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아파트 화단에 제 멋대로 핀 자운영은 메마른 꽃냄새를 풍겼다. 죽어서도 꽃냄새를 풍기는 마른 꽃은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니 질긴 생명을 비유하기 안성맞춤이라던 어느 소설가의 말을 인용하여 쓰기 시작한 편지는 아직 다 쓰지 못하고 그 소설책 사이에 끼워두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나는 자운영의 가지를 꺾어 가방에 넣었다. 꽃을 피운 뿌리는 힘이 없어 쉽게 뽑히지만 뿌리를 살려둘 마음은 없었다. 인멸하고 싶다는 욕망은 피는 꽃의 노래와 지는 잎의 섭리를 묵살하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폭력을 행사한다. 암담하게 기록되었던 미분된 시간들이 불쑥 불청객처럼 찾아올 때면 기억력이 좋았던 나는 망각에 가속도를 붙이기 위해 애를 쓴다. 기억력이 좋을수록 원망이나 서러움 따위가 깊어지니까. 아니 어쩌면 원망이나 서러움 따위가 깊으면 깊을수록 기억의 힘을 부추기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기억은 불행하게도 여태껏 나에게 좋은 기능을 하지 못했다. 불행하다는 표현은 사실보다는 진실에 가깝다. 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도 같아서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정제가, 때론 독약이 잡히기도 하는 법이니까. 현관문을 열자 익숙한 냄새가 거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노인네가 찼던 기저귀에 밴 달큼한 지린내는 창문을 열어놓았지만 달아날 기회조차 엿보지 않고 늘 같은 자리에 고여있었다. 사용했던 기저귀를 방 한가운데에 버려둔 채 노인네는 또 어디를 간 걸까. 나는 노인네의 행방 따위는 머릿속에서 지운 채 그가 누워있는 방으로 향했다. 형광등이 나갔는지 그가 누운 방에는 불이 켜지지 않았다.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명도와 채도가 현저하게 낮은 희미한 불빛만이 어두운 방을 밝혀주고 있었다. 그는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리며 노인네가 틀어놓고 간 철 지난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나는 리모컨을 찾아 전원버튼을 눌렀다. 방은 연극 무대의 막이 내려지듯이 순식간에 캄캄한 어둠에게 지배당했다.
나는 어둠 속에서 그의 옷을 모두 벗긴 뒤에 거실로 나가 쓰던 양초 몇 개를 들고 와서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흥분을 감추지 못한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불쾌한 신음소리가 어둠을 조각내기 시작했고 나는 가방에 있던 라이터를 꺼내 초에 불을 붙이고 나서 하나씩 그의 주변에 세워두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파트 화단에서 꺾어온 자운영을 꺼내 꽃봉오리만 손으로 다시 한번 잘라내었다. 꽃봉오리 밑으로 삐져나온 새끼손가락 길이만큼의 줄기에서 비릿한 풀냄새가 올라왔다. 생일상의 생일 케이크처럼 그는 아련하게 타오르는 촛불들 사이에 가련하게 누워있었다. 나는 무릎을 꿇은 채 앉은걸음으로 그의 아랫도리로 다가가 그의 요도에 꽃봉오리를 꽂아 넣었다. 그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부르짖다가 얼마가지 않아 쌕쌕거리는 아기 같은 숨소리를 내쉬었다. 나는 치마를 걷어올리고 팬티를 벗은 뒤에 하나 남은 꽃봉오리를 내 음부에 꽂아 넣었다. 아찔한 이물감 덕분에 머릿속을 텅 비울 수 있었다. 어느새 단단해져 꽃을 피운 그의 아랫도리로 올라타서 그를 내 품속으로 안았다. 귓가에는 처절함 속에서 피어오른 감탄과 찬미의 숨소리가 들려왔고 싱싱한 생선처럼 팔 안에서 요동을 치는 그의 움직임 속에서 어떤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한 영원한 슬픔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음습하고 질환적인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며 나는 맨발로 춤을 추는 무희가 되어 그의 위에서 영원히 끝나지 않을 춤을 추었다. 