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모래가 순례를 떠난 날 #2

by 김로윤

3.

눈꺼풀은 자꾸만 무거워졌다. 인천에서 바르셀로나까지 열다섯 시간 남짓 하늘 위에 있었고 바르셀로나에 도착해서 테네리페 수르 공항까지 여섯 시간이 넘게 걸렸다. 시차와 중력은 어딘가에서 손을 잡고 잔혹한 수면의 절벽 끝에서 내 등을 떠밀고 있었다. 하지만 벼랑 아래로 떨어져 길바닥에서 누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가까스로 정신을 부여잡고 렌터카를 픽업한 후에 숙소로 향했다. 겨울이었지만 섬의 기온은 따듯했고 하늘은 푸른 미소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나는 창문을 열어 이국의 풍경을 들이마셨다. 창 틈사이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기분을 전환시켜 주면서 눈꺼풀이 한결 가벼워졌다. 룸미러에는 테이데 산의 꼭대기가 들어와 있었고 창밖으로는 급경사로 깎여진 가파른 절벽 아래로 투명하고 푸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새파랗게 물든 파도는 시차를 두고 검은 암석들을 줄기차게 어루만졌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먼 거리는 아니어서 천천히 차를 몰며 낯선 정경들을 눈에 익혔다. 크리스마스 때문에 성수기를 맞고 있을 것 같은 휴양지는 생각보다 한산했다. 덕분에 커브가 많고 좁은 도로였지만 운전의 난이도가 상승하는 기분을 느끼지는 못했다. 도심에 들어선 뒤 차들이 빼곡한 좁은 모퉁이를 몇 개 지나서 완만한 경사에 위치한 호스텔에 도착했다. 일박에 이십 유로를 받는 호스텔은 이인실 도미토리였지만 운이 좋게도 이틀 동안 혼자 쓸 수 있었다. 서둘러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올라가 배낭을 풀고 샤워를 했다. 좁은 샤워 부스 천장에 작은 거미 한 마리가 거미줄에 매달려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었다. 습하지 않고 바람이 불지 않는 건조한 무풍지대를 찾아다니는 거미의 여정도 순례길을 걷는 것처럼 보였다. 샤워기에 물을 틀자마자 기분 좋은 온도의 물줄기가 온몸을 적시기 시작했다. 젖가슴 아래쪽에 그어진 갈변된 상처들은 조금씩 본연의 색깔을 찾아가고 있었다. 비행기를 타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는 몸이 가렵지 않았다. 피부가 가려운 게 아니라 피부 한 꺼풀 뒤에 숨어있던 가려움증은 피부와 근막 사이 어딘가에서 구더기가 꿈틀대는 것처럼 환부의 정확한 부위를 찾지 못하도록 시시각각 나를 괴롭혔다. 병원에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이라는 병명을 붙여주었다. 번들거리는 얼굴로 내 젖가슴 아래의 흉터들을 만져본 의사는 메마른 어조로 말했다.

<일종의 방어기제 같은 거예요. 어떤 사건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심한 충격을 받으면 그 환경이 반복되는 것을 미리 막기 위해서 방어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거죠. 몸을 긁는다는 건 타인이 나에게 함부로 다가오지 못하게 방어하는 걸 수도 있어요. 혹시 타인에게 치명적으로 공격을 당했던 일이 있나요?>

이봐요. 의사 선생님. 인생은 당신이 공부한 교과서랑은 많이 다를 거예요. 아무리 어렵다한들 몇 권의 두꺼운 의학서적으로 사람의 몸과 영혼을 전부 읽어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말아요.라는 말은 내 입술 언저리에서 모두 기화氣化 되었고 아니요라는 무게 없는 대답만이 비실거리며 새어 나왔다. 나는 약을 처방받았지만 가려움은 도무지 낫지 않았고 약은 먹으면 먹을수록 절전모드로 돌려놓은 가전제품처럼 내 몸을 근근하게 움직여주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외상外傷이라. 바깥에서 온 상처. 누군가에게서 온 상처. 혹은 나에게서 온 상처. 그 누군가를 정확하게 지목할 수만 있다면. 차라리 피 흘리는 상처라면 금방 아물 텐데.

