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연재 중 길몽 01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림월 Nov 04. 2024

길몽#1

백호

희강은 오늘 폐업신고를 했다. 2년 남짓 플랫폼을 통해 스마트스토어를 운영했지만, 손에 남은 건 2700만 원의 빚뿐이었다. 단군이래 가장 돈이 벌기 쉬운 시대라고 떠들어대는 어떤 유튜버의 영상을 보고 나서 그가 알려준 방식대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능력의 부재인지 밑천의 부재인지 그것도 아니면 유튜버가 팔고 있는 온라인 강의 속에 알맹이의 부재인지 알 수 없는 노릇으로 그는 어쩔 수 없이 폐업신고 버튼에 클릭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후텁지근한 공기로 가득 메워진 좁은 방 안에서 희강은 국세청 홈택스 사이트에 접속해서 폐업신고 카테고리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돈을 벌기 위해 손을 대었던 일들은 생각만큼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시곗바늘은 정직하게 떨어지는 현실의 시제를 새기고 있었지만, 그와 반대로 통장잔고는 육체노동의 전조를 알리는 카운트다운을 세고 있었다. 가시 돋친 스트레스는 당위성을 부여한 다이어트를 병행하게 했고 희강의 줄어가는 몸무게만큼 통장의 숫자도 동시에 줄어들고 있었다.


"어후, 씨팔 꼬라지가 형편없네."


책상옆 벽에 붙어있는 A4용지 만한 거울은 초췌한 40대 초반의 남자를 비췄다. 희강은 거뭇한 턱수염을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수분공급을 애원하는 거칠어진 뺨을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몇 시간 동안 방문을 닫고 있던 탓인지 방안에는 퀴퀴하고 불쾌한 냄새가 묵직하게 고여있었다. 희강은 마우스옆으로 손을 가져가 몇 가치 남지 않은 레종 프렌치 블랙에서 담배하나를 꺼내 입에 물고 창문을 열었다. 오랫동안 창문을 열지 않았던 탓인지 회갈색에 알루미늄 새시는 삐익소리를 내며 불결한 신음을 냈다. 지은 지 20년이 지난 낡은 빌라 2층에서 희강은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었다. 자신의 착잡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성질 급한 담배는 몇 모금 빨지도 않았는데 벌써 절반 넘게 자기 몸을 태워버렸다. 녹이 슬어 한 뼘밖에 열리지 않은 창문 틈으로 지치고 연약한 영혼처럼 보이는 담배연기가 세상밖으로 흘러나가고 있었다. 빌라 골목에서는 쓰레기 분리수거트럭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역한 욕망이 묻어있는 쓰레기들을 거두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신기하게 청소차에서는 덤프트럭의 고약한 엔진소리가 들리지 않고, 푹신한 침대 위에서 울리는 휴대폰 진동 같은 조용한 소리가 들렸다. 희강은 그 소리를 듣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세상 좋아졌네. 옛날에는 쓰레기차만 다니면 시끄러웠는데, 요새는 전기차라서 그런가 조용하네."


청소차는 이름값을 하려는 듯이 만져지는 공해도 수거해 가지만, 소음공해도 수거해 간다는 게 희강은 신기했다. 담배가 제 몸을 모두 태웠을 무렵 문득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담배를 배웠던 희강은 고등학교로 올라가자마자 중년의 남성처럼 수염이 자라기 시작했던 지라 동네 구멍가게에서 손쉽게 담배를 살 수 있었다. 그래서 또래 친구들은 항상 그에게 담배 좀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희강은 당시에 1100원이었던 디스를 1300원에 되파는 장사를 했었다. 그 덕분에 학교를 땡땡이치고 오락실에 눌러앉아 하루종일 게임을 할 수 있었다. 당시에 희강은 장사꾼인 어머니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는 생각에 나중에 크면 자신도 장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희강의 어머니는 화장품을 팔았는데 미국에 사는 친언니의 도움으로 수입화장품을 싸게 들여와서 집에 쟁여두고는 동네 아줌마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커피와 다과를 내놓고 화장품을 판매했다. 보따리를 싸들고 돌아다니는 방. 판(방문판매)이 아닌 최초의 내방판매였다. 어머니의 수완은 희강이 납득할 만큼이었고, 그 덕에 스팸이나 냉동함박스테이크 같은 도시락반찬을 친구들에게 자랑할 수 있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방문을 닫고 창문을 열어 몰래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현관으로 아줌마들 목소리가 들려왔다.

별생각 없이 담배를 피우고 있던 희강은 방문의 경첩이 삐그덕하는 절규를 듣고 뒤를 돌아봤다. 희강의 어머니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들이 중학교 때부터 담배를 피워왔다는 사실을 잘 아는 어머니는 교복주머니에서 구겨진 담배를 수차례 발견했다. 하지만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남편 없이 홀로 아이를 키워오면서 한 명분의 사랑밖에 주지 못한 미안함 때문에 여태 싫은 소리 한 번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집들과는 다르게 평소에 부모의 잔소리를 안 듣고 자란 희강은 그런 어머니를 힐끗 쳐다보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왜요?"


