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에서도 예외는 없다.
코로나가 아직 세상을 뒤흔들기 전이었다. 1월 초, 한국 출장을 위해 쾰른에서 고속 기차를 타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가는 길이었다. 집에서 쾰른 중앙역까지는 내가 차로 함께 갔다.
남편의 출장 가방은 원래 캐리어 하나와 노트북 가방 하나면 충분하다.
지금은 심리적 손절 상태인 지인이 한국으로 물건을 좀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가져온 짐이.. 캐리어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 많았다. 그때 너무 많다고 거절을 했어야 했는데 그걸 못하고, 큰 캐리어 두 개를 들고 갔다.
나는 짐을 기차에 다 싣고 출발하는 것을 보고 집으로 왔다.
동네 길로 진입을 하는데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왠지 불길한 예감. 내가 운전 중인 걸 뻔히 알기에 이 시간에는 좀처럼 전화를 안 한다. 아니나 다를까. 노트북 가방을 소매치기당했단다.
쾰른 역에서부터 같이 탄 사람이 있었는데 타면서부터 계속 통화 중이었다고 했다. 쾰른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 고속 열차는 중간에 서는 기차역이 두세 군데나 될까.. 프랑크푸르트 전 역인 Siegburg 역에서 누군가 의도적으로 남편을 구석으로 밀치며 내렸다고 하는데 그 순간 노트북 가방이 없어졌다고 했다.
노트북 가방에는 맥북, 아이패드, 안경을 비롯해 지갑, 여권까지 다 들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평소엔 외장하드를 노트북 가방에 넣고 다녔는데 그날은 외장하드를 캐리어에 넣었다. 자료는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여권이 없어 한국을 가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야 했다.
남편 생각에 내려서 기차역을 걷는 사람을 못 봐서 그 사람이 분명 다른 칸에 다시 탔을 거라고 얼굴을 알 거 같으니 기차를 확인해 보자고 했더니 역무원은 그럴 수 없다고 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내려서 큰 캐리어 두 개를 끌고 경찰서를 찾아가 신고를 했다. 경찰의 첫 반응이 몸은 괜찮냐고 물었단다. 옆구리를 찔리고 피가 철철 나도 모르고 경찰서에 오는 사람도 있단다. 다행히 몸은 괜찮았고, 형님이 형님 딸과 함께 공항으로 남편을 데리러 갔다. 블랙 아이스가 있어 교통대란이 있던 그날,, 집까지는 무사히 도착했는데 밤중에 집 앞에서 차가 빙빙 돌아 돌리지를 못하는 상황이라 형님은 우리 집에서 10분 거리인 집으로 갈 수가 없어서 우리 집에서 자고 갔다.
다행히 핸드폰은 호주머니에 있었다. 무슨 일이었는지 출장 가기 전, 카드와 맥북, 아이패드 시리얼 번호까지 다 사진을 찍어 두었다. 남편이 경찰서에 가기 전 기차에서 카드번호를 줘서 내가 전화로 정지를 시켰는데...
다음날 은행에 카드 재발급을 받으러 갔더니 은행원이 건네는 말.
"그 사람이 프랑크푸르트 역에서 기차표를 잃어버린 카드로 끊으려고 시도를 했네요."
남편의 예감대로 그 사람은 Siegburg 역에서 내린 후 다른 쪽으로 다시 탄 거였다.
결국 맥북도 아이패드도 가방도 지갑도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맥북을 새로 샀다. 다행히 잃어버리지 않은 외장 하드로 복원을 시키고 임시 여권을 영사관에서 발급받아 며칠 후 출장길에 다시 올랐다.
그때의 트라우마로 기차를 다시 타고 싶어 하지 않는 남편. 아예 안 타는 것은 아니지만, 그 후로는 내가 공항까지 차로 함께 간다. 진작 그때도 그랬을 면 좋았을걸.. 큰 맘먹고 장만한 테없는 안경도 아깝고, 마음에 든다고 아껴들던 가방도 아깝고.. 소매치기로 인해 잃은 손해가 컸다.
지금도 한국에 가면 자리를 맡는다고 핸드폰이나 핸드백을 의자에 던져두고 음료를 주문하러 가는 사람들을 보면 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나는 크로스로 매는 가방을 밖에 나가면 좀처럼 내려놓지 않기 때문에..
가방은 눈에 안 보이고, 자리만 보인다는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그건 한국에 있을 때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독일에 놀러 온 지인도 식당에서 핸드폰을 식탁에 얹어 두고 자리를 비우기도 하고 가방을 옆에 툭 하니 던져 놓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나만 애가 닳는다. 제발 핸드폰이랑 가방 관리 좀 잘하라고요..
유럽은 국경이 차로 이동 가능하니 잃어버리면 찾기가 좀처럼 어렵다.
소매치기는 일단 타깃이 되면 벗어날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잃어버렸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교한 수법을 가지고 작업을 거는 거 같다. 실제 파리에서 하루에 나도 언니도 한꺼번에 지갑을 소매치기당한 적이 있었다. 나는 바로 알았지만.. 언니 지갑을 들고 있던 조카는 나중에야 알았다. 몽마르트르에서 어떤 흑인 남자가 잠깐 밀친 적이 있었는데 그때인 거 같다며..
유로화 환율이 높아 예전에 비하면 여행 오기 좋은 조건은 아니지만 어느 여행지나 한국 사람들 많이 보인다.
제발 유럽 여행 오면 소지품 관리에 만전을 기하시기를..
엊그제 네덜란드 아웃렛에 갔다가 뭘 잃어버렸는지 혼이 반쯤 나간 아주머니를 봤다.
아마도 중요한 소지품을 분실했던지. 소매치기를 당했던지.. 둘 중 하나였다.
살아가는 방식이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남에게 평생 트라우마를 남기고, 잊어버릴 수 없는 좋지 않은 기억을 남기며 살아가는 소매치기하는 사람들은.. 그 업을 나중에 다 어찌 갚으려고 그럴까. 마음 아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