샤워를 마치자 익숙한 피로감이 무겁게 나를 짓누르며 이질적인 나른함이 해일처럼 덮쳐왔다. 변심한 애인이 깊이 잠들기를 기다려 가장 은밀한 곳을, 외설스러우면서도 성스러운 곳을 탐하듯 잠은 폭력적으로 나를 침대로 이끌었다. 꿈속에서 나는 젖가슴 아래 갈변된 내 상처를 손으로 벌려 그의 흉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새빨간 피를 흘려 넣었다. 그리고 배와 배를 맞대고 눈을 감은 채 한마디 말없이 서로의 움직임을 느꼈다.

눈을 떴을 때는 코발트 빛 황혼 속으로 핏빛노을이 녹아들고 있었다. 창문 밖 거리에서는 플라멩코 노랫소리가 들려왔고 사방에서 밀려오는 낯선 곳의 활기는 무방비하게 누워있는 나를 사정없이 벨 것처럼 도도하게 밀려왔다. 나는 옷을 챙겨 입고 해변을 향해 걸었다. 해변의 모래는 검은색이었고 새의 깃털처럼 보드라웠다. 나는 신발을 벗어 손에 쥐고 맨발로 해변을 걷기 시작했다. 보드라운 모래입자가 발가락 사이사이로 파고들었다. 해변에는 수평선 뒤로 스러지는 낙조를 찬탄하며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찍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붐볐다. 낯선 이들의 손에 쥐어진 손바닥보다 작고 좁은 사각형으로 도려내진 붉은 석양은 볼품없어 보였다. 검붉은 태양이 지는 사이 나는 계속해서 해변을 걸었다. 그리고 시간이 어둠 쪽으로 완전히 옮겨 앉았을 때 나는 비로소 해변의 끝에 닿을 수 있었다. 해변의 끝에는 파도에 밀려온 나무둥치들과 썩어버린 가지들이 검은 모래 위를 뒹굴고 있었다. 그것들은 이제야 주인을 만났다는 듯 어둠 속에서 일제히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나는 해변에 앉아 검은 모래와 검은 바다 사이의 경계선을 눈으로 짚어보면서 어딘가에 누워있을 아니면 이제는 소멸되어 어딘가에 뿌려졌을 그와 그의 흉터들을 생각했다.

<우리가 즐겨 듣던 인디가수의 노랫말처럼 여긴 썰물이 없나 봐. 떠내려온 짐은 모두 내 것 같아. 검은 모래와 검은 바다라서 그런지 이어질 땅은 보이지 않아. 당신이 살던 섬은 이제 가라앉았고 내가 두고 온 것들은 모두 저기 아래에 하역된 채 녹슬다가 사라지겠지. 당신 기억나? 모슬포 갔던 날. 산티아고를 걷기 전에 제주도 올레길을 먼저 걸어보자고 해서 떠났었지. 오월의 바다에 우리는 둘 다 눈이 부셨고 해안가 비탈에서 당신은 내 바지를 벗기고 내 안에 들어왔어. 내 엉덩이가 자꾸만 미끄러지는데 당신이 한 손으로 부여잡고 내 귀에 속삭였잖아. 넌 모르지.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라고. 우리는 모슬포로 김밥을 먹으러 갔는데 문을 닫아서 못 먹었잖아. 사랑도 그런 게 아닐까 싶어. 모슬포도 못 갔고 김밥도 먹지 못했지만 그날을 모슬포 갔던 날로 기억하는 것처럼 사랑도 사랑만 쏙 빠져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미움과 증오와 분노가 사랑이라는 걸 더 질기게 해주는 거 아닐까. 이제 나는 당신에게서 자유로워질 수 있겠지. 내가 당신 때문에 자유롭지 못했다고 한다면 당신은 나를 미워할까. 내가 당신을 떠나지 못한 이유는 미움 때문이야. 증오와 분노 때문이야. 하지만 지금도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면 당신은 나를 징그럽게 생각할까. 그래도 괜찮아. 원래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에게 잔혹한 법이니까.>

멀리서 밀려오는 이국의 검은 파도가 내 발끝을 적셨다. 나는 입고 있던 경량 패딩의 주머니에서 파우치를 꺼내 지퍼를 열고 까맣게 탄 뼛가루 같은 검은 모래를 가득 쓸어 담았다.


4.

