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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 Jan 26. 2023

엄습하는 공포

그리고 늦은 후회

 출국 일주일 전쯤부터 깊은 후회를 하고 있었다. 알바로 모은 300만 원, 그냥 내가 즐기는 데 쓰면 안 되는 건가. 왜 돈을 쓰면서 말 그대로 사서 고생을 할까. 휴학하고 계속 알바만 했는데 또 가서 알바만 하려니 지겹다. 혼자 힘으로 잘 살 수 있을까 등등. 이미 출국 일에 가까워졌는데 이제 와서 취소할 수도 없고 두려움이 갑자기 극에 달했다.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코로나 때문에 공항은 거의 텅 비어있었다. 그 때문인지 마음이 더 허전했다. 엄마와 공항에 출국 4시간 전쯤 도착했는데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속이 울렁거렸다. 그냥 내가 뱉은 말이 현실이 된 것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떨리는 마음을 엄마 앞에서는 최대한 숨기려고 했다.     


 정말 출국장에 들어가야 하는 시간이 왔다.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출국장에 들어갔다. 이젠 정말 혼자였다. 배낭 하나 캐리어 하나, 그리고 나. 그때부터 정말 혼자라는 게 실감이 났다. 너무 두렵고 무서워서 안 간다고 난리를 쳐볼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비행기가 이륙했다. 비행기에서는 잠도 못 잤다. 너무 막연한 계획만 가지고 무모하게 덤빈 건 아닌지 후회가 컸다. 연 초에는 한국에서 사기도 당했는데 해외에서 그런 일이 또 일어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코로나로 좌석도 많이 남은 터라 혼자 한 열을 쓰게 되었는데 외로움과 불안함에 떨며 비행기를 탔다.


 10시간 정도를 날아 시드니 공항에 도착했다. 이 비행기를 내리는 순간 한국말이 통하지 않겠지 생각했다. 호주는 공기부터가 달랐다.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줄 서있는 걸 보니 정말 내가 타지에 온 걸 실감했다.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멜버른으로 다시 떠나야 했다. 그런데 생각 없이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은 나는 국내선 비행기가 다른 터미널인지도 몰랐다. 허겁지겁 영어로 물어가며 국내선 터미널로 도착했다. 지금 생각하면 극한의 무계획성에 머리가 아찔하다. 국내선 터미널로 이동하여 멜버른행 비행기를 기다렸다.      


 멜버른까지 도착했다. 한국에서부터 장장 13시간이 넘는 긴 여정이었다. 새삼 호주가 한국과 참 멀리 떨어져 있고 집에 가고 싶을 때 당장 갈 수 있는 곳이 아니구나 생각했다. 한편으론 영어로 물어물어 멜버른까지 잘 도착한 나에게 뿌듯한 마음도 있었다. 공항버스를 타고 시내에 도착했다. 멜버른 센트럴 지하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나와 밖으로 나갔을 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었다.    

  

State Library Victoria
RMIT


 초록이 어우러진 도시가 멜버른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다. 한국과는 다른 분위기와 색채였다. 모든 게 낯설고 두렵지만 인생에서 하는 첫 도전인 만큼 잘 살아보겠다고 다짐하며 거리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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