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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 Oct 23. 2021

대학에 갔는데도 행복하지 않은 이유

대학

 외집단: 소속감을 지니지 않으며 이질감 혹은 적대감을 느끼는 집단


 대학 생존기     


 정시에서 두 군데 대학에 합격했다. 하나는 컴퓨터 공학과였고 하나는 건축학과였다. 과는 고민도 안 하고 대학 서열이 높은 학교를 골랐다. 분교라는 점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재단이 좋아서 성적만 좋으면 미국에 있는 공대에서 복수학위도 딸 수 있었다. 대학 서열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대기업에 취업하는 사람들도 많아 보였다. 새로운 목표를 새웠다. ‘건축학과에서 과탑을 해서 컴퓨터 공학과로 전과해서 개발자로 카카오에 입사하자!’ 꿈도 컸다. 컴퓨터는 만지지도 못하는 컴맹 문과 주제에.. 하지만 대기업 취업만이 주위 친구들과 가족들 앞에서 떳떳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구질구질했던 과거는 청산하고 새로운 학교에서 열심히 하자고 다짐했다.     


 나의 대학 생활은 시작부터 절뚝거렸다. 내가 상상했던 대학이 아니었다. 드라마 ‘청춘시대’를 보며 꿈꿨던 대학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는 ‘청춘시대’ 속의 송지원이라는 캐릭터가 되고 싶었다. 똑똑하고 유쾌했으며 신문 방송과에 학보사 활동을 했다. 대학은 무려 연세대였다. 옷 입는 스타일도 보헤미안 히피 느낌이었다. 그런데 나는 일단 연세대에 다니지 않는다. 일단 대학이 안산에 있는 게 문제였다. 안산을 비하하려는 게 아니다. 지방 대학교가 배경인 드라마는 본 적이 없다. 나에게 당연하게 대학은 서울이었다. 또 송지원의 보헤미안 히피 스타일의 옷은 전부 가볍게 10만 원 대는 넘어가는 옷이었다. 난 그저 힘들게 일해서 버는 월급이 쥐꼬리인 거지 대학생일 뿐이다.     


 그 외에도 대학생활을 좌절하게 한 것들이 많다. 일단은 대학에 배신감을 느꼈다. 대학에서 그렇게 간판으로 내세운 미국 공대 복수학위 제도는 낚시였다. 복수 학위에 가려면 개인이 억 단위의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분노가 끓어올랐다.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미술을 정말 못한다. 고등학교 때 1학기에는 미술을 배우고 2학기에는 음악을 배웠는데 1학기에는 수업을 울면서 갔다. 고등학교 때 유현준 건축가의 책을 읽고 인문학적으로 건축이 재밌어 보여서 건축 선택했다. 수학도 자신 있었다. 미술이 문제였다. 내가 공대에 다니는지 미대에 다니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매일 화구통을 들고 다녔다. 멋있어 보여서 딱 이것만 좋았다. 4학점인 건축설계 수업을 들어야 했는데 매시간 그림을 그려가야 했고 발표는 디폴트였다. 내가 못하는 두 개였다. 그림도 못 그리고 고등학교 때는 말 못 하는 아이로 낙인찍힌 사람이다. 그래도 컴공과로 전과해서 카카오에 가야 하니 열심히 해야 했다.    

   

 혼자 고군분투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건축설계 수업에서 교수님이 특별히 가르치는 것은 없었다. 그냥 주제를 내주시면 도면, 모형을 만들고 발표를 하는 수업이었다. 중고등학교 기술 가정 시간에 별로 안 중요한 과목이라고 버린 걸 뼈저리게 후회했다. 역시 인간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하루는 교수님이 건물의 도면을 그려오라고 하셨다. 원래 있는 도면을 프로그램으로 확대 혹은 축소시켜서 출력한 다음, 트레이싱지를 도면 위에 따라 그리면 된다고 하셨다. 하나부터 끝까지 무슨 말인지 몰랐다. 나는 미니멀리즘적인 건축물을 골랐다. 도면을 뽑아서 선 하나하나의 직선을 자로 재고 비례식을 세워서 일일이 계산해서 도면을 그렸다. 도면 발표 날이 되었다.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다른 사람들은 복잡한 건축물도 잘만 그려왔기 때문이다. 내 발표 차례가 되었다. 나는 일일이 다 계산해서 도면을 그려왔다고 고백했다. 교수님의 표정은 좋지 않았고 나에게 왜 그렇게 했냐고 하셨다. 그날 지하철에서 조용히 울었다.      


