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본의 아니게 올겨울 럭셔리하게 보내고 있다. 우리 집은 유럽에서는 흔치 않은 바닥 난방이 되는 온돌이다. 독일 새로운 트렌드가 온돌인지, 새로 짓는 집들은 온돌이 많다. 15년된 우리 집. 독일에서는 새 집에 속한다.^^
3층으로 된 집인데 제일 위층에 보일러가 작동이 안 되어서 사람을 불렀다. 예약을 잡는데 2주. 기다리는 2주 동안 영하 10도까지 내려가는 독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강추위가 있었다. 갑자기 방마다 온도 조절하는 센서가 띡깍띡깍 소리를 내더니 1층 거실과 부엌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독일 온돌은 한국처럼 외출모드도 없고 집 전체가 따뜻해지는 데까지 3일은 걸린다. 20도로 설정을 해두면 그대로 유지를 해주는데 1층이 갑자기 더워졌다. 20 도는 겨울에 긴 옷을 입고 따뜻까지는 아니어도 춥지 않을 정도의 온도인데 온도 조절이 안 되어서 반팔을 입어도 춥지 않다.
2주를 기다려서 온 사람이 원인을 못 찾는다. 다시 날짜를 알려주겠다는데 받은 날짜가 다시 2주 후다.
독일에서의 기다림이 이제 놀랍지도 않다. 겨울인데 보일러 작동이 안 돼서 추위에 2주를 기다려야 한다면 어쩌나 싶다. 온도 조절이 안 되지만 따뜻하니 다행이다.
지하 보일러가 있는 방문을 열면, 휭휭!! 보일러가 가스를 태우며 열일 하는 소리가 들린다. 돈 돌아가는 소리다. 가스비는 매달 내지만 정산은 1년에 한 번 한다. 3월 초 집집마다 검침원이 온다. 예약도 없이 오는 검침원. 15년을 살다 보니 3월 초에는 아예 가스, 수도, 전기까지 계량기를 보고 검침한 날짜와 시간까지 매년 같은 전화번호로 보내주면 Perfect!라는 답장이 온다. 그걸 정산해서 작년에 낸 금액보다 적게 썼으면 돌려주고, 많이 썼으면 더 내야 한다. 작년 사용 내역을 기초로 5월부터 낼 돈을 다시 산정하면 그 돈을 매월 낸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가스비도 올라갔는데 쉬지 않고 돌아가는 보일러 소리가 반갑지 않다. 겨울엔 제습기와 건조기 없으면 빨래도 안 마르는데 따뜻한 실내 온도 탓에 바짝바짝 잘 마르니 좋은 점도 있다. 보일러 오작동으로 럭셔리하게 더운 겨울을 다 보내는구나. 즐기자. 긍정 대마왕, 다시 긍정 모드 발현 중이다.
장 보러 가면서 다 마신 물병과 맥주캔을 지하에서 가지고 올라왔다. 한 5분 따뜻한 곳에 뒀을까? 한데에 있던 플라스틱 물병들이 팝콘 터지듯이 펑펑 소리를 낸다. 지하와 1층의 온도 차이로 겨울에 종종 듣는 소리이긴 한데 높은 실내 온도 탓에 옥수수가 팝콘이 되듯 펑펑, 불꽃놀이도 아닌데 펑펑..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렇게 연속되는 사운드는 처음이다. 많이도 마셨다. 빈병을 교환하니 14유로다.
독일은 내가 처음 왔던 20년 전에도 플라스틱 물병은 이렇게 재활용을 하고 있었다. 물론 살 때 재활용하면 받을 수 있는 돈을 먼저 낸다. 물에 따라 물값보다 물병 값이 더 비싸기도 하다. 오늘따라 온도 차이로 찌그러진 물통 때문에 바코드를 제대로 못 읽어내 여러번 넣었다 뺐다 하느라 바빴다.
2주 후에 오기로 한 보일러 회사, 1층이 사우나 같다고 시간이 생기면 좀 빨리 와달라고 이야기는 했는데.. 과연 2주 전에 오기는 하려나!!!
성질 급한 사람은 기다리다가 숨 넘어가기 딱 좋은 독일이다.
20년을 살아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익숙해지지 않는 내가 문제인지, 숨가쁜 변화의 시대에 느려 터진 독일의 문제인지 이젠 나도 헛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