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2월까지는 실컷 놀았다. 3월부터는 정말 재수를 시작해야 됐다. 수능이 끝나고 3월까지 미친 듯이 놀아서 오히려 공부를 하고 싶었다. 실은 아니다. 노는 게 제일 좋아. 전형적인 한국 사람인 나는 나이에 정말 집착하는데 시작부터 1년이 남들보다 늦었다는 생각에 정말 짜증이 났다. 소중한 20살을 공부하는 데 쓰다니 억울해서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처음에 우리나라에 코로나가 점점 퍼지기 시작했을 때 (그래서는 안 되지만) 나만 멈춘 게 아니라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집 근처에 있는 독학 재수 학원에서 재수를 시작했다. 목표는 성균관대학교였다. 고등 동창들이 많이 간 학교라서 목표로 정했다. 재수는 고등학교보다는 힘들지 않았다. 정말 철저하게 월간, 일간 계획을 세우면서 살아서 그날 계획한 일을 다 하면 바로 집에 갔다. 공부를 하다 보니 약간 재미가 있는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내가 얼마나 유리멘탈인지도 잘 알아서 요가학원에 등록했다. 요가는 건조한 수험 생활의 힐링 시간이었다. 혼자 다니는 것도 힘들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3년을 기숙사 때문에 혼자 지내본 적이 없어서 오히려 편하고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재수 학원에 잘생긴 조교 선생님도 있었다. 여자가 훨씬 많았던 고등학교 생활 이후에 처음 느껴보는 설렘이었다.
재수 생활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는데 감정 기복이 너무 심했다. 문제를 조금 잘 풀면 대학에 잘 갈 것 같다는 기대를 하면서 문제를 못 풀면 또 대학에 못 가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나에게 확신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좋은 대학에 가야만 했다. 재수를 하면서 학벌에 대한 나의 욕망은 최고치로 올라갔다. TV에 나온 연예인이 어느 대학인지 줄줄 외웠다. 지나가는 사람의 과잠을 보면 어느 학교 이니셜인지 혼자 초성 게임처럼 맞추면서 다녔다.
가장 두려웠던 건 삼수였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삼수는 안 된다는 생각이 컸다. 나의 20대의 2년이나 낭비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두 번째 수능으로의 여정을 시작했다.
재수생활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밤에 잠을 못 잤다. 또 나의 고질병인 생각 꼬리물기가 시작된 것이다. 누워서 내내 고등학교 때에 있었던 일들과 감정들을 붙잡는 것이다. 덤으로 첫 번째 수능에서 밤을 새웠던 것이 누울 때마다 생각났다. 두 번째 수능 전날에도 잠을 못 잘 순 없었다.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기로 했다. 엄마한테는 잠이 안 온다고만 했다.
난생처음 정신과에 갔다. 내가 오게 될 줄은 몰랐다. 엄마와 함께 창구 앞에서 기다렸다. 예약시간에 갔는데도 한참을 기다려서 진료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새삼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속으로 우리 모두 힘내자고 응원의 한마디를 건넸다.
진료실에는 나와 의사 선생님만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잠을 왜 못 자는 것 같느냐고 내게 물으셨다. 의사 선생님은 딱 한 마디 했는데 누가 울린 것처럼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흘렸다. 졸업식 후로 처음 운 것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말없이 휴지를 건네셨다. 나는 울면서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고등학교 얘기를 했다. 그동안 속에 쌓아둔 것들이 빵 터져나갔다. 울음의 힘을 이때 알았다. 약을 지어주신다고 했는데 없어도 될 것 같았다. 나는 더 힘들어지면 약을 짓겠다고 했다.
재수 생활이 조금 지겨워질 때쯤, 엄마 아빠는 나에게 공무원 시험을 볼 것을 제안했다. 우리 엄마는 공무원이다. 5시면 딱 퇴근한다. 반대로 사업을 하면서 비교적 불안정한 생활을 하는 아빠는 엄마를 보고 공무원이 제일 좋은 직업이라고 한다. 엄마 아빠는 지금 공무원 시험을 한 번 보라고 권유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절대 공무원은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한 번 사는 인생 재밌게 살다 가고 싶었다.
