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학
남들보다 늦는 걸 극도로, 병적으로 싫어하는 나, 휴학을 했다. 충동적으로 휴학을 했다. 이제 뭘 해야 할까? 건축보다는 수능 공부가 쉬울 거라고 생각한 나는 더 높은 대학으로의 삼수를 결심한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는지 또 적성은 생각 안 하고 취업을 위해 이과로 시험을 보려고 한다.
근처에 있는 재수학원에 가서 상담을 받았다. 내가 문과도 아니고 이과로 전향해서 고작 5개월 공부해서 인서울 대학에 간다고 하니 원장도 기가 막혔나 보다. “이번 시험은 남은 시간 동안 너의 모든 걸 끌어내서 시험을 봐서 스스로 너의 노력을 좋게 평가하고, 내년에 또 시험 보면 좋을 것 같다.” ‘내년에 또? 그럼 4수하라고?’ 머리가 아득했다 4수라니.. 이건 돈만 벌려는 계략이라고 생각하고 학원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집에 와서 생각했다. ‘내가 어렸을 때 대학에 가서 진짜 하고 싶었던 게 뭐였지?’ 꿈이 많은 아이였다. 고3 때는 친구들이 원하지는 않았지만 다 같이 몽골 여행을 가자고 했다. 밴드 음악을 들으면서 밴드도 하고 싶었고 단편영화도 만들고 싶었다. 또 알바를 하면서 부모님한테 용돈을 안 받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다시 갇혀서 시간을 보내면 언제 이 일들을 할 수 있는 걸까?’ 생각을 바꿨다. 나중에 3수를 하든 4수를 하든 일단은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자.
나는 생각보다 실행력이 빠른 사람이었다. 햄버거 가게 알바, 학원 알바, 밴드, 공모전 모두 다 일주일 만에 벌려놓은 것들이다. 이제까지는 무언가를 하려면 고민만 하다가 해보지도 못하고 끝냈다. 그런데도 계획은 병적으로 열심히 세우는 사람이었다. 남들보다 뒤처지기 싫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동창들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다. 문과에게 최고의 스펙이 된 유튜브를 하는 친구도 있었고 부계정으로 열심히 서포터즈 활동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외국 나이로는 아직 19살인데 21년의 인생을 낭비했다는 자괴감에 빠졌었다. 과거의 나는 계획만 세우고 두려워서 실행으로 못 옮기고 기회를 놓쳤다. 그랬던 이주현 달라졌다.
먼저 밴드에 들어갔다. 피아노도 안 쳐본 지 오래됐지만 눈 딱 감고 지원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들과 했던 밴드 합주 수행평가를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가장 값진 경험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나의 심장은 무대에서 두근거렸고 밴드의 진정한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놀랍게도 밴드에 합격했다. 내가 좋아하는 신촌에서 활동하는 밴드였다. 친구들 모두 다 다른 대학에 다녔고 성향이나 외모도 다 달랐다. 나의 고질병인 학벌주의는 아직도 머리에서 기어 다녔다. 처음 밴드 멤버들을 만나 자기소개를 들었을 때 본능적으로 내가 제일 낮은 대학에 다님을 의식했다.
밴드에서 뜻밖에 나와 비슷한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비슷한 수준이 아니라 똑같았다. 나보다 높은 대학에 다니는데도 내가 느꼈던 자격지심을 느끼고 학벌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또 미대에 다니는 여자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자칭 한국의 유교걸인 나는 파격적으로 스모키 화장을 하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첫인상은 무서워 보였는데 몇 마디 나누고 너무 잘 맞아서 쉽게 친해졌다. (정확하게는 나와 다르게 털털하고 자존감이 높은 그 친구의 매력에 내가 반했다) 스모키 화장이 멋있어 보이기까지 해서 그날 집에 돌아와 혼자 거울을 보고 스모키 화장을 해보기도 했다.
