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는 삶의 부피를 말해준다.
어떤 사람을 머릿속에서 떠올리면 과거에 그에게서 풍기던 냄새가 느껴진다.
나는 종종 그런 냄새들로 사람들을 구별한다.
어떤 이는 포근한 섬유유연제 냄새,
어떤 이는 코끝을 찡하게 하는 향수 냄새,
어떤 이는 위장병으로 인한 입냄새,
또 다른 어떤 이는 발 냄새가 심했고,
식당을 운영하던 사람은 늘 음식 냄새를 풍겼다.
내가 아는 사람들을 끝까지 나열할 순 없지만
어쨌든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로 그 사람과의 추억들을 기억한다.
어느 날 문득 나는 어떤 냄새로 타인에게 기억되고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타인에게 풍겨지는 나의 냄새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스스로 내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아봤지만 아무 냄새가 나질 않는다.
난 축농증도 아니고
코로나로 후각을 잃어본 적도 없을뿐더러
심미의 목적으로 시술되는 성형의 경험은 전무하다.
타인의 냄새에는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내가
스스로가 어떤 냄새를 가지고 있고 풍기는지 모른다는 사실은 조금 아이러니하다.
냄새는 그 사람과의 추억을 떠올리게 할 뿐 아니라
그 사람의 행실도 보여준다.
섬유유연제 냄새는 평소 청결한 사람
향수 냄새는 타인의 시선을 과하게 의식하는 사람
입냄새는 평소 술 담배를 많이 하고 방탕한 삶을 사는 사람이었고
발 냄새를 가진 사람의 직업은 운동선수였다.
이렇게 냄새는 그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야 만다.
하지만 무취를 가진 '나'라는 인간은 삶의 부피가 작아서 드러낼 삶이 없거나
너무 희미해서 보이지 않는가 보다.
나는 이런 무색무취의 인생도 가치가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에 늘 휩싸이곤 했다.
그래서 어떻게 서든 인생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고군분투했다.
그럴수록 의미는 손에 잡히질 않았고
내가 바라볼 수 없는 어두컴컴한 심연 속으로 내려앉아 잠겨버렸다.
그렇게 찾아오는 잦은 시간들 때문에 곧잘 절망에 빠지곤 했다.
그런 절망 속에서 오랫동안 빠져 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금방 헤엄쳐서 나오지는 못했다.
난 수영을 못한다.
내 평생소원은 냄새를 가지는 것이다.
무슨 냄새이건,
그게 향기던 악취던 상관없다.
그냥 내 몸에서 풍기는 냄새로 타인이 나를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내 역할이 선인이든 악인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무색무취의 인간으로서 인생의 재미를 찾기에는 너무 난망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