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놓지 않는 사람이니까
요즘 다시 면접을 보러 다니고 있다.
무멋을 그만 두고, 가게를 판 돈으로 내리 먹고 읽고 쓰고 쌌다. 그러다 보니 잔고는 떨어져 있었다. 그래도 3년은 일을 하지 않고 글만 읽고 쓰고 싶었는데, 아무리 적은 소비를 해도 벌지 않으니 통장은 쉽게 가벼워졌다.
그래서 다시 일을 시작 했다. 처음에는 주 3일 4시간 그 다음은 주 5일 5시간, 주 5일 6시간, 그러다 주 7일 7시간까지 와 버렸다. 마지막 일터는 주 5일 7시간 40분 이었고 실제 일하는 시간은 8시간이 넘었다.
먹고 사는 일과 읽고 쓰는 일의 비율이 0:100에서, 90:10, 80:20, 70:30, 60:40, 50:50… 이렇게는
안 되었다. 내가 궁핍해도 비참하지 않았던 이유는 꿈을 위해서 당연히 포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은 ‘꿈’ 이라는 단어를 잘 때나 쓰는 듯 하다. 고집스럽고 유치하고 옛스럽지만 대체 할 낱말이 없다.
그러나 50:50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0:100이 최고라면 최악은 40:60 이어야 했다.
다행히 여러군데에서 불러 주어 이곳저곳에서 많은 원장 혹은 대표를 만났다. 우연히 초등학교 때 스승님을 뵙기도 했다.
한 원장은 내가 들어갈 자리의 직원 욕을 40분을 하더니 내 mbti와 혈액형, 종교를 물었다. 당장 뛰쳐 나가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그런데 이어서 하는 말이 날 보고 꾸미는 걸 좋아한다며 이런 선생님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날 나는 민낯이었으며 추워서 패딩을 입고 갔다. 그녀는 풀 메이크업에 진한 아이라인, 6개가 넘는 반지,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제 어느 부분이 그렇게 느껴지시냐고 하니 스타일이라고 했다. 나는 눈가, 볼, 입술을 맨손 세수를 하며 화장을 하지 않았다고 답을 했고, 그 여자 원장은 또 다른 직원 험담으로 말을 돌렸다.
요 며칠 모든 면접 마다 끝날 때 진심으로 이런 말을 했다. 면접을 볼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이것만으로도 나의 자존감이 올라간다고… 대부분의 답변은 ‘서른 일곱, 하나도 늦지 않아요. 한창이에요. ’ 였다. 하얀 거짓말일 수도 있지만 기분이 좋았다
위에 말한 10대의 스승님과의 만남은 완벽한 우연이면서도 인연이었다. 수학 학원 면접에서 사소한 대화를 나누다 나는 이 건물이 어떤 학원이었을 때 다녔었고 아주 옛날 일이라고 회상하자, 자신이 그곳을 운영한 원장의 아들이라고 했다. 나는 선생님을 뵙고 인사를 하고 싶다고 요청 했다. 면접은 이미 의미가 없었다.
나와 선생님은 한 시간 동안 지난 시간들을 나누었다. 나는 9살이었고 선생님은 35이었는데, 난 37이 되었고, 선생님은 63세가 되셨다. 2층에 새로운 국어학원을 여신다고 했다. 공사가 끝나면 같이 일 해 보자며 내 사무실도 만들어 줄테니, 수업 준비도 하고 시도 쓰라고 제안해 주셨다. 집에 가면 맞을 게 뻔해서 초등학생인 나는 새벽 두 시까지 선생님의 학원에서 코피를 흘리며 공부 했다. 수행평가도 중요하다며 주말에는 근처 학교 운동장에서 줄넘기 등의 시험도 봤다.
선생님은 의대를 가고 싶었는데 공부를 못 해 간호대에 입학 했고, 간호사 생활을 1년을 하다 때려치고 사교육으로 뛰어 들었다고 하셨다. 그때 나를 가르친 (원장님을 제외한) 선생님들은 일타 강사이거나 강대나 시대인재에 강의를 나가는 소위 돈 잘 버는 억대 강사가 되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길게 써내려갔다. 어쩌면 이 게시물이 블로그에서 가장 <일기>다운 <일기>일 것이다. 선생님께서 4월 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공사를 어서 끝내고 다시 한번 화정의 학원 붐을 일으켜 보자고 하신다. 이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 100% 확신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금요일에 퇴사한 곳을 나오기 잘했다는 데에는 강한 믿음이 생겼다.
인생이 내멋대로 흘러간 적은 한번도 없었다. 나는 강이다. 대체로 고요하나 바닥을 보면 크고 작은 움직임들이 있다. 가뭄에 마르면 사랑하는 사람의 눈물을 대신 가져와 주고, 홍수에 범람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내 안에서 수영할 수 있도록 돌보고 싶다. 삶을 돌아 보면 잘못된 선택은 없었다. 나의 이력서는 너무나 촘촘하다. 물론 때마다 출렁였다, 바다만큼은 아니지만. 그래서 이번에도 매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챙기고, 내 사람을 챙기며, 적당한 때를 기다릴 예정이다. 내가 말했던가, 천천히 걸은 적은 있어도 멈춘 적은 없다고. 그러니 어떻게든 될 것이다. 나는 놓지 않는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