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녀와 그
부산에 온 이유는 오롯이 내 친구 마밍의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서 였다. 우리는 biff가 piff일 때 만났다. 그 당시 있었던 시네마 투게더(문화계 유명인?ㅎㅎ이 각자의 팀을 짜서, 영화제 내내 그 분이 선택한 영화들을 같이 보고 이야기 나누는…)라는 프로그램에서 김애란 작가의 팀원으로서가 첫만남이었다.
의사, 문창과, 영화 업계에서 일한 분, 기타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는데 그녀와 나는 학번이 같았고, 음악을 하는 애인이 있었다. 다른 점은 난 글을 쓰고, 얘는 영화를 만든다는 것 뿐이었는데 사실 이 조차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연락을 통해, 우연한 마주침, 예정된 약속으로 우리는 이어졌다. 마밍의 졸작 상영 때 종로에 간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부국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본인의 작품을 틀 수 있고, GV를 한다는 것이 매우 크게 다가 왔다. 나는 진심으로 누구를 축하해 줄 수 없는 인간이 아닐까 생각이 들 때 마밍을 떠올리면 그 걱정이 사라졌다.
이 강인한 여성은 병원에 제발 가라고 말해 준 첫 사람이며, 이매송이가 굉장히 좋아하며 존경한다. 둘이 있으면 옛날 얘기를 하며 스물 초반으로 돌아간 것만 같다.
토-일 일정이라 KTX 첫차를 타고 가서 다음 날 막차로 올라오는 게 내 계획이었다. 수면제를 먹으면 깰 수 없을 듯 하여, 겸사겸사 금요일 밤 해방촌으로 갔다.
해방촌엔 내가 마음을 많이 주고 있는 그가 일하고 있다. 이 날은 비가 왔고, 어차피 잘 수도 없고, 사실은 너무 그리워서 퇴근 후 달려갔다. 잠시 얼굴만 비추고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마감 때까지 자리해 버렸다.
저녁을 먹지 않은 우리는 야키도리집에 가서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나는 술을 즐기지 않는다. 단둘이 음주를 한다는 행위는 상대를 품고 있다는 소리다. 그래서 일까 그와 함께한 두 번의 술자리 모두 만취해 버리고 말았다. 취해서 몸을 못 가누는 모습을 싫어하는 내가 안타깝게도 완전히 거지가 되었다.
분명 가게에서는 멀쩡했는데 나오고 나니 어질어질… 빗물 웅덩이에 넘어지고, 서 있는 오토바이에 머리를 박고, 바지와 양말은 다 젖고, 팔뚝에는 피멍이 들었다.
겨우 잡힌 택시는 나 혼자 태울 수 없다고 하여, 그 분은 나를 집에 데려다 주고, 다시 해방촌으로 가고 그 사이 차에 두고 온 내 폰을 찾아 주느라 아주 늦게 잠이 들었다.
너무 쪽팔렸다. 정이 들어도 모자랄 판에 떨어질 거 같았고, 고맙고 미안했다. 나는 반 기절 했다가 정신을 차리고 새벽 7시를 기다렸지반 종국에 놓치고 말았고, 아직 취기가 사라지지 않은 채로 기차 대신 비행기를 예약 했다. 심지어 부산공항이 김해에 있단 사실도 모른 채…
그래도 어찌저찌하여 딱 맞게 상영관에 들어갈 수 있었고, 눈물의 GV 시간을 보내고, 근처 중국집에서 여러 사람들과 짧은 뒷풀이를 하였다. (이 때 안면이 있는 분들과 다른 감독님도 함께 해서 더욱 의미 깊었다.) 다음 날 아침에 또 예정된 시사회가 있어 밤 10시쯤 헤어졌다.
난 오늘 혼자 태희(부산 러버)가 추천해 준 카페에 가고, 광안리에 들러 햇볕과 시간을 보내고, 고아성 배우와 허광한 배우를 봤고, 지금은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란 바에서 위스키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이 글을 적고 있다.
글을 쓰는 가난한 작가 지망생으로 나를 정체화 한 이후 여행은 내게 사치였다. 사실 바라지도 않았다. 매주 뵙는 선생님의 추천과 마밍의 부산국제영화제 장편 데뷔가 아니었다면 가지 않았다.
그가 나의 부산행에 함께 하고 싶었다 말한 적이 있다. 찰나의 진심일 수도 있겠지만, 들었을 때 매우 기뻤다. 그래서 짧은 1박 2일동안 내내 홀로 애틋했다.
ㅎ는 지금 인생의 큰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 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간중간 못 참고 또 다시 해방촌을 향할 지 모른다. 행복했으면, 안온했으면, 툭툭 털고 일어났으면, 그리고 나를 쳐다 봤으면… 하고 바란다.
부담스럽지 않은 방법으로 도와 주고 싶은데 내 출현이 어떻게 느껴질지 몰라 머뭇하고 동시에 손을 잡고 싶다. 당신이 얼마나 따뜻한지, 나의 심장이 얼마나 뜨거운지 전하고 싶다. 칭찬이 박하다고 이야기 했지만, 몇 번의 때를 기억하지 못하는 당신. 표현이 적게 느껴졌다면, 네가 대단치 않아도 기력 없이 주저 앉아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 일기의 제목은 biff 2025와 해방촌이다. 너네 둘을 사랑한다고 말하기엔 낱말의 공간이 너무 좁아 내 감정을 다 담을 수 없다고 외치는 이야기다.
어쩔 수가 없다.
동그라미가 다시 시작 됐다. 구르고 굴러도 멈추지 않는 그 원형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