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오늘도 쓴다.
아주 예전에도 썼던 기억이 있다. 행복의 반대는 불행이 아니라고, 그 둘은 각자 다르게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내가 지금 아픈 이유를 2019년과 2020년에서 찾았지만, 돌이켜 보니 치료를 시작했던 2021년과 치료만 했던 2022년이 더 괴로웠다. 두 해는 하나로 합쳐져, 지금 나에게는 일 년의 기억이 전혀 없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19,20년이 고됐던 것은 사실이나 동시에 넘쳐 흐르는 사랑을 받았다. 나는 전혀 주지 않았는데 너무 많이 받아 버렸다. 아주 귀엽고 무거운 사랑이었다. 나는 아무 동력 없이 가만히 있던 아주 나쁜 계집애였는데 분에 넘치게 주는 이들이 있었다. 나를 살 수 있게 해 주고, 내 아픔을 완벽히 숨겨 주었다. 불행했던 나를 동시에 행복하게 해 주었고, 불안한 나를 안정 시켜 줬다. 자꾸만 말라가는 나에게 그네들의 체력과, 돈과, 마음을 너무 크게 떼어 내어 내게 붙여 주었다.
나에게 사랑은 더 하고 덜 하는 게 아니다.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는다.> 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랑한다.” 와 “사랑 했었다.” 다.
이 정의가 당연하다고 믿고 살아 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심장을 내가 갉아 먹었기 때문이다. 존재만으로 사랑 받을 수 있는 경험을 그 시기에 오롯이 했다. 사랑 받고 자란 척, 착한 척 연기하지 않아도 됐던 때다. 말도 안 되는 내 짜증과 화와 변덕이 당신들의 탓이라고 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내멋대로 살았고, 깊게 숨 쉴 수 있었다. 사랑 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끊임없이 사랑을 주었고, 혹시 받기만 하는 내가 미안해 할까 봐 온갖 이유를 대며 지켜 주었다.
나라는 존재가 누구에게 행복이 될 수 있고, 내 짜증이 귀여움으로 보일 수 있고, 내 화가 당연하다고 느끼게 해 주었다. 내 변덕이 매력이라 하였고, 툭하면 늦는 나를 단 한번도 나무라지 않았다.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 눈물을 흘려 주었다. 내가 과거의 일을 다시 쓰는 이유는 약 부작용으로 점점 잃어가는 내 기억력 때문이다. 내가 사람 답게 살 수 있게 해 주었던 몇 몇을 잊고 싶지 않아서다.
난 상대방을 보러 2시간을 가든, 4시간을 가든, 6시간을 가든 힘들어 하지 않았다. 그들도 그랬기에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그 2년은 내 인생에서 매우 바쁜 축에 속했기 때문에, 왕복 다섯 시간을 가도 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데도 아니 심지어 못 볼 것을 알아도 몰래 선물과 편지를 두고 가는 사람들이었다. 나도 그게 무슨 마음인지 알았기 때문에 고맙기 보단 귀여웠다.
2025년 3월 17일, 지금의 나는 그게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 아니며, 여러 명에게 그런 순수한 사랑을 일방적으로 받았다는 것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안다. 이미 늦었다. 감사 인사라도 했어야 했다. 적어도 상대에게 조금이라도 돌려 주어야 했다.
‘했었어야 했는데’ 는 구리고, 소름끼치고, 부끄러운 짓이다. 나는 내가 착하지 않은 사람이고, 신이 있는 걸 믿을 수밖에 없다고 고백하고 있다. 신이 아니라면 나에게 항상 존재하던 사랑-결핍을 핏줄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줄 수 없다. 아무런 대가 없이 이렇게 광활하고 깊은 사랑을 준 사람을 하나가 아닌 여럿을 만났다는 건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 하다.
대학 6년의 기억으로 내가 아직도 사랑을 가장 높은 생의 가치로 느끼며 살아간다면, 그 증거는 위에 말한 선한 인간들이다. 친구라고 하기엔 내가 너무 보잘 것 없고, 준 게 없다. 그리고 난 선하지 않다. 어떤 이들은 쉽게 눈치 챈다. 내가 착하지 않아서 착하려고 노력 하며 산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사랑 받고 자라지 못해서 사랑만 받고 자란 사람처럼 연기 한다는 것을. 그러나 비난 하지 않았다. 그게 고마웠다. 생각해 보니 눈치 챈 친구들 모두 글을 썼다.
나는 이제 그들을 만나 직접 사랑을 나눠 줄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종국에 이르러 책을 내게 되고 그것이 그들의 눈에 띄게 된다면 적어도 얼마의 부채감은 덜 수 있을 것 같다.
너네 덕분에 내가 살 수 있었다고, 너네 덕분에 내가 사람인 적이 있었다고, 너네 덕분에 내가 솔직할 수 있었다고, 너네 덕분에 내가 눈치 보지 않아도 됐던 때가 있었다고, 너네 덕분에 내가 악몽을 꾸지 않을 수 있었다고, 너네 덕분에 내 눈물이 마를 시절이 있었다고, 너네 덕분에 숨을 쉴 수 있었다고, 너네 덕분에 내가 많은 재능을 가진 사람인 걸 알게 되었다고, 너네 덕분에 내가 아직 죽지 않았다고, 다 너네 덕분이라고.
그래서 오늘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