화장실은 늘 사내들로 붐볐다. 넓은 대형 물류센터는 네 개의 화장실을 가지고 있었다. 물류 센터 입구와 출구 쪽에 각각 두 개씩 남자화장실 여자화장실이 나뉘어 자리 잡고 있었다. 장거리 운전을 한 트럭기사들과 물류센터에서 상하차를 하는 사내들로 남자 화장실은 늘 만원인 반면 여자 화장실은 청소부인 아줌마들의 장소였다. 물류 센터에 일하는 여자는 청소부들 뿐이었다. 하기사 택배 상하차를 여자가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이곳에 여자가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아침 여덟 시부터 저녁 여덟 시까지 화장실 청소를 했다. 삶의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삶의 여유가 있는 이들보다 더 많이 더 자주 화장실을 드나드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먹는 식품들은 대부분이 인스턴트와 가공식품이었고 대다수가 소화불량과 위장병을 달고 살았다. 사내들의 근처에서는 항상 술냄새와 담배 냄새가 풍겼다. 육체노동으로 밥을 먹고사는 이들이 대개 그렇듯 건강 따위는 염려하지 않고 퇴근하면 온몸의 마디마디를 쑤시는 관절염과 근육통으로 시달리는 육체를 재우기 위해 마취성 진통제를 몸에 투여해야만 그나마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으리라. 사각으로 나뉜 칸칸마다 고약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사람 몸뚱이에는 얼마나 많은 체취와 체액과 배설물들이 담겨있는지 그것들은 제 몸의 주인으로 하여금 시도 때도 없이 좁은 변기에 방출되기 바빴다. 좁은 공간에 지린내가 번지고 사람들은 다시 변질되고 상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나 역시 그 역겨운 공기를 맞이하러 들어갔을 때 두 명의 사내가 오줌을 누고 있었다. 그들은 마스크로 가린 내 얼굴을 힐긋하더니 일부러 들으라는 소리로 뇌까렸다.

<나는 저 멀리서도 여자 냄새만 맡으면 그게 발딱 서드라. 남성 호르몬이 아주 왕성한가 봐.>

<나는 이번에 통후추를 몇 박스를 주문했다구.>

<뜬금없이 후추는 왜?>

<아니 그게 말이야. 후추가 정력에 안 좋잖아. 그래서 밥 먹을 때 후추를 마구 때려 넣어서 먹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일상생활을 할 수가 없으니 말이야.>

<킬킬킬. 우리 둘 다 아랫도리 때문에 고민이 많구먼. 아. 근데 이 아랫도리의 매운맛을 보여줄 마땅한 계집이 있어야지 되는데. 여기 물류센터에는 고추들만 잔뜩이고. 여자가 없으니 이거 김 빠져서 원.>

사내들은 내 유니폼 엉덩이 쪽에 드러난 팬티라인을 보더니 음흉하게 웃으면서 자리를 떠났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때 묻은 솔로 소변기를 닦았다. 김실장의 호출은 항상 느닷없었다. 근무 스케줄은 상시 바뀌었고 안정적이지 못한 출퇴근 시간은 비정규직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숙명 같은 것이었다.

<이번 주 고생 좀 해줘요. 다른 아줌마가 자식이 수술하는 바람에 출근을 못하니까 미경 씨가 대신 땜빵 좀 해줘요. 할 수 있죠?>

할 수 있죠라는 물음은 나에게 선택권을 쥐어주는 질문인가 나를 붙들어 매는 강요인가. 물음의 꼬리가 내 목줄을 쥐고 흔드는 것만 같았다. 내 입에서는 알겠다는 대답이 맥없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유니폼을 두 개나 지급하는데 세탁을 하면서 돌려 입어야 냄새가 안나죠. 미경 씨 근처만 가도 지린내가 나. 집에서 빨래 안 해요? 냄새나면 번갈아 입고 그래요 좀.>

이번에도 알겠다는 대답만이 힘없이 새어 나왔다.

락스를 희석한 물을 변기에 들이붓고 있을 때 아까 봤던 사내들이 다시 화장실에 들어왔다. 그들은 다시 내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바지 지퍼를 내리고 오줌을 누었다.

<어휴 또 단단해진 거 봐. 오줌빨이 더 세졌어. 이러다가 변기를 부술지도 모른다구. 낄낄낄.>

사내들은 천박하게 웃으면서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일을 다 본 사내들은 세면대에 서서 손을 씻기 시작했다.

