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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들deux맘 May 30. 2024

바다가 아닌 호수에서 수영을 하는 이곳

대자연 앞에 온몸을 내던지다.

밴쿠버의 겨울

북미로 불어오는 대표적인 '온화'한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밴쿠버의 겨울은 영하권으로 많이 떨어지지 않는다.

다시 말해 흔히 한국에서 말하는 강추위는 찾아볼 수 없다.

한국의 롱패딩, 온수장판, 핫팩 등은 이곳에서  필수가 아니다.

요즘 이상기후로 밴쿠버에 폭설이 내리긴 하지만 한국에서의 한겨울 진풍경은 볼 수가 없다.


겨울 내내 그저 그런 '서늘함'만 유지되는 이곳.

추위를 싫어하는 누군가에게는 희소식이려나?

 

그러나 이 서늘함은 여름에도 유지된다.

밴쿠버 여름 평균온도는 23도.

한 여름에도 30도를 넘어가는 일은 드물다.


이 또한 여름더위를 싫어하는 누군가에게는 희소식이리라.


그러나 일 년 내내 서늘함이 유지되는 밴쿠버의 날씨는 우리 가족에게는 절망 그 자체였다.


엄마 양수에서 놀던 가락이 있어서 그런지

큰 아이는 태어나 몇 달 되지 않아 목튜브를 한채

짧디 짧은 다리로 욕조수영을 기가 막히게 해냈다.


큰 아이가 앉을 수 있게 될 무렵

동네 대형마트에 아기들이 수영할 수 있는 곳이 있다길래  무작정 찾아갔다.

역시 늘 놀던 그 자세로 유영하는 큰 아이를 보았다.


우리 가족은 늘 물을 좋아했다.

내가 어렸을 때도 우린 늘 계곡이나 바다로 휴가를 떠났다.

남편의 어린 시절에도 늘 가족과 친척과 계곡에서 놀던 사진이 많이 있다.


한국에서도 두 아들이 아장아장 걸어 다닐 무렵부터

우린 물놀이에 심취했다.

심지어 5월에 계곡으로 물놀이를 떠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물속에서 튜브 없이 둥둥 떠 있는 아빠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무척이나 신기해했다.

그리고 계곡이나 바다에서 물고기라도 만나는 날에는 남편은 쾌재를 부르며 "아빠가 다 잡아줄게!"를 외쳤다.

남편은 두 아들들에게뿐만 아니라

그 계곡에 놀러 온 모든 아이들에게까지도

갓 잡은 물고기를 나눠주며 계곡 '인싸'가 되곤 했다.


밴쿠버 입국 당일

헬로밴에 올라온 1층 하우스 렌트광고

집 앞 3분 거리에 코퀴틀람 강이 흐른다고 쓰여있다.

1층이라는 이유하나만으로도 꼭 그 집이 필요했지만

집 근처에 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모든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집을 구하게 되었고

정말 집 근처 걸어서 3분도 안 되는 거리에 코퀴틀람 강이 자리 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명칭은 Coquitlam River였지만

우리가 한국에서 늘 가던 계곡의 모습이었다.

집 앞 코퀴틀람 강


여름이 되었고

코퀴틀람 강 근처에 사람들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집 앞 도로까지 물놀이 온 사람들의 주차 행렬이 진풍경을 이뤘고 우리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합류했다.


그렇게 시작된  밴쿠버의 물놀이

결론적으로는 우리 가족에게 적잖은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도대체가 물아일체('水'我一體)가 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밴쿠버의 물은 그야말로 얼음장이다.

너무나 차가워서 발조차 담그기 꺼려진다.

40도 정도 넘는 폭염정도 돼야 물에 그나마 들어갈 만하다.

하지만 그 역시도 밴쿠버에서는 드물다.


폭염을 그리워하게 될 줄이야.

한 여름에는 그저 시원한 계곡에

몸도 수박도 푹 담그고

아이들과 물고기 잡으며 노는 게 정석인데

밴쿠버물 앞에서는

5세, 7세 남자아이들의 강단도 한없이 약해졌다.

