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해도 괜찮아.

독일 일상

by 저먼해

구름 가득한 하늘이 비를 뿌리다 말다..

며칠 햇빛에 인색하더니,

오늘은 구름 가득한 하늘에 햇빛이 들었다 말다..

비가 안 온다.

배당을 둘러메고 슈퍼로 갔다.

이런 날은 산책에 나서야지.

숲길은 질퍽일 거 같아 시내로 향했다.


오랜만에 날씨가 좋으니 다들 마트 왔나.

계산대 줄이 엄청 길다.

요즘 늘어나고 있는 셀프계산대.

여긴 다행히 줄이 짧다.

직접 계산을 마치고 물건을 담고 있는데..

80은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바로 뒤에 와서

좀 도와달라고 한다.

알려 주는데 화면은 안 보시고 물건 옮기기 바쁘다.

기꺼이 계산하는 데까지 도와드렸다.

"알면 별거 아닌데" 하시며 고맙다고 몇 번을 말한다.

그래도 셀프 계산대 시도를 해보는 용기가 멋지다.



2월 중순을 넘기니 새소리가 더 다양하고 경쾌해진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시냇물 따라 산책로를 택했다.

유치원 마당을 접하고 있어 아이들 소리로 왁자지껄.

서너 살 꼬마들이 축구를 하다가 공이 담장을 넘어왔다.

열 명쯤 되는 꼬마들이 울타리에 매달려.

"공 좀 넘겨주세요."

전깃줄에 나란히 앉아 있는 아기 참새들 같다..

빨갛고 푹신한 공을 울타리 너머 던져줬더니..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아이들 유치원 다닐 때 생각이 난다.

낙엽으로 온몸을 덮고 있던 아이.

수영복 입고 물놀이하던 아이.

세 발 자전거 타고 노느라 나를 기다리게 했던 아이.

한국어 동화책 들고 가, 나란히 아이들 앉혀 놓고 한글 가르치던 아이.

영원할 것 같았던 시간이 어느새 훌쩍 흘렀다.


셀프 계산대에서 도움을 요청하던 할아버지도..

그런 시절이 있었을 텐데..


도움을 요청하고,

부탁을 하고..

기꺼이 응해주고.


힘들 때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원하는 게 있으면 일단 도움을 요청해 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30대의 나도 되어 봤다가

80대의 나도 되어 봤다가.


"티끌만 한 인간이, 그리고 지구라는 작은 터전이 얼마나 드물고 귀한 기적인가."

-코스모스-


이 기적의 땅에서 기적같이 평온한 시간이 흘러간다.


tempImageQaK761.heic 막둥이 유치원 때. 데리러 갔는데 없어서 한참을 찾았더니 낙엽 이불 덮고 이렇게 밝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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