이제는 영원히 과거 시제로 말할 수밖에 없는 비인칭 명제. 내 입가에서 무거운 중량을 달고 있어 간신히 온 힘을 다 해야만 부를 수 있는 뼈저린 단어. '그'. 나와 그는 욕망의 급류에 휩쓸려 범람하는 강 위를 떠내려가는 야생화가 되었고 마침내 무겁고 혼돈된 탁류와도 같은 흐름에 떠밀려 절정으로 향했다. 곧 그의 입에서 기름진 비명이 새어 나왔을 때 나는 텅 빈극장에서 우울한 영화를 보고 나온 한낮의 거리와도 같은 비현실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한낮의 우울한 정사가 끝난 뒤의 방안은 어두컴컴하고 습한 고래뱃속 같았다. 고래뱃속으로 들어간 요나처럼 미동 없는 그의 눈에서는 예고도 없이 한 줄기의 눈물이 흘렀다. 나는 누워 있는 그를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당신 그거 알아? 오늘이 우리의 첫날밤이라는 거. 예전에 나는 당신과의 결혼식에서 자운영을 들기를 바랐어. 자운영의 꽃말이 사랑과 순수, 감화, 그대의 관대한 사랑이니까. 당신과 나에게 잘 어울리는 꽃이라고 생각했어. 당신을 보면서 내가 바람직한 인간으로 변하고 있다는 걸 느꼈거든. 그깟 꽃말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 하지만 살면서 단 한 번쯤은 말해주고 싶었어. 소멸해 가는 당신을 담당하는 게 내 운명이라면 나는 당신 덕분에 살 수 있었다고. 고마웠다고. 오늘을 첫날밤으로 정한 것도 모두 당신 때문이야. 오늘은 첫날밤이자 우리가 영원히 이별하는 날이거든. 황홀했던 첫날밤은 일종의 이별의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돼. 내가 없는 곳에서 부디 나를 영원히 경멸해 줘. 나는 이제 이곳을 떠나 당신 없는 신혼여행을 떠날 거야. 당신이 걷고 싶어 했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지난 세월을 속죄받을까 해. 당신은 나를 용서하지 마. 나는 당신이 나에게 남긴 절반의 죄를 짊어질 거니까.>
나는 그의 옆에 누워있는 베개를 손으로 집어 그의 얼굴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내 체중을 실어 그의 얼굴을 힘껏 눌렀다. 안으로 삼킨 비명과 탄식이 허공에 피어나며 내가 몰아쉬는 독한 한숨과 접촉했다. 그렇게 혼재된 공기가 좁다란 적막 속에 퍼질 무렵 왼쪽 아랫배가 저릿하게 당기면서 허벅지 안쪽까지 뻐근하게 아파왔다. 그다음 축축한 습기가 최음제처럼 아랫도리를 타고 올라와 온몸에 스며들었다. 배꼽 아래로 초가 불에 타서 녹는 것처럼 열기가 늘어졌다. 배란통이었다. 나는 누르고 있던 베개를 그의 얼굴에서 치우고 방을 나와 약국으로 향했다. 약을 사서 방에 다시 돌아왔을 때 노인네는 내가 집었던 베개를 똑같이 집어 들고 그의 얼굴을 무참히 짓누르고 있었다. 인기척에 놀라 뒤를 돌아본 노인네의 시선과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내 시선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노인네는 맥이 풀렸는지 허망한 표정을 지으며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노인네에게 다가가 그녀 옆에 나란히 앉아 공범끼리의 적의와 친밀감으로, 그리고 언제든 준비되어 있는 배반감을 품고 물에 젖은 책처럼 함부로 펼쳐져 있는 그의 몸을 몰래 지켜보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무심하게 계절이 바뀌었을 때 살인미수를 저지른 공범끼리의 생활은 아무렇지 않은 듯 또다시 타성과 관성의 궤도에 들어섰다. 쌀쌀한 바람이 불던 어느 날 거실에 한 줄의 문장을 남긴 노인네는 주차장에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자신의 승용차에 그를 태우고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메모를 읽고 그것을 돌돌 말아 불을 붙인 뒤 서랍에서 꺼낸 담뱃갑에서 한 개비를 손으로 집어 입에 물고 담뱃불을 붙였다. 담배는 붉게 얼룩져 있었다. 나는 메모에 적혀 있던 활활 타오르는 문장을 소리 내어 읽었다. 죽일 년. 담배를 절반쯤 태우고 변기에 던져버렸다. 집 안 곳곳에 자리 잡은 예기치 않은 공백을 뒤로하고 배낭에 짐을 싸기 시작했다.
8.
