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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 Feb 24. 2023

멜버른의 첫인상

Please be kind

 집도 구했겠다 나는 바로 한 뭉텅이로 뽑아온 이력서를 돌릴 준비를 했다. 워홀 가기 전 멜버른에서 시작된 브랜드 ‘이솝’에서 일해보고 싶은 마음을 어렴풋이 했다. 밑져야 본전이니 구글맵을 켜서 가장 가까운 이솝 매장을 검색했다. 그렇게 바로 백화점 안에 있는 이솝 매장에 갔다. 손님들이 꽤 있어서 주춤거리며 파트타임으로 보이는 여자에게 매니저를 보고 싶다고 했다.      


 잠깐 기다리자 여자 매니저가 나왔다.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고는 나에게 무슨 일로 찾아왔냐고 물었다. 나는 이솝에 지원하고 싶다고 하면서 이력서를 주섬주섬 꺼냈다. 매니저는 내 이력서를 보면서 왜 이솝에서 일하고 싶냐고 물었다. 이솝 브랜드의 철학과 제품이 좋았다고 얼버무렸다. 이력서만 줄 생각으로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아서 후회스러웠다. 곧 매니저는 내 피부 타입을 물었다. 잠깐 카운터로 가더니 화장품 샘플 한 뭉텅이와 메모를 가져왔다. 매니저는 나를 보면서 멜버른에 잘 왔다고 했다. 이제 막 락다운이 풀려서 일자리도 많고 전보다 활기가 생겼다고 했다. 혼자 타지에 사는 게 힘들 거라면서 메모에 근처 맛집 주소를 적어주면서 힘들 때마다 가라고 했다. 또 이솝의 한국어 제품 설명서를 주며 제품이 워낙 많고 제품 특성도 다양하니 틈틈이 외우라고 했다.      



 동방예의지국 출신인 나는 고마움에 어쩔 줄 모르고 ‘Thank you’를 연발하며 고개를 숙였다. 매니저는 나에게 이력서를 보니 경력도 괜찮으니 자신감을 가지라며 ‘Be Brave’라고 했다. 내가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 매니저는 완곡하게 거절한 것이었다. 실은 이솝같은 브랜드는 보통 공식홈페이지를 통해 인력을 구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못 느낀 정을 느낀 것 같다. 타지에서 혼자 시작하려는 사람을 보면서 어릴 때의 생각이 난 걸까. 혹은 패기가 기특해서? 그리고 내가 타지에 있다는 것에 너무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에서는 알바도 꽤 하고 공부도 꽤 했는데 해외에 왔다고 쫄아있었다.     


 그래도 한 번 더 도전하고 싶어서 다른 지점으로 향했다. 호주 출신 가수 트로이 시반을 닮은 남자가 있었다. (서양 사람들이 동양 사람들을 구분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력서를 주었더니 이솝은 공식홈페이지에서 지원을 받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종이에 웹사이트 주소까지 적어줬다. 멜버른에 온 걸 환영한다는 말은 덤이었다. 멜버른 사람들은 정말 따뜻했다. 호주가 인종차별이 심할 거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두려웠는데 멜버른은 인종이 다양해서인지 느껴보지 못했다. 그리고 확실히 광활한 땅덩어리에서 사람 성격이 나쁜 것도 이상할 것 같다. 공항에서 오는 길에 광활한 땅을 보고 느꼈다. 사람들이 여유가 있으니 남들까지 신경 쓸 수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 아침 출근길에 에스컬레이터에서 말다툼을 하는 두 여자를 봤다. 한 줄로 서야 하는 크기의 에스컬레이터에 한 여자가 서있었다. 크기에 맞게 한 줄 서기를 하고 있는데 뒤에서 어떤 다른 여자가 그 여자를 밀치면서 '바빠죽겠는데 왜 안 비켜요!'라고 했다. 두 사람 다 각자 사정은 있다. 한 줄 서기를 해야 하니까 한 줄로 선 것이고, 아침 출근길이 바쁘니까 굳이 굳이 에스컬레이터를 해 집고 올라간 것이고. 우리나라가 점점 정도 없어지고 각박해지는 게 다 여유가 없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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