않았다. 1월 25일 이라는 핑계로 많은 연락들에게 솔직해 질 수 있었다.


이제 그만 떠들어야겠다. 사실 말하고자 하는 게 뭔지도 모르겠다. 그냥 하루의 감정을 기록한 그런 그저 그런 그저 그렇고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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