그런데 뭐 공무원 생각해보면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출퇴근도 일정하고 연금 나오고 학력 필요 없고.. 사실 당장의 재수 생활을 청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당장 공무원 시험에 응시한다. 공무원 시험에 응시한다고 특별하게 뭘 준비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시험과목이 고등 교육과정이었기 때문에 계속 내가 하던 공부를 했다.
공무원 시험 당일, 국어 문제를 푸는데 예감이 좋았다. ‘나 이러다가 고졸되는 거 아니야?’ 작년 문학 시간에 배운 ‘중국인 거리’ 소설이 나온 것이다. 기억은 안 나지만 국어 시간에 배운 작품들이 꽤 많이 나왔다. 기대에 부풀어 한국사 페이지로 넘겼다. 한국사라면 1등급을 놓쳐본 적이 없는데 공무원 한국사는 너무 지엽적이었다. 다 찍었다.
우리는 시험장이었던 수원의 명물 수원 통닭을 맛있게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8월은 슬럼프의 계절. 쳇바퀴를 돌던 날들 속 하루, 나는 쳇바퀴에서 강제 이탈을 했다. 생각에 머리가 꽉 차서 공부를 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 때 썼던 일기를 쭉 읽어봤다. 소름 돋게 고3의 슬럼프도 같은 달 같은 주에 왔던 것이다. 역시 인간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나는 내가 왜 귀한 20살, 1년을 낭비하면서 공부를 해야 하나 너무 억울했다. 내가 외고에 가지 않고 일반고에 갔다면 중하위권 대학에 가든 하위권 대학에 가든 만족하고 다녔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괜히 주제에 맞지도 않는 고등학교에 가서 욕심부리다가 이렇게 된 것 같아 짜증 났다. 또, 가고 싶은 대학만 정해놓은 것뿐이지 하고 싶은 건 없었다. 맹목적으로 대학만 좇다가 현타가 온 것이다. 왜 이 긴 시간을 투자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공부를 해야 하는 당위성을 잃은 것이다.
당시 학원 원장 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이제 나는 지쳐서 어느 대학을 가던 상관없으니까 재수를 그만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 내게 선생님은 말하셨다. “저기 쟤 보이지. 재 어느 대학 다니게? 연세대 화학과 다녀. 근데 의대 간다고 반수 하겠다고 다시 학원 왔어.” 어이가 없었다. 내 입에서는 “왜요?”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원장님은 말하셨다. “인간의 학력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어.”
인간의 학력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다. 맞다. 나도 한동안 잊고 살았을 뿐이었다. 남들과 다르게 특목고를 다닌다는 점에서 우월감을 느낄 수 있었다. 우월감의 중독성은 정말 강하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소위 뺑뺑이로 아무나 갈 수 있는 학교가 아니라는 점에서 엘리트 의식에 취해 있었다. 무시받지 못하는 위치에 있는 것은 든든한 느낌을 주면서도 남들을 함부로 무시해도 될 것만 같은 정당성을 부여해 주었다. 막상 외고 안에서는 찌질하고 공부도 못했지만 밖에서는 과잠을 입으며 나의 우월감을 과시했다. 내가 더럽게 자존감을 채울 수 있었던 방법이었다.
그 중독적인 맛을 오랜만에 떠올린 나는 입맛을 다시며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나 이주현. 이제는 수능 유경험자다. 수능 전날 만반의 준비를 했다. 또 밤새는 일이 없도록 수능 일주일 전부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다. 수능 전날에는 심지어 더 졸리게 하려고 4시에 기상했다. 마지막 만찬으로는 잠이 잘 온다는 상추를 먹었다.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개망했다. 또 잠이 안 온다. 누워서 한국사 강의나 봤다. 잠이 오겠지. 1시간 경과. 작년 수능의 비극이 떠올라서 죽을 것 같았다. 내가 잠을 못 자는 것을 확인한 엄마는 나에게 화를 냈다. 왜 또 잠을 못 자냐고.. 나도 자고 싶다. 엄마를 진정시키고 나는 동생에게 갔다. 동생 침대에 누웠다. 동생이 나를 토닥여 주며 빨리 자라고 했다. 몇 분 후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소리였으면 좋았겠지만 내 소리는 아니었다. 역시 동생은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 조용히 내 방으로 돌아가 눈을 감았다. 사탐 이지영 선생님이 잠이 안 오면 눈만 감고 있어도 자는 만큼의 충전이 된다고 하셨다. 그 말이 나를 안심시켰다. 두 번째 수능도 뜬 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수능장에 도착했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1교시 국어 영역
: 나 ADHD인가? 지문을 읽는데 머리에서 노래가 재생되고 있다. 노래 끄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반복 재생이다. 잠도 못 자서 몽롱한데 노래까지.. 국어 망했다.