그렇게 우리는 한 여름에도 덜덜 떨며 얼음장 물에 몸을 담갔다.


각 도시에서 운영하는 렉센터(recreation center)에도 수영장이 있고 (유료)

동네 놀이터 옆에 위치해 있는 wading pool도 있다.(무료)  

wading pool은 물 높이가 무릎정도도 되지 않아서  어린아이들부터 초등학생들까지 즐길 있다.

우리동네 wading pool

집 앞 river도, wading pool도 성에 차지 않았다.

급기야 우리는 시간을 내어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의 바다로 출발했다.

Kitsilano beach
Whiterock beach

밴쿠버 한 중심에 있는 키칠라노바닷가에 도착한 우리

입구부터 이곳은 아이들이 놀 만한 곳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가 마리화나 냄새는 맡아보면 안다고 했는데

주차를 하고 바닷가로 걸어가는 순간 깨달았다.

그 냄새가 진동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닷가에 입수했지만 역시나였다.

여름에는 무조건 물놀이를 해야 하는데

두 아들의 입수욕구를 채워줄 곳이 밴쿠버에는 없는 걸까?


집 앞 차디찬 강에서 물놀이를 하고 해 먹은 떡볶이가 정말 맛있었는데  키칠라노 바닷가에서도 멋진 장소를 골라 삼겹살을 구웠다.

석양이 비치던 그곳을 우리는 view맛집이라고 부르며 그 후로도 몇 번 방문했다.



뜨거운 한 여름 어느 날

우리는 교회 집사님의 초대로 골든이어스 캠핑장에 가게 되었다.

그곳에 도착한 우리는

바로 이곳이야 말로 우리가 있어야 할 장소라는 느낌이 왔다.


강도 바다도 아닌

바로 호수


살다 살다 호수에서 물놀이를 하게 되다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라

유일한 선택이었다.


골든이어스 알루엣 레이크

우리 눈앞에 펼쳐진 장관은 말로 형언할 수가 없었다.

스마트폰 카메라로도 잡히지 않았다.


거침없이 펼쳐진 웅장한 산에 둘러싸인 고요하고 잔잔한 호수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 위대한 대자연 앞에서

그 어떤 불평이 내 입에서 나올 수가 있을까?

우리는 그저 살아있음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그 즉시 paddle board 2개를 구입했다.

바닷가에서 본 적은 있지만 가격이 부담스러워 미루고 있었는데

아마존에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


집에서 불과 10분 거리에 Buntzen lake가 위치해 있었다.

그날 이후

그곳은 우리 가족의 아지트가 되었다.

물은 여전히 차갑지만 우리에게는 paddle board가 있었다.

온몸을 담그는 입수는 불가능했지만

paddle board를 타고 호수 한가운데로 가서

대자연을 만끽할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엄마 좀  멀리 다녀올게' 얘기를 하고

패들보드에 올라탄다.

스윗한 남편은 패들보드 뒷부분을 잡고 있는 힘껏 밀어준다.

그렇게 혼자 패들보드를 타고 잔잔한 호수 위에서 노를 젓는다.

파도가 없기에  패들은 내가 이끄는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

그렇게 망망대해가 아닌 망망대호(湖) 한가운데 내가 누워있다.

뜨겁고 강한 햇빛이 내 온몸을 내려쬔다

잔잔한 호수의 물결처럼

안에 잔잔한 마음의 평안이 찾아온다. 

나를 지으신 내 하나님의 품이다.

지난날 뭐가 그리 힘들었나 생각을 하며

흐르는 눈물을 닦는다.

그렇게 10분 정도 누워있었을까?

저 멀리서 사랑하는 아들 둘이 힘껏 뛰며 소리 지른다.

"엄마 빨리 와!"


내게는 생각만 하면 왈칵 눈물부터 쏟아지던 눈물버튼이 있었다.

남편의 위로도 아들들의 애교로도 치유되지 않던

지난 몇 년 간 날 옥죄던 그 눈물버튼이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한국의 한 장수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

나는 그 프로그램을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그들이 왜 산으로 올라가는지 알 것만 같았다.


