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간 C여고 동아리 축제에서 만화동아리 “하제(내일)”의 책을 사게 되었다. 여러 작품 중에서 기억나는 작품....평범한 여자고등학생에게 이상한 제의가 들어온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줄 테니 나와 바꾸자... 여학생의 눈을 빌려 보이는 그녀의 으리으리한 집과 재산 그리고 젊고 멋있는 남편.. 그녀를 돌보는 하인들과 주변의 멋진 모든 것들....지금 가진 것 하나 없는 여고생에게 참으로 부러운 것들... 하지만 계약조건은 절대 무를 수 없다는 것..
결과는 상상하듯 여고생은 계약을 승낙한다... 몸이 바뀐 뒤 잠자고 일어난 여고생은 침대에서 혼자 일어날 수 없었다. 부축임을 받고 일어난 그녀의 눈에 비친 거울 속의 모습은 늙은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어허헉!! 안돼~~
나도 모르게 손사래를 치며 벌떡 일어났다..
꿈의 내용을 기억하기도 전에 요양보호사 로봇이 나를 안정시키고 덩달아 긴급전화가 왔다..
“엄마 괜찮아요?”
“어... 악몽 꿨나 봐...”
“엄마 나 거의 다 왔어요. 아빠랑 식당으로 내려오세요..”
나의 심박수가 요동치고 소리를 감지한 AI가 은성이에게 연락을 했나 보다.
요양보호사 로봇이 날 천천히 일으켜주며 입는 로봇옷을 입는 것을 도와준다.. 오늘은 긴팔티셔츠와 기모가 약간 들어간 바지로 정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입기만 해도 움직이고 걷기에 수월하니 그건 참 편하고 좋다..
“괜찮아.. 고마워... ” 조용히 대답한다.
먼저 일어나서 몸 풀고 마을회관에서 당구를 치고 있던 은성 아빠가 뒤늦게 들어와서 괜찮냐고 묻는다.
“은성이 온대요 내려가 볼까요? 아침밥 같이 먹을까요?” 집 앞 마을식당에 천천히 걸어가 본다. 내 옆을 요양보호사 로봇이 천천히 보조를 맞추어 따라온다. 그러니까 나와 은성 아빠 그리고 각자의 보호자 봇... 넷이 천천히 걸으며 식당으로 향한다.
우린 구례의 감나무밭에 작은 3층짜리 작은 집을 지었다 서울에 사는 은성이는 우릴 돌본다.. 서울에서 1시간이면 오니까 별장처럼 사용하며 우리를 챙겨주며 산다.
우리는 배꼽 노리라는 예술인촌에 함께 지내고 초대 촌장인 배우 이상직 씨와 요리연구가인 부인인 효영 언니와 옆집에서 잘 지내고 있다. 30년 전에 내려와서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다. 연극배우들의 아지트로 만들어졌다가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여 한 마을을 만들었다. 식사도 마을식당에서 함께 하면서 서로의 이야기와 건강을 챙긴다. 요즘 요리 봇들이 얼마나 맛있게 음식을 해주는지... 한마디로 편하다..
뭐 원래 요리 솜씨도 별로 없던 내가 지금 이 나이에 요리를 한다면 거짓말이겠고..
요리도 내가 하는 것 없이 만들어 준거 먹고 아니면 시켜먹고 뭐 살면서 불편한 점은 딱히 없다. 중요한 건 내가 아직도 잘 살고 있다는 게 중요한 거지..
너무 느리지 않은 걸음으로 햇살을 받으며 천천히 100미터를 걸을 만큼의 힘은 아직 있다. 게다가 얇은 기계 옷의 도움으로 내가 스스로 걸어 다니며 움직일 수 있다는 건은 참 고마운 일이다.
감나무의 감은 잘 익어가고 있음은 집에서도 보긴 하지만 나무를 만지며 천천히 걷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감나무하면 까치밥인데.. 멸종위기까지 놓였던 까치가 저리 날아다니니 그 얼마나 다행인가.. 마을식당 가는 길은 잘 다져놓은 황톳길로 산책 분위기 내기 참 좋다.
마을식당에 가야 화상이나 홀로그램이 아닌 실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나이가 드니 사람 보기 참 힘든 시절이다...
2027년부터 생활로봇들과 산업계와 노동계 로봇이 80%가 넘어가자 생산력은 남아도는데 소비할 소비자가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 정부는 인간으로 태어난 그 자체만으로도 존중받을 만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2020 코로나 이후로 조금씩 실시하다가 2030년도부터 전 국민 기본소득 한 달에 200만 원씩 주는 법안이 마련되었다. 이상하게도 돈이 생기면 일 안 하고 여행 가고 놀 생각하고만 할 것 같은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랬다가 점차 돈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하고 맘이 여유로운 사람들이 되어 더욱 인간다운 사람들이 되어가는 세상이 되어가는 듯하다. 생활 걱정은 안 하고 살아도 되는 세상이 되어서 사람보다 로봇을 많이 보는 세상이 되어 사람이 참 그리워지는 나이다.
하지만 난 얼마나 다행인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고 있으니 말이다.
중국사람들이 참 좋아할 나이 88세... 아직도 난 할 일이 많다.
이런 된장찌개!!
누가 아침부터 마감 예약 문자 날리고 지리리야?
요양보호사 로봇이 문자를 읽어준다.
나도 아침엔 조용한 명상 후의 따뜻한 커피 한잔을 즐기며 분위기 있게 살고 싶다고!!!
나쁜 넘의 편집 AI 같으니라고!
그나마 정우성 오라버니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마감시간을 말해주니 내가 좀 참는다..
그냥 지들 알아서들 알맞은 시들을 찾아서 작업하면 되겠구먼..
또 새로운 걸 자꾸 해달라고 재촉이야..
이 좁은 세상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뭐가 있는 거냐고!!!
이젠 손으로 글을 잘 안 쓰고 말로 읊조리는 스타일로 시를 쓰기 시작하는데..
실컷 쓰면 뭐하나... 몇 년도에 쓴 작품과 흡사하다고 저작권 문제라고 빨간불이 켜지니..
아이고... 나도 좀 쉬자,,,
시집을 일 년에 한 권씩 30년을 내었더니만 그것도 세상은 나름 열심히 살았다는 의미와 내 인생의 기록이 되었다면 기록인 거지. 그래도 게으르게 살지 않았다는 그런 나만의 안도감이랄까. 요십년간은 사실 게으르게 지내긴 했지만 그래도 나의 루틴은 지키고 있다.
인터뷰가 잡힌 건 또 어떻게 해결 하누... 이번 주 금요일로 시간을 잡아야겠다.
세상이 편하게 변했지만 지금도 타로 마스터 맨드리 심리상담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 나이가 드는 할머니 상담가라서 더 맘이 편한지 아직도 나와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마울 따름이다. 40년 전 전에도 화상통화와 줌으로 상담했던 것이 이젠 홀로그램으로 이야기하고 눈물도 닦아 줄 수 있는 기술로 공간에 대한 제약은 없다만 그래도 약간은 직접 상담이 그립다.
아이고 뭔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낮잠 잘 시간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으러 간 거 얘기하다 시간이 다 갔네... 하여튼 쉬고 나중에 얘기하자고..
88세인 나는 아직도 할 일 많은 열정적인 할머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