손이 베일 것 같은 날카로운 주름이 빈틈없이 잡힌 검은색 월남치마에 청록색 블라우스를 입고 있는 어머니는 고개를  비스듬히 틀어 우아한 표정으로 귀에 걸려있는 진주 귀걸이를 만지면서 말했다.


"아들. 손님들 왔을 때는 밖에서 좀 피워."


"싫어요 내 방인데 내가 왜 밖에 나가서 피워요."


어머니는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거실로 담배냄새가 흘러나와. 손님들이 거북해하실 수도 있으니까."


희강은 부드럽게 흘러나오는 어머니의 말을 가로막듯이 말했다.

"아, 싫어요. 빨리 나가요. 그리고 앞으로 계속 방에서 피울 거예요."


희강이 완강하게 자기주장을 펼쳤다. 그런 희강을 가만히 지켜보던 어머니는 그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오더니 성질난 여드름이 잔뜩 올라와 있는 희강의 뺨을 철썩 때렸다. 작은 수박이 쪼개지는 소리가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좁은 방안을 맴돌았다.


"그래라 이 새끼야."


어머니는 쿨하게 그리고 나이스하게 짧고 굵게 토막 낸 한마디를 내뱉고는 거실로 나갔다. 잠시뒤에 거실에서는 내방한 아줌마들에게 화장품을 팔고 있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 이후로 희강은 얼마간 밖에서 담배를 피웠다. 그는 방안이 아닌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느닷없이 돌변한 어머니에게 쫄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회오의 자세인지 알 수 없었다. 방 안에서 담배를 피우겠다는 자기주장을 스스로 밟아버린 게 속이 상하기만 했다. 고등학생 희강은 자신이 다 큰 어른인 줄 알았지만, 어머니 앞에서는 한 없이 작아지는 어린애인 것만 같아서 순간 자신에 대한 연민으로 차올라 안타까운 마음만 들었다.



2024년 06월 19일 수요일

날씨는 한 겨울. 친구들과 등산을 감. 정상을 도착하니 눈이 내리기 시작함. 정상에는 산장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하룻밤 묵기로 함. 산장은 따로 방이 있는 게 아닌 아주 큰 방갈로 형태임. 자고 일어났더니 동이 터오는 새벽녘. 친구들은 여기저기 널브러져서 등산복을 입은 채 모두 잠들어 있고 나만 깸. 커다란 창으로 함박눈이 내리고 눈으로 덮인 설산의 풍경이 보임. 갑자기 100M쯤 떨어진 숲에서 섬광이 보이더니 무언가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이쪽으로 서서히 다가옴. 자세히 보니. 백호. 하얀 호랑이임. 근데 생김새가 특이함. 태평양 바다 같은 파란 눈을 지녔고 연분홍색 코를 가짐. 유령처럼 몸이 투명한데 검은색 줄무늬는 불투명함. 호랑이는 산장까지 걸어오더니 유리창 근처를 어슬렁거리면서 으르렁거림. 백호는 육중한 몸으로 산장문과 유리창을 번갈아 부딪히면서 안으로 들어오려고 함. 나는 두려움에 떨며 작은 화장실로 숨음. 한참을 숨어있다가 화장실 작은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기 위해 고개를 뺌. 동시에 백호의 얼굴이 코앞으로 오더니 파란 눈으로 빨려 들어 감.



희강은 잠에서 깬 뒤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를 켜서 자신이 꾼 꿈을 간단하게 기록했다. 눈꺼풀에 껌딱지처럼 달라붙은 눈곱도 떼지 못할 만큼 꿈이 너무 생생해서 소름이 돋았다. 오전 11시. 올바른 궤도로 자전의 주기가 바뀌어 지구가 태양을 바라보면서, 까맣게 칠해진 어둠이 조금씩 지워지고 사물들의 윤곽이 선명해지는 아침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시간. 생산성을 동반한 움직임으로 하루를 채우면서 노동의 가치만큼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의 휴식 시간쯤 되는 정오의 1시간 전. 성취감을 안겨주는 보람되고 의미 있는 하루를 시작하기에는 조금 늦은 시간. 희강은 숙취로 가라앉은 무거운 몸뚱이를 겨우 일으켜서 꿈의 내용을 컴퓨터에 저장한 뒤에 거실로 나갔다.

사업을 접고 나서부터는 어머니가 만들어 놓은 각종의 밑반찬을 안주삼아 하루가 멀다 하고 소주를 마셨다.

