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

by 보림월

어제도 수면제를 먹었다. 제대로 잠을 잔 게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수면제 탓에 자고 일어나도 여전히 꿈속을 헤매는 것 같다. 일정한 시간에 기상하는 게 불면증에 도움이 될 거라는 의사의 말에 핸드폰으로 알람 몇 개를 맞춰두었다. 야단스러운 알람 소리에 머리 위로 열 개의 손가락들이 다지류의 생물처럼 분주하게 움직인다. 한참을 더듬거리고 나서야 침대 밑에 핸드폰이 떨어져 있다는 걸 알아챈다. 삐걱 소리를 내며 가까스로 일어나 핸드폰을 주우려는 모습이 태엽이 덜 감긴 장난감 같다. 눈을 비비고 시간을 보려고 화면을 들여다보니 액정이 깨져있었다. 지난 밤의 기억은 태고의 생물처럼 머릿속에서 생동감 있게 움직였다.

'악몽을 꾼 탓이겠지. 더러운 꿈 때문에 혼자서 괴로운 몸부림을 치다가 핸드폰을 떨군 거야.'

속으로 되뇌이는 동안 A가 다가와 내게 차가운 물을 한 잔 건네주었다.

"시원한 거 마시고 잠 좀 깨."

잠이 덜 깬 나는 눈을 감은 채 물컵을 건네받았다.

"고마워."

눈을 감고 있지만 A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A의 사려 깊고 따듯한 숨결이 느껴졌다. A의 살아있는 육체의 탄력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녹이 슬어 쇠붙이가 비명을 지르는 현관문을 열고 A가 출근을 한다. 내 앞을 지나가는 A에게서 바람 냄새가 났다.

'아, 참. 얼굴도 못 봤네.' 혼자서 중얼거리며 다시 누웠다.

늦잠을 자려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당겼지만 얇은 여름 이불 속으로 뜨거운 아침햇살이 여과 없이 스며드는 바람에 단념하고 침대에서 기어 나와 소파에 앉았다. 시원한 물을 마셨지만 여전히 비몽사몽이다. A의 얼굴을 못 보고 보낸 게 마음에 걸려 전화를 걸었다.

"아침부터 웬일이야?"

"응? 너 방금 우리 집에서 나갔잖아."

"무슨 소리야. 어제 당신 집에서 술 마시고 난 아침에 볼 일 있어서 내 집으로 왔잖아? 기억 안 나? 어제 또 술 마시고 수면제 먹었지? 그거 건강에 엄청 안 좋대. 수면제 좀 끊어 제발."

"나 방금 당신이 준 물 마시고 잠 깨서 전화한 건데,"

"당신 또 꿈꿨나 보네. 윤. 그거 꿈이야. 꿈에서 좀 깨어나 봐."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시간과 시간 사이에 매듭을 짓고서는 현실 세계의 공기를 진동 시키고 있었다. 눈을 비비고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A가 남기고 간 바람 냄새가 거실 한 편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단편소설#나노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