여행 자금도 모으고 친구도 사귈 겸 햄버거 가게 알바도 시작했다. 원래 패스트푸드점이 알바 강도가 가장 세서 알바를 많이 경험해본 사람이 지원한다. 그런 것도 모르고 덜컥 지원을 했고 덜컥 합격한다. 나의 임무는 아침 10시에 출근해서 양상추, 토마토, 양파 등을 손질하고 오픈 시간에 맞춰 햄버거를 만드는 일이었다. 양파를 썰 때마다 양파즙이 튀어나와서 눈에서 눈물이 났다. 햄버거 레시피는 뭐 이리 많은지 공식 암기하는 것처럼 달달 외워도 너무 어려웠다. 덤으로 배달 나가야 되는 음식 포장을 실수하면 최저시급인 월급에서 더 까이니 공포의 게임 같았다.
나 이주현, 현역과 재수 도합 3년 동안 법과 정치를 공부했다. 노동법 중에서도 근로기준법은 빠삭했다. 알바를 다니면서 수상한 점들을 발견했다. 첫째로,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는 것이다. 근로계약서를 안 쓰니 언제 월급이 들어오는지도 몰랐다. 둘째, 휴식시간이 보장되지 않았다. 4시간 일하면 30분 휴식. 나는 휴식 시간이 없어서 햄버거 알바를 하고 곧바로 학원 알바를 하러 가는 날들이 계속 반복되었다. 나름 대기업 브랜드인데 노동자를 위한 복지가 엉망이었다. 일단은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고용노동부 상담소에 전화를 했다. 신고하라는 대답밖에 돌아오지 않았다.
사장은 알바생들에게 햄버거를 먹게 해주는 것도 아니고 음료수 몇 잔 마시는 걸 허용하면서 관대한 사장 코스프레를 했다. 내가 싸는 햄버거 맛도 몰랐다. 하루는 단체주문이 들어와서 1시간만 더 일을 해달라고 했다. 단체주문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는 말을 안 해줬지만 친해지고 싶었던 알바생과 일을 할 수 있어서 흔쾌히 수락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1시간 만에 햄버거 60개를 싸야 했다. 나를 포함한 알바생 둘이서 그 많은 양을 다 해야 했다. 빵을 굽고 햄버거를 싸고 감자를 튀기고, 우리는 정신이 없었다. 순진한 나를 꾀어 똑같은 시급으로 막노동을 시킨 사장이 미워서 햄버거를 싸는 동안에도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나는 신입이라 익숙하지도 않아 다른 알바생이 고생을 했다. 그러다가 배달 주문이 들어왔는데 다른 알바생이 정신이 없어서 실수를 했다. 그때 사장은 어디 갔는지 사라졌다가 마침 돌아왔다. 어김없이 월급에서 까이는 것 같았다. 나는 다른 알바생에게 너무 미안했다. 사장에게 내 월급에서 떼라고 할 작정이었다.
이렇게는 못 견딜 것 같아서 친해진 알바생에 근로기준법 위반에 대해 알고 있냐고 물었다. 대답은 의외였다. 안다고 했다. 몰라서 계속 여기서 일하는 줄 알았다. 다른 사람들 다 법을 위반한 걸 아는데 참고 다니는 거였다. 내가 책상에 앉아서 그토록 열심히 배웠던 법과 정치는 단순 수능용이었다. 법과 정치는 현실에서 적용될 수 없다.
햄버거 알바를 하면서 회사 내의 인간관계 때문에 고민하는 직장인의 고충을 이해하게 되었다. 아침에 맞춰놓은 알람이 울리면 알바에 가기 싫어서 죽고 싶었다. 일은 사실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할 만했다. 나를 괴롭힌 건 다름 아닌 같이 일했던 매니저였다. 나보다 나이가 1살 많거나 동갑이거나 더 어리다는 건 확실했다.