2교시 수학 영역
: 주현아 대학 갈 수 있는 길은 수학밖에 없다! 국어에서 못한 거 지금 만회해야 돼! 재수까지 하면 시험 난이도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어느 정도가 나와야 1등급인지 예상했다. 원래는 최고난도의 21번 30번을 풀 마음은 없었는데 두 개를 안 풀면 1등급이 안 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한 번도 도전해보지 않았던 21번 문제를 시험장에서 처음 풀어보았다. 웬일이니, 풀렸다..
3교시 영어 영역
: 졸려 죽겠다. 밤샘 플러스 식곤증까지 와서 죽을 것 같았지만 영어만은 1등급이 아니면 안 되기에 눈에 불을 켜고 풀었다.
4교시 한국사 영역
: 너 한국사 잘하잖아
5교시 사회탐구 영역
: 평가원 이럴 겁니까? 자신만만했던 윤리와 사상이 어려웠다. 법과 정치는 뭐..
6교시 외국어 영역
: 고등학교 3년 내내 배운 일본어 1년 만에 까먹다.
두 번째 수능이 끝났다. 이번에는 엄마 아빠가 데리러 왔다. 엄마가 차에서 눈물을 터뜨렸다. 내가 밤을 또 새워서 망할 줄 알았나 보다. 하지만 나 이주현, 수능 2 회차다.
가채점 결과 국어가 나의 발목을 잡다 못해 나를 질질 끌었다. 수학은 3개를 틀린 쾌거를 거두었고 다른 과목은 그냥저냥이었다. 또다시 한국외대 논술 최저를 맞추었고 성균관대 최저도 맞추었다.
모든 것이 끝나고 수시 결과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최저를 맞춰서 수시에서 기대를 하고 있었다. 숙대 홈페이지에서 학생부 종합전형 합격여부를 확인했다. 예비 21번이었나.. 외대 홈페이지에 들어가 결과 버튼을 눌렀다. 예비 12번이었다. 망했다.
논술 예비 12번. 떨어졌다는 뜻이다. 그 12명을 못 이겨서 대학 레벨이 한참 내려간다는 게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내 앞의 12명을 청부 살인하고 싶었다. 그럴 용기도 없지만..
수시도 모두 떨어진 나는 정시를 쓸 수밖에 없었다. 시스템을 돌려보니 문과인데 국어는 죽 쑤고 수학을 잘 봐서 이과로 교차지원을 하는 게 대학의 레벨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었다. 과도 필요 없고 그냥 높은 대학 위주로 골랐다.
정시 원서를 들고 재수학원에 상담을 하러 갔다. 원장 선생님은 나에게 삼수를 하라고 했다. 삼수는 진짜 지겨워서 토할 것 같았다. 지칠 대로 지친 나는 그냥 점수 맞춰서 간다고 했다. 선생님은 나에게 말했다. “너 분명히 네 발로 학원에 다시 올 거야.” 학원을 나와 길을 걷다가 서러움에 눈물 콧물을 흘리며 울었다. 마스크는 답답하지만 도움이 된다.
수시러였던 나는 새삼 정시의 어려움을 깨달았다. 나는 나름 문과 상위 10%였다. 그런데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대학을 가야 될 상황에 놓였다. ‘외대만 붙었어도.. 도대체 정시로 갈 대학이랑 수시로 갈 수 있었던 대학이랑 몇 계단 차이냐고!’ ‘이런 대학에 가면 나는 이제 고등학교 친구들이랑도 못 놀아.’ 많은 생각들로 괴로웠다. 삼수는 할 수 없었기에 정시 성적에 맞는 대학을 넣을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 다 취업 못할 때 나는 빨리 취업이나 해야지.’ 대부분 문과인 고등학교 친구들과 다르게 나는 대학은 별로지만 이과에 가서 취업을 먼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식으로 나는 자기 위로했다.
정시로는 건축학과, 컴퓨터 공학과를 넣었다. 정말 과는 하나도 생각 안 하고 넣었다. 최종적으로 나는 안산에 있는 대학의 건축학과에 입학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