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글픔의 사유
인생의 3분의 1을 같이 한 친구 A가 있었다.
몇 년 전 어느 날 A가 물었다.
"너는 인생에서 몇 명의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냐?"
나는 답했다.
"지금 너 하나만 있어도 충분해."
A는 나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A는 소위 말해 잘 나갔다.
동대문 도매시장에서 의류 디자이너로 잔뼈가 굵었다.
공장 사장들은 A에게 작업 좀 내려달라며 리베이트를 할 정도였다.
A가 만든 옷들은 대부분 히트를 쳤고
그 덕분에 A에게 일을 맡긴 도매시장 사장들은 앉아서 돈을 벌었다.
A가 부러웠다.
자세히 말하면
자신의 일을 즐기면서 꽤 많은 돈을 벌고 행복해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A가 점점 잘 나갈수록 나는 점점 도태되는 기분이었고 사실상 그랬다.
당시에 나는 근근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먹고사는 무직이었다.
A는 점점 더 잘 나가게 되자,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격지심일 수도 있겠지만,
A가 나에게 하는 말투들은 점점 선을 넘기 시작했고,
급기야 나를 하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인생의 3분의 1을 같이 한 친구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
그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화를 내고 싸웠어야 한다.
A가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다고 나에게 자랑을 하던 날
자신의 새로운 외제차를 뽐내며
나에게 인생을 그렇게 살아선 안된다며 질타하던 그날.
마음속으로 A와 결별했다.
내가 그에게 더 이상 도움을 줄 수 없는 존재가 돼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마 A도 자신의 남은 인생에서
내가 도움이 될만한 친구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일이 벌어지고 얼마 후 A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난 장례식장에 가지 않았다.
오늘 B라는 친구를 만났다.
그곳에서 과거 A 때문에 알게 된 지인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지인은 A라는 친구와는 아직도 친하게 지내냐며
물었고 나는 안 본 지 오래됐다 라는 말을 했다.
그러자 그는
"A 그 친구 많이 힘들어 아버지 돌아가시고 폐인 돼서
디자이너 그만두고 어디 시골 공장에서 일한대.
나도 어디서 들은 거야."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 독했던 사람이 인생을 정말 행복하게만 살 것 같았던 사람이
그렇게 폐인처럼 살고 있다는 말은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B와 헤어진 후 집에 들어와서 씻고 책상 앞에 앉았다.
눈물이 흘렀다.
왜인지 영문도 모른 채 나도 몰래 흐느껴 울었다.
슬픔의 눈물인지
기쁨의 눈물인지
모르겠다.
그와 결별할 때 그가 행복하게 잘 살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는 열심히 살았으니 그 정도 인생은 누려도 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가 망가졌다는 소식을 들으니 눈물이 났다.
난 눈물의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그에 대한 동정의 눈물인지
그가 나에게 준 상처를 치유하며 느끼는 나에 대한 연민의 눈물인지
어떤 눈물이라도 상관은 없겠지만
그 A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라는 게 조금은 서글프다.
비오는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