피레네 산맥을 넘기까지 아홉 시간이 넘게 걸린다는 어느 한국인의 말에 나는 새벽부터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론세스바예스의 알베르게에서 피레네 산맥으로 출발한 시간은 새벽 다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피레네 산맥을 넘는데 시간과 체력이 많이 소모된다면 산맥 중간쯤에 위치한 오리손 산장에서 하룻밤 묵어도 상관없는 일이지만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묵을 수 없다는 산장은 이미 예약이 종료된 상태였다. 나는 어떻게든 오늘 안으로 프랑스와 스페인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만 했다. 귀국일자는 나흘정도 남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프랑스의 파리에 들려 에펠탑을 보고 센강 위를 우아하게 떠다니는 바토무슈를 타고 고혹적인 파리 시내의 야경에서 만날 수 있는 야릇한 낭만을 직접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피레네를 넘어 생장이라는 마을에 도착해서 일박을 하면 모레쯤 저녁에는 테제베를 타고 파리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파리에서 이틀을 묵고 다시 바르셀로나로 가서 귀국하는 비행기를 타면 내가 계획한 순례는 모두 끝이 날 예정이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나에게 남은 시간들을 계산하면서 걸음을 서둘렀다. 어둠을 완전히 몰아낸 시간쯤 되었을까. 주머니에서 문자메시지의 알림음이 울렸다. 현 시간부로 스페인과 프랑스의 국경을 넘었다는 유럽의 통신사의 메시지였다. 하늘은 파랗게 물들어 있었고 그 푸름을 머금은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거대한 구름들은 듬성듬성 언덕 위에 걸쳐져 있었고 사람들은 휴대전화로 가슴 저린 풍경을 도려냈다. 나는 쉬지 않고 걸었다. 카본으로 만든 등산스틱의 끝은 마모가 심하게 되어 너덜너덜해진 상태였고 휘어질 대로 휘어져서 곧 부러질 기세였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가지 않아 등산스틱은 부러져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었고 나는 맨손으로 걸을 수밖에 없었다. 완만한 내리막과 오르막의 반복은 예상보다 많은 체력의 소모를 요구했다. 중력은 짊어진 배낭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고 스틱의 부재는 발바닥부터 시작되는 타오르는 듯한 통증을 일깨워주었다. 눈앞에 보이는 완만한 경사의 끝에 하얀색 벤이 서있었다. 나는 그곳까지 걷고 나서 잠시 쉬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얀 트럭에서는 샌드위치와 음료를 팔고 있었다. 점심이 지난 시간이었지만 배는 고프지 않았다. 나는 캔콜라를 사서 배낭을 깔고 앉았다. 내 옆에 자리 잡은 외국 여자들은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다. 콜라를 따서 입으로 가져가는 순간 불어오는 바람결에는 샌드위치 냄새가 묻어났다. 나는 그 샌드위치 냄새를 맡자마자 헛구역질을 했다. 아무것도 먹은 것이 없었지만 움찔거리며 솟구치는 욕지기는 꽤 오래 되풀이되었다. 속이 조금 진정되고 나서 나는 콜라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헹구어냈다. 하늘에서는 여전히 강렬한 태양이 산맥을 내리쬐고 있었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배낭을 메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순례자 여권을 발급하는 사무실에는 다행히 한 명의 근무자가 남아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순례자 여권을 제시하고 마지막 도장을 받아냈다. 그리고 그녀는 서랍에서 순례길을 완주했다는 증명서를 내게 건네며 엄지 손가락을 내밀었다.
순례길의 마지막 밤은 공립 알베르게에서 묵었다. 좁은 샤워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젖은 머리로 침대에 누운 나는 아주 길고 달콤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갈변된 내 상처를 벌리고 그곳을 검은 모래로 가득 채웠다. 다음날 아침 생장에서 바욘까지 미리 예약해 둔 TER을 타고 다시 바욘에서 파리까지 가는 테제베를 탔을 때 나는 비로소 안도감을 느꼈다. 어쩌면 나의 순례는 이곳이 끝이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프랑스의 어느 시골 마을에 정차했을 때 나는 다시 한번 욕지기가 솟구쳤다. 멀미는 결코 아니었다. 이번에도 꽤 오래 되풀이하는 시간 속에서 나는 마지막 생리를 한 게 언제인지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화장실에서 돌아와 자리에 앉았을 때 입덧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맞은편에 앉은 젊은 배낭 여행객이 가방에서 초코바를 꺼냈을 때 나는 다시 화장실로 향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