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실의 이유

손절의 기준

by 보림월


나는 친구가 딱 1명 있다.

고등학교 때 친구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지만

인간관계에서 조건 같은 건 보지 않았던 놈이다.

수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똑같은 방식으로 나를 대한다.

내가 가지지 못한 그의 정직함이 좋다.

상대방을 대할 때 거짓이 없는 진실함이 느껴진다.

이제껏 살면서 내 주변을 스치고 간 인연들이 꽤 많다.

하지만 그렇게 스쳐 지나간 사람들과는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는다.

'스쳐갔다'라는 문장에 내포된 의미는

진실된 관계를 맺지 못했다 라는 뜻이다.

현재 연락처에 남아있는 친구 목록에 그의 번호가 남아있다는 건

그는 그동안 나를 진심으로 대했다 라는 증거이다.


내가 정한 손절의 기준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나를 백안시했던 이들은 거침없이 손절한다.

두 번의 기회를 준다.

야구로 치면 쓰리아웃 룰이다.

그 기회를 날리면 심판의 아웃처럼 칼 같이 손절한다.

연락이 와도 차단시킨다.

아예 그들의 존재 자체를 내 삶에서 지워버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의 삶에서도 나의 흔적들을 말끔히 지워버리는 방법이다.

잘못된 방법이라는 걸 잘 알지만,

이것만큼 확실하고 깨끗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저 방법은 그야말로 정화가 된다.

머릿속과 가슴속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느낌이다.

나를 짓누르고 있던 무언가를 버리는 것처럼,


그리고 또 다른 손절의 기준이 있다.

상대방에게 더 이상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걸 느낄 때 손절한다.

참으로 이기적이지만, 상대방의 의사는 묻지 않는다.

'내가 더 이상 당신의 삶에서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할 것 같다.'라는 말을 뱉는 것은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하다.

그래서 그냥 연락을 끊어버린다.

마찬가지로 연락이 와도 차단한다.

조금 슬픈 사실은

나는 여태껏 후자의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제껏 잘 유지해 오던 관계에서

'이제는 내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겠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비참해진다.

존재는 한없이 작아지고, 그들을 바라 볼 면목조차 없어진다.

그 절망적인 시간이 두려웠다.

도망치려고, 달아나기 위해 손절을 했다.

참 부끄러운 일이다.

손절하는 그 순간 기억과 추억들은 내 세상과 공존하지 못한 채 망실된다.

내가 경험한 망실의 이유는

비관과 자조가 뒤섞인 과도한 자책 때문이었다.


더 이상 망실되어선 안 된다.

이제는 지켜야 할 것들이 눈앞에 선명하게 존재한다.

그리고 더 이상 망각해서도 안 된다.

어쩌면 나도 어떤 누군가에게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인간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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