 건축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찬 생활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발표를 해야 했다. 발표에는 도면, 형을 만들어 가야 했다. 말을 정말 못 하는 나는 밤새 발표 연습을 했다. 도면과 형을 만드는 건 정말 최악이었다. 일주일 내내 과제로 스트레스를 받다가 학교에 가야 하는 전날 새벽까지 벼락치기로 만들었다. 매주 과제를 엄마 아빠한테 자퇴하겠다고 울면서 시작했다. 내 등록금은 어디 갔는지 비싼 과제 준비물은 용돈으로 사야 했다. 폼보드는 자르기 정말 어려웠다. 폼보드를 몇 시간 째 자르면 내 손가락을 자르고 싶은 위험한 충동이 들었다. ‘손가락을 베었다고 핑계를 대고 수업 몇 번쯤 빠질 수 있지 않을까?’     

 

 정말 짜증 나는 나날을 보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아무 능력 없는 사람이었던 고등학교 시절과 다르게 인정받고 싶었다. 이제는 정말 쓸모 있고 현명한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싶었다. 실제로 나는 매일 피 같은 노력으로 과제를 해갔고 말 못 한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발표 연습도 했다. 힘들었던 고등학교에서도 무언가를 배웠음을 느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의 발표를 보면서 배운 게 없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때 발표를 잘했던 친구들의 예시를 나에게 적용하면서 나의 발표 능력을 키웠다. 그 결과 조금씩 나의 노력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 싫었던 건축도 하다 보니 나쁘지는 않다고 느꼈다.      


 대학에 갔는데도 행복하지 않은 이유


 이상함을 감지했다. ‘대학을 위해 21년을 살았고 결국 재수까지 해서 대학에 왔는데 왜 행복하지 않은 거지?’

    

 1.

 대학에 가면 듣고 싶은 교양과목이 많았다. 인문학이면 어떤 분야이던 관심이 많았던 나는 대학에 가면 다양한 교양과목을 들으면서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 싶었다. 그런데 인문학 교양과목은커녕 글 쓰는 수업이 거의 없었다. 교양 과목을 내가 정할 수 없었는데 들어야 했던 과목은 미적분, 물리같이 듣기만 해도 토 나오는 과목들이었다. 미적분은 문과식 암기 수학으로 커버할 수 있었다. 수능도 수학을 거의 외워서 봤으니까. 그런데 물리는 도저히 속이 안 좋아서 강의를 들을 수 없었다. 고등학교 때는 매일 글을 써야 해서 질렸었는데 대학에 오니 글쓰기의 소중함을 느꼈다. 글 쓰는 수업은 단 하나 있었다. 내 유일한 낙이었다. 한 번은 건축 답사를 하고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었는데 처음 글을 쓰면서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꼈다. 아이러니하게도 싫어하는 것을 하면 좋아하는 것이 보인다.   

   

 2.

 어느 날 친구가 좋아하는 색이 뭐냐고 물어봤다. “검은색”이라고 답했다. 그날 집에 가서 옷을 정리하려고 옷장을 열었는데 하늘색 옷으로 가득 차있었다. 내가 나를 잘 모른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그렇게 성격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계속 남을 위해 살아왔었다. 남들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뭔지는 잘 알았지만 정작 ‘나’에 대해서 몰랐다. 그래서 건축으로의 교차지원을 선택했던 것이다. 내가 미술에 소질이 없는 걸 몰라서 즉, 나를 몰라서 하기 싫은 일을 하게 됐다. 고등학교까지는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 돼도 괜찮았다. 어차피 대학에 가면 괜찮으니까. 그런데 대학에 가고 성인이 되어서까지 싫어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게 고통스러웠다. 나에 대해 아는 건 별로 없지만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 걸 좋아한다'.   

  

 중간평가 이후.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날로 늘어갔다. 완벽주의에 사로잡혀 이제는 시작조차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엉망으로 과제를 만들어 갔다. 교수님은 평가할 수 없다고 화를 내셨다. 눈물이 핑 돌았다. ‘또 과거의 되풀이인가’    


 교수님의 평가에 맞춰서 내가 만든 모형과 건축물을 수정해야 했다. 골똘히 생각해서 뭐라도 끄적여서 수정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압박감이 머리를 짓눌러 머릿속의 아이디어를 시각적으로 도출해 낼 수 없었다. 수업이 얼마 안 남은 시점, 어떻게든 모형을 고쳐야 했다. 또 울면서 이번에는 진짜 수업 결석할 거라고 엄마 아빠에게 말했다. 엄마 아빠는 그렇게 말해도 결국 과제도 다 해가고 수업도 빠지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또 그러네. 너 어차피 해갈 거잖아. 시간 낭비하지 말고 빨리 해.”라고 말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나는 정말 모형을 만들지도, 수업을 듣지도 않았다. 종강까지 3번 남은 시점에 나는 건축을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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