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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들deux맘 Jun 06. 2024

차 조심이 아니라 곰 조심!!

곰은 동물원에만 살지 않아요.

평범한 어느 월요일

나는 병원 출근을 하려고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내 옆으로 네 발 달린 날씬한 생명체가 우아하게 걸어오고 있는 게 아닌가. 


사슴이다.


스마트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기에는 너무나 가까운 거리였다.

가끔 도로 위에 사슴 표지판이 보인다.

그 표지판 모습 그대로 사슴은 총총걸음으로 내 옆을 지나갔다.

자네, 어딜 그리 바삐 가는가

물어볼 틈도 없이 사슴은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는 갑자기 멈추었다.

내가 십분 전에 건너온 그 길을

왼쪽 오른쪽 혹시나 차가 오지는 않는지 섬세히 잘 살피며 길을 건넜다.

그리고는 우리 쪽으로 유유히 걸어갔다.

난 급하게 남편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창문을 보라고 했지만

네 발 달린 날씬한 생명체는 뭐가 그리 바빴는지

이미 사라져 버린 후였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늘 강아지가 있었다.

1대 삐삐는 검은색의 작은 치와와였고

2대 삐삐는 하얀색푸들 아주 똑똑한 강아지였다.

 

보통 어린 시절의 동물에 관한 추억을 얘기하면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웠던 추억이 소환된다.


하지만 아빠를 따라

어린 나이에 캐나다 유학길에 오른

리 아들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동물에 관한 추억을 얘기할 때

주 독특한 동물에 대한 추억이 소환될 것이다.


사슴, 코요테, 라쿤

그리고.......


곰.


밴쿠버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심적 여유가 생기니

그때서야 주위를 돌아보고 산책도 하기 시작했다.


주일 오전 이른 아침

스마트폰으로 찬양을 틀고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낀 채 

코퀴틀람 강으로 산책을 나섰다.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아줌마 파워워킹을 시작했다.

정면을 바라보며

보폭과 팔은 최대한 넓게

조금은 숨이 찰 정도의 파워워킹은

달리기보다 운동효과가 훨씬 좋다고 한다.


한 시간을 계획했지만

아이들이 깨면 나는 바로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 조바심이 났다.


그렇게 10분 정도 걸었을까.

속도가 붙었고 나 스스로도 매우 흡족했다.

그 속도 그대로 열심히 걷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부스럭 소리가 난다.

무시하며 지나가려 했지만

나는 보았다.


순식간이었다.


큰 엄마곰 한 마리와 그 뒤에 따라 나오던 새끼곰 두 마리.


예전에 곰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네이버 카페 '헬로밴'의 글을 지나치지 않고 읽었다.

뒤로 돌아 무조건 도망가지 말고

뒷걸음질로 천천히 그 장소를 떠나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 곰이 알아서 떠난다고도 했다.


아이들 학교에서도 이미 곰이 나타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훈련을 받았다.

학교에서 코퀴틀람 강으로 자주 산책을 가기 때문에

선생님과 학교 아이들은 곰을 만났을 때의 대처방법에 익숙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론은 이론에 불과했다.


막상 내 앞에서 곰을 보니 온몸이 얼어버렸다.


헬로밴의 글에서

'새끼들하고 있는 곰' 만나시면 답이 없습니다. 줄행랑치세요.'

라는 글이 있었다.

새끼들과 같이 다니는 곰은 본능적인 모성애로 인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워워킹 가속도가 붙은 나와

앞 쪽에서 걸어오던 곰 한 마리도 아니고

내 '옆'에서 걸어오던 곰 '세' 마리


인간인 나뿐만 아니라 어미곰도 놀랐다.

내 눈으로 그리고 몸으로 느껴졌다.


나도 화들짝

너도 화들짝


나도 아들 둘

너도 아들(?) 둘


난 아들들 떼놓고 운동 나왔는데

넌 아들들 데리고 운동 나왔구나

네가 낫다.


평안한 주일 아침


평생을 동요로만 알던 '곰 세 마리'를 만났다.

그들의 Habitat(서식지)에 잠시 렌트하며 사는 한 '인간'으로

우린 그렇게 조우(遭遇)하며

서로의 존재에 관해 인정했고 받아들였다.