요새는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간에 일어나서 해가 빌딩 숲으로 누울 때까지 온라인 게임만 하다가 땅거미가 질 때쯤 편의점으로 술을 사러 가는 게 그의 일상이 되었다. 가끔 이른 아침에 어머니가 베란다에서 그가 마신 소주병을 정리하느라 요란한 소리를 낼 때도 있었지만, 알루미늄 야구배트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두통 때문에 눈만 잠시 떴다가 다시 잠에 빠져들기 일쑤였다. 잠을 뒤척였던 그런 날에는 늦은 오후쯤 돼서야 베란다에 주황색 타일 위로 빼곡히 늘어서있던 초록색 소주병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걸 확인했고 이른 저녁쯤이 돼서야 어머니가 소주병을 동네 마트에 팔았다는 사실을, 신물이 올라오는 역류성 식도염처럼 따끔하게 느꼈다. 희강은 화장실에서 밤새 온갖 노폐물과 함께 고여있던 소변을 보고, 주방으로 가서 유산균 한 알과, 밀크시슬 한 알, 종합비타민 한 알, 오메가 3 한 알을 한꺼번에 입에 넣고 미지근한 생수를 벌컥벌컥 마셔댔다. 작은 상처들이 무수히 스쳐간 낡은 식탁 위에는 손가락 3마디쯤 되는 크기의 포스트잇에 어머니가 적어놓은 메모가 붙어있었다.


'냉장고에 있는 도가니탕 데워서 먹거라. 냉동실에 밥 얼려놨다'


성심성의껏 쓰인 글씨를 보고 희강은 냉장고에서 김장김치와 도가니탕을 꺼내고 가스밸브를 돌렸다.



'백호가 나오는 꿈은 길몽입니다. 백호가 나오는 꿈은 긍정적인 징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경사, 승진, 재물운, 행복 등 좋은 소식의 지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나 검은 줄무늬를 가진 백호에 대한 꿈이라면 이것은 행운과 길조를 뜻합니다. 당신은 곧 엄청난 변화를 맞이할 것입니다. 이런 호랑이를 보는 것은 진보와 독립의 부족을..'



희강은 자신의 꿈이 길몽인지 흉몽인지 확인하기 위해 포털사이트에 검색을 했다. 이름이 알려진 용한 점집에서 운영하는 블로그에서는 백호가 등장하는 꿈의 해몽을 글로 풀어내고 있었다.

희강은 백호가 관련된 자신의 꿈이 길몽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기분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며 마음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전재산 200만 원으로 샀던 잡코인이 걷잡을 수 없는 수치로 폭등할까 하는 기대감이 알코올과 니코틴으로 쩔어버린 희강의 뇌를 흥분케 했다. 상상만으로도 두개골 속에 들어있는 뇌수가 정화되어 푸른색으로 바뀌는 것 같았다. 누렇게 변색된 네크라인이 명치까지 늘어진 흰색 티셔츠를 벗어 세탁기에 던져 넣고 며칠 동안 입었는지도 모르는 구멍 난 감청색 팬티를 벗어 쓰레기통에 버린 후 작은 종기가 나기 시작한 오른쪽 엉덩이를 긁으면서 욕실로 향했다. 희강은 시금치 찌꺼기 같은 게 끼어있는 마모된 칫솔에 엄지손가락만큼 치약을 짜서 이를 닦기 시작했다. 욕실거울 속에 수염이 수북하고 다크서클이 서식하는 퀭한 눈을 가진 별 볼 일 없는 중년남자의 몰골이 들어가 있었다. 고개를 내리 깔고 아래를 보니 배꼽밑에서 기생충처럼 자라고 있는 배렛나루가 한심한 모양으로 성겨 있었다. 희강은 자신이 며칠 만에 샤워를 하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시간의 어느 축에서부터 시작한 자기혐오는 그 안에 담겨있는 경멸과 멸시를 휘두르며 희강의 일상을 심판의 칼날이 달린 단두대 앞으로 이끌었다. 단두대에 스스로 목을 매달고 밧줄을 놓아 단번에 생을 마감하는 그 상상은 담배연기로 자욱한 좁은 방에서 음침한 어둠을 먹고 자라면서 몸집을 키웠다. 난폭하게 득세한 음울은 그를 경증우울이라는 병으로 몰아넣었다. 우울하진 않지만 우울하고 우울하지만 우울하지 않은 희한한 기분을 주는 그 병은 희강이 꿈을 꾸기 전까지 발목에 족쇄를 달아 숨 막히는 방안에 며칠씩을 가두었다. 백호가 나온 그 꿈은 잠수종같이 폐쇄된 희강의 방에서 그를 가까스로 구출해 주었다.


"로또를 사러 가자."


희강은 거울 속에 비친, 어느 순간 자신감이 결락된 스스로의 모습을 가련하게 바라보면서 면도기로 수염을 밀기 시작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