상처받고 힘들었던 세상을 잠시 떠나

자연으로 돌아가 치유한다.

대자연이 주는 안락함과 평안이 그러하리라.


그렇게 buntzen lake는 우리 가족의 아지트가 되었다.

시간이 허락될 때마다 자주 갔다.

비성수기 때는 예약 없이 가도 되지만 성수기 때는 주차 문제 때문에 예약이 필수다.

키칠라노는 젊은 연인들이나 친구들 단위라면 이곳은 가족 단위 특히 어린아이들이 모래놀이와 물놀이하기에 딱 좋다.

패들보드 위에서 잠든 둘째♡
Kinder,G2 둘이 타도 안전한 패들보드


그렇게 우리는 우리 가족에게 완벽한 곳을 찾았다.

한 끼 또는 두 끼를 정해 음식과 요리도구, 텐트와 돗자리, 캠핑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패들보드 2개를 트렁크에 싣는다. 둘째 아이는 엄마와 같이 누울 베개 2개와 이불을 꼭 챙긴다.

그 많은 짐을 첫 해는 남편과 우리 모두 힘들게 들어 옮겼지만

밴쿠버 필수 아이템 웨건(한국면적의 100배인 캐나다땅에서는 짐 옮기는 용도로 필수)

웨건에 우리의 모든 짐을 테트리스 하듯 담아 싣고 옮긴다.

적당한 햇빛과 놓칠 수 없는 뷰를 찾는다.

내 앞에 최적의 장소발견한다.

이내 텐트를 풀고 돗자리를 깐다.

그 앞에 캠핑 테이블과 의자를 적당한 곳에 놓고

아이들은 가볍게 몸을 풀 겸 모래놀이를 하거나

아빠를 도와 paddle board에 바람을 넣는다.

나는 둘째가 챙겨 온 베개, 이불과 한 몸이 되어

그대로 텐트에 드러눕는다.

내 앞에 펼쳐진 view를 한번 확인한 뒤

블루투스 스피커를 꺼내 찬양을 튼다.


2년째 이어지는 패턴과 일상이다.

행복은 저 멀리 있지 않다.

내 안에, 우리 안에, 그리고 이곳 lake에 있다.


한국에서도 우린 최선을 다해 놀러 다녔다.

남편의 교회사역이 주중에는 바쁘게 진행되었지만

감사하게도 '토요일은 가정사역에 집중해야 한다' 외치는 교회였다.

그래서 우리는 무조건 놀러 나갈 계획을 짰다.

이것저것 맛있는 음식들을 차에 가득 싣고

산으로 바다로 계곡으로 그렇게 우리는 늘 자연과 함께 했다.


 유명한 교육전문가가 말한다.

아이들에게 결국 남는 것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즐겁게 놀러 다녔던 곳

그리고 함께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라고.

잘 가르쳐 올바를 인격을 길러주는 '교육'이란

다름 아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보낸 즐거운 시간이다.

그리고 함께 먹었던 맛있는 음식과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다.


요즘은 paddle board와 함께 하는 lake 외에

다른 아지트가 생겼다.

바로 스쿼미시에 있는 sea to the sky 곤돌라

우연히 방문한 그 곳에서

연간회원권을 세일가격에 구입했다.

겨울에는 5불에 눈썰매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해발 2900피트 sea to the sky Gondola in 스쿼미시

변함없이 토요일 그리고 공휴일만되면 아이들이 물어본다.


"엄마, 우리 오늘은 어디가?"


나도 남편도

엄마아빠가 처음이라

늘 부족하고 실수투성이지만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하고

오늘하루도 살아 숨 쉴 수 있음에 감사하고

대자연 앞에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 수 있음에 감사하고

화려하진 않지만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음이

너무나 감사하다


광활하고 웅장한 대자연 앞에

이 모든 것과 우릴 만드신 하나님 앞에

오늘하루도

금씩

우리는 '함께' 성장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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