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d Oct 23. 2021

대학 어디가

고등학교 3학년

 삼고 (三苦)    


 글을 쓰기 위해 고등학교 내내 썼던 일기를 꺼내 보았다. 자기 연민이 좋지 않은 거라지만 나 자신이 안쓰러웠다. 공부를 해도 안 해도 힘들어했다. 공부를 하면 남들보다 못한다고, 공부를 안 하면 남들은 공부하고 있는데 나만 공부 안 한다고.. 대한민국의 고3이 된 나는 매일 그런 내용을 일기에 적었다.  

  

 이주현, 드디어 고3이다. 3월 모의고사를 봤다. 고등학교 내내 4등급이었던 수학이 1등급이 되었다. 사탐은 1,2등급? 영어는 1등급. 원래 못했던 국어는 미쳐서 4등급이었다. ‘3월 모의고사가 수능까지 간다.’라는 말이 있다. 개뻥이다. 유지하면 엎드려서 절해야 된다. 이후 계속 치렀던 모의고사에서 계단에서 발을 헛디딘 것처럼 거침없이 굴러 떨어진다. 모의고사 점수가 계속 내려갔고 9월 모의고사 점수도 최악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수시 원서 접수를 코앞에 둔 시간이 왔다.     


 친구들끼리 작년에 어떤 선배가 서울 중하위권 대학을 썼다더라 하면서 대학 이야기에 한창이었다. 그 선배는 공부를 많이 못했던 사람으로 취급되었다. 나도 무슨 사연이 있길래 중하위권 대학을 쓰시나 생각했다. 주현아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3학년 담임선생님과 수시 상담을 했다. 내가 너무 어중간해서 높은 대학을 쓰기에도 애매하고 낮은 대학을 쓰기에도 애매하다고 하셨다. 맞았다. 1학년 때는 좌절하고 2학년 때 다시 극복해보려고 노력해서 어느 정도 올랐는데 3학년 때는 성적이 변하지 않았다. 생기부도 특목고 치고는 별 볼일 없었다. 선생님은 내게 ‘뭔가 사연 있는 사람이 가는’ 학교를 추천하셨다. 하지만 나는 내 주제보다 높은 대학을 썼다.     


 수시 원서를 쓴 시점부터 나는 더 이상 고딩이 아니었다. 이미 대딩이었다. 상상 속에서.. 공부를 하면서 어떻게 풀까 생각은 안 하고 대학교에서 뭘 할지만 상상했다. 대학교에서 운명처럼 만난 사람과 사귀게 되고, 서울 여기저기(내가 가게 될 대학은 서울이라고 확신했으니까)를 놀러 다니는 상상..     


 이주현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


 수능은 처음이라     


 ‘모르고 핸드폰 가져가서 부정행위하면 어떡하지?’ ‘수능 만점 맞아서 강동원 만나면 뭐라고 하지?’ ‘답안지 밀려 쓰면 어떡하지?’ 주현아 제발 이딴 걱정 하지 마..     


 수능이 내일이다. 떨리면서도 안 떨린다. 대략적인 마무리를 하고 기숙사에 갔다. 내일 메고 갈 짐을 한 보따리를 싸놓았다. 이제 씻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혹시 잠이 안 올지 몰라서 안대도 챙겼고 청심환도 챙겼다. 빨리 자고 내일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자!     


 망했다. 잠이 안 온다.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뛴다. 처음에는 같이 떠들었던 룸메도 잠이 들었다. 너무 초조했다. 잠을 자야 컨디션이 유지되는데 잠이 안 와서 잠이 왜 안 올까 잠을 안 자고 걱정했다. 다시 생각해도 속이 안 좋다.     


 정말 혼자 쌩쇼를 다 했다. 침대에 누운 지 1시간이 경과하자 기숙사 1층 보건실로 가 감기약을 타 왔다. 감기약이 잠이 오게 한다고 했다. 감기약을 먹고 안대를 끼고 누웠다. 그런데 미친 심장이 너무 나댔다. 평소에 활자만 읽어도 곯아떨어지는 과학 교과서를 꺼냈다. 7장을 읽었다. 이러다 밤새서 다 읽을 기세다.


 2시간이 경과했다. ‘운동을 해서 몸을 피곤하게 하자.’ 룸메가 자고 있으니 조용히 플랭크를 했다. 힘들어서 저절로 눕게 됐다. 3시간 경과. 최후의 수단으로 청심환을 먹었다. 진짜 망했다. 내가 청심환을 먹은 건지 마약을 먹은 건지 헷갈렸다. 잠이 올 듯 말 듯 노곤하면서도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는데 거기에 안정제를 곁들이니 이건 정말 대환장 파티였다. 마약을 한다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내 정신 상태가 너무 몽롱해서 잠에 들려고 뭘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상태로 계속 침대에 누워있었다. 해는 점점 뜨고 나는 뜬 눈으로 알람을 들었다.      