<이봐요. 아가씨. 여기 손 닦을 휴지가 없어요.>

<자네가 다 쓴 거 아니야? 다른 거 닦아내느라고. 낄낄낄.>

나는 사내들의 말을 무시하고 청소도구함 칸으로 가서 휴지를 꺼내 사내에게 내밀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담배연기로 누렇게 물든 사내의 손이 올라가는 순간 화장실 입구에서 이 광경을 노려보고 있는 누군가의 그림자가 보였다. 나는 사내들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노인네와 눈이 마주쳤다. 파리한 얼굴의 노인네는 서슬 퍼런 눈만 끔뻑거렸다. 두 개의 발가락이 없는 노인네는 뒤뚱뒤뚱 걸어오더니 주름진 손으로 사내와 나를 떼어놓고 계획되고 당연한 수순인 듯 내 머리칼을 쥐어잡았다.

<지 피는 못 속이지. 이 화냥년. 갈보년아. 내 이럴 줄 알았어. 그 새를 못 참고 또 남자들한테 꼬리를 쳐. 이 쌍년아.>

사내들은 남자 화장실에서 벌어지는 두 여자의 난투극을 보더니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야 이년아. 내 아들이 누구 때문에 저 지경이 됐는데. 이 년이 지 서방은 저렇게 누워있는데 그 새를 못 참고 가랑이를 벌려. 죽어. 죽어.>

노인네는 필사적으로 내 머리칼을 쥐고 흔들어댔다. 내가 노인네의 손목을 잡고 뿌리치는 순간 노인네의 손톱이 내 뺨을 할퀴었다. 붉게 달아오르는 뺨은 누가 소금물을 뿌린 것처럼 쓰라렸다. 순간 증오와 분노로 울컥한 내 입에서는 날 선 문장들이 흘러나왔다.

<이 씨발. 네 아들이 누워있는 게 내 탓이야? 왜 나를 못살게 구는 거야. 네 아들은 자기가 선택해서 그렇게 된 거야. 내가 등 떠민 게 아니라고. 지 손으로 그렇게 된 걸 날 보고 어쩌라는 거야. 개새끼. 씨발놈. 그러게 그때 왜 그런 짓을 해서 나를 힘들게 하냐고. 씨발. 이 개 같은 년놈들아. 나를 좀 가만히 내 버려둬.>

창백했던 노인네의 얼굴은 적개심으로 불타올라 곧 터져버릴 것처럼 새빨갛게 부풀어있었다. 그리고 쌕쌕거리며 내쉬는 거친 호흡이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닌 게 아니라 노인네가 입고 있는 반바지 밑단에서는 누런 물방울들이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노인네는 요실금으로 자신의 오줌이 새어나가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긴 한숨을 몰아쉬고 휴지를 뭉텅이로 끊어서 노인네의 아랫도리를 닦아주었다. 당뇨를 앓고 있는 노인네의 오줌에서는 달큼한 지린내가 진동을 했다. 고약한 냄새가 밴 손을 얼른 씻고 탈의실에 걸려있는 새 유니폼의 바지를 가지고 와서 노인네에게 갈아입혔다. 퇴근을 하고 노인네와 나는 욕실에 들어가서 같이 목욕을 했다. 노인네는 아무 말 없이 나에게 등을 맡겼고 나 역시 아무 말하지 않고 노인네에게 등을 맡겼다. 등을 돌리고 쪼그려 앉아있는 노인네의 세 개의 발가락은 그날따라 유난히 희디 희었다. 노인네는 내 몸에 비누칠을 하면서 갈변된 상처들을 하나하나 짚어보았다. 손길에서는 미안함과 슬픔이 묻어 나오길 바랐지만 나는 그 어떠한 감정도 읽어낼 수 없었다. 욕실의 열려있는 좁은 문 틈으로 두 명분의 수증기가 어둠이 내려앉은 거실로 빠져나가고 있었고 어둠이 웅크리고 있는 거실 바닥에는 입을 벌린 채 침을 흘리며 욕실을 바라보고 있는 그가 누워있었다. 그의 숨소리에는 차가운 공기가 배어있었다. 두 여자는 욕실의 문 틈사이로 칩입하는 간헐적인 찬바람에 가끔씩 몸서리쳤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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