매니저는 나에게 유독 엄격한 것 같았다. 나를 싫어하나 의심도 했다. 왜냐면 아무것도 몰라서 매뉴얼을 가르칠 때부터 나를 보는 표정이 좋지 않았고 불친절했다. 손님이 없어서 할 일을 다 하고도 할 게 없어 가만히 서있으면 자기는 놀고 있으면서 왜 가만히 서있냐고 나한테 무섭게 뭐라고 했다. 하루는 매니저가 햄버거 패티를 다 태워먹어서 사장에게 혼이 난 모양이었다. 사장이 매니저에게 쏜 화살은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정말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유독 그날 심하게 나를 갈궜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동시에 ‘고졸 주제에’라는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또다시 학벌이었다. 또다시 사람들을 그렇게 쉽게 판단하고 구분하며 프레임을 씌웠다. 매니저가 고졸인지 대졸 인지도 정확하게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것도 문제가 아니고 고졸이던 대졸이던 나에게 화를 냈다는 이유로 몰상식한 말을 뱉었다. 같은 유니폼을 입고 일하는 매장에서도 무의식적으로 나와 남들의 학력을 구분했다. 내 안의 학벌주의 해충은 생존력이 너무 강했다.
초딩 이주현, 출연진도 똑같은 음악방송을 금토일 연속으로 챙겨보았다. 쇼 음악중심, 뮤직뱅크, 인기가요. 그 시간에 책 읽었으면 국어 1등급 가능했을 텐데..
국어는 4등급이지만 책은 좋아했다. (정확히는 문학을) 다 학교 다닐 때의 선생님들의 영향이다. 중학교 3학년 때 국어 선생님과 친했다. 국어 선생님은 나에게 좋은 책들을 많이 추천해 주셨다. ‘소년이 온다’, ‘시인 동주’ 등등. 책알못이었던 나는 선생님이 추천해주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선생님은 외고 입시를 위한 자소서 첨삭도 봐주셨다. 후에 고등학교에 가고 우연히 길에서 마주쳤는데 내 꿈도 모르고 방황하는 내 모습이 떠오르셨는지 “주현아, 꿈은 찾았니?”라고 물어보셨다. 나는 얼버무렸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난 선생님도 문학을 좋아하게 만들어 주셨다. ‘중국인 거리’라는 소설을 수업시간에 설명해 주셨는데 그 후 차이나타운에 갈 때면 화려한 볼거리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암울한 소설의 내용만 떠올랐다. 나는 문학 선생님을 정말 좋아했다. 나이가 꽤 있으셨는데 진보적이고 낡지 않은 사고를 하시는 것 같았다. 또 요즈음에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소녀적인 낭만과 순수함도 겸비하신 멋진 분이다. 고3 중요한 모의고사를 앞두고 슬럼프에 빠진 나를 알아보고 ‘새의 선물’이라는 책을 추천해주셨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책 속의 인물이 사람을 위로할 수 있다는 사실을.
휴학도 하고 시간도 많겠다,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가장 먼저 읽은 책은 마이클 샌델 교수의 ‘공정하다는 착각’이다. 윤리와 사상에서 지겹게 본 이름인데 내가 먼저 찾아 읽었다. 이 책은 대학 입시의 공정성을 지적한 책이다. 한 마디로 모든 결과는 ‘운’이라는 소리다. 대학 입시에 실패해서 이런 책을 골라 읽었나 보다. 이 책을 읽으며 또 혼자 합리화를 했다. 이런 말을 나 같은 고졸이 했다면 욕하겠지만 권위 있는 학자인 마이클 샌델 교수가 주장했다는 것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책을 읽으면서 새삼 내가 공부만 할 줄 아는 샌님이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냥 사람’이라는 책은 그 어떤 책 보다 충격적이었다. 내가 몰랐던 세상이 존재했다. 우물 안의 개구리. 내가 보고 있는 세상은 내 시야에 들어오는 세상 한정이라는 걸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정시 점수만 보고 쉽게 선택했던 건축이라는 길도 실은 엄청 무서운 일이었다. 건축가가 되면 나는 앉아서 도면을 그리겠지? 건축은 위험하고도 무서운 일이다. 누군가의 소중한 집을 뺏어서 새로운 건물을 지어야 될 수 있고, 건물을 짓다가 사람이 죽을 수 있고, 건물을 제대로 짓지 않으면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또 한 번 나의 경솔함을 느끼고 반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