 정말 내 인생에서 가장 아찔한 아침이었다.    

 

 잠도 못 자서 누런 얼굴로 아침을 먹었는데 입에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속이 거부했다. 빨리 나를 결전의 장으로 데려갈 버스에 올라탔다. 학교까지 소풍 갈 때 타는 관광버스를 타고 갔다. 버스 안의 찬란한 조명과 새벽의 어두움이 묘했다. 버스 안에서는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인강 강사들의 적중 예상 프린트를 보고 있었다. 실은 내가 수능을 보러 가는지 놀러 가는지 구분이 안 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버스의 목적지는 틀림없이 학교였다.          


 버스에서 내려 친구들끼리 시험 잘 보라는 인사를 하고 고사장에 입실했다. 그 이후의 일은 거의 생각이 안 난다. 실은 생각을 안 하고 싶다. 아침 일찍 입실한 나는 해가 진 오후에 학교에서 나온다. 일부러 부모님한테는 마중 나오지 말라고 했다. 혼자 자유를 느끼고 싶었다. 엄마는 늘 시험을 못 봐온 나에게 “수능만 잘 보면 돼.”라는 말로 위안을 줬다. 그런데 오늘 시험은 진짜 그 ‘수능’이었다. 실감이 안 났다. ‘내가 19살이나 되었으며 아침 8시부터 외국어 영역까지 보고 6시까지 장장 12시간에 가깝게 수능을 보고 나왔구나. 이게 내가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공부했던 이유였구나.’ 갖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기숙사에 들어와 혼자 약간 멍을 때리고 가채점을 하지 않을 작정으로 누워 있었다. 점수가 조금 궁금하긴 했다. 터덜터덜 가채점표를 들고 학습실로 채점을 하러 갔다. 예상대로 망했다. 겨우 외대 논술 최저를 맞췄다. 아직 정신 못 차린 이주현은 남은 수시 카드에 기대를 건다.     


 자격지심 끝판왕     


 여러분, retry라는 말이 뭔지 아시나요? 다. 시. 시. 도. 하. 다. 맞아요, 저 재수해요. 이번 열차는 재수행, 재수행 열차입니다. 이주현은 기대를 걸었던 수시도 다 떨어진다. 이대로 재수다.

     

 수능이 끝난 기숙사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학교에서 집의 거리가 멀었던 나와 당시 나의 룸메이트들은 정말 재미있게 놀았다. 하루는 방에만 있는 게 지겨워서 같이 홍대에 놀러 가기로 했다. 그 친구도 재수가 결정된 상황이었다. 우리는 2호선 열차에 몸을 실었다. 가다 보니 홍대는 학교에서 너무 멀었다. 우리는 우연히 근처였던 샤로수길로 목적지를 바꾸게 된다. 왜 하필 샤로수길이었을까? 우리 둘은 그날 평생 볼 서울대생은 다 보고 왔다. 과잠을 보는데 다 ‘SNU’였다. 부러움과 자괴감에 휩싸였고 우리는 스스로가 웃겨서 깔깔 웃었다. 샤로수길이 재수생들이 놀러 가기에 최악의 장소라는 건 확실하다.     


 수능이 끝나고 모든 대학 발표가 났을 무렵, SNS는 친구들의 합격증으로 도배가 되었다. 사자는 물론이고 호랑이 등등 각종 동물이 다 등장했다. 친구들이 하루아침에 고학력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비굴함을 느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의 소속을 찾지 못했다. 무소속이었던 것이다. 또 위기의식까지 느꼈다. 내가 대학을 못 가서 친구들 사이에서 낙오될 것 같았다. 친구들이 다 대학에 가지 못했다고 수군거리는 것 같았다. 친구들에게 인정받으려면 재수를 해서라도 좋은 대학에 가야 된다고 생각했다.      


 대학 결과가 다 나온 상태에서 졸업식을 맞았다. 애증의 학교가 오늘로 마지막이라니 싱숭생숭했다. 대학에 붙은 것 같은 아이들은 얼굴에서 표가 났다. 반에서는 마지막으로 졸업 소감을 말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마지막까지 찌질했다. 반에서 우는 아이들이 거의 없었다. 나만 앞에서 서럽게 울었다. 눈물이 무얼 의미했을까? 3년 동안 버틴 내가 대견한 마음 50, 대학 못 간 무소속의 부끄러움 50.     


 졸업식 축하공연에서 친구가 불러준 노래의 첫 가사이다.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


이전 10화 죽어야 하는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