나는 뒷걸음질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동시에 스마트폰을 조심히 꺼내 남편에게 전화해 내 상황을 알렸다.

이미 곰은 시야에서 멀어졌지만

나는 뒷걸음질로 계속 후퇴하며 한참을 갔다.


내 앞 뒤로 사람소리가 들리면

There are bears! Three of them! 

소리 지르며 대피시켰다.

몇몇은 그 즉시 뒤돌아 뛰어갔고

어떤 사람들은 Thank you라 말하며 가던 길을 갔다.


그날 오후

교회에 가서 곰을 만난 이야기를 나눴다.

밴쿠버에 오래 사셨던 분들도 신기하다며 귀 기울여 들으셨다.

알고 보니 코퀴틀람 북쪽 지역은 산이어서 특히나 곰이 많았던 것이다.

밴쿠버 전 지역에서 야생동물을 만날 수 있지만 곰은 특히 코퀴틀람 지역에 많다고 했다.




콘도(한국의 아파트개념)에서는 큰 재활용쓰레기를 제외하고는 모든 쓰레기를 한꺼번에 같이 버린다.

집 카드키를 들고 가 알아서 garbage 버리는 장소에 갖다 놓으면 끝.


우리가 사는 집은 하우스형태의 집이다.

하우스 형태의 집에는 나라에서 제공하는 세 종류(일반, 재활용, 음식)의 대형 쓰레기통이 있다.

음식쓰레기는 일주일에 한 번

재활용쓰레기와 일반쓰레기는 2주일에 한 번

Garbage truck이 와서 수거해 간다.


어느 날 퇴근을 해서 집에 와보니 뒷마당이 난리가 났다.

아이들에게 자초지종을  물으니

곰이 우리 집 뒷마당에 들어가 음식쓰레기통을 뒤졌다고 한다.

2층에 살고 있는 주인집 사장님과 남편은

밥 먹고 치우지도 않고 떠난 예의 없는 곰 얘기를 나누며 뒷정리를 했다.


우리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얼마 전에 만난 곰 세 마리도 먹을 것이 없어서 산에서 내려온 것임에 틀림없다 생각하니

다소 짠한 마음마저 들었다.


먹이를 찾아 헤매는 코퀴틀람의 곰들이 불쌍했지만

몇 주간 쉬지 않고 계속되는 방문에

우리는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어느 날 셀핍수업강의 중 한 학생에게 우연히 곰 얘기를 하게 되었다.

상황을 듣자마자 그 학생이 말했다.

" 그 곰들은 이제 죽을 때까지 선생님집에 올 거예요. 그 곰이 죽더라도 새끼가 오겠죠. 곰의 대가 끊기지 않는 이상 계속 옵니다."


그저 밴쿠버의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얘기한 것뿐인데

한 순간 교실 안의 분위기는 '곰과의 동거'가 시작된 우리 집을 향한 위로의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 학생의 말처럼 곰은 매주 잊지 않고 찾아왔다.

다른 집도 갈 법한데 우리 집은 절대 잊지 않고 찾아온다.

쓰레기통을 뒷마당으로 옮겨도 마찬가지.

곰은 그 큰 뒷문을 가볍게 점프하고 들어가 맛있게 음식쓰레기 먹는다.

그렇게 포트코퀴틀람 공식 '곰 맛집'이 된 우리 하우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우리 집이 동네 시세보다 600불 정도 저렴한데 혹시 그 이유가 곰 때문에 아닐까?'부터

'곰이 음식 쓰레기통에 만족할 만한 음식이 없어서 집까지 들어오면 어쩌지?'라는 생각까지


걱정 반 두려움 반

우리는 고민 끝에 모든 쓰레기를 집 안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음식, 일반, 재활용 쓰레기 모두 다 집 안에 보관하기 시작했다.

'곰 맛집' 해프닝은 의외로 간단히 끝이 났다.

더 이상 곰은 우리 집에 오지 않았다.


고마웠다.

곰들에게.

우리 집에 더 이상 음식쓰레기 없다고

헛걸음할 친구들을 위해 소문을 내준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곰 맛집' 해프닝은 일단락이 되었다.

그 후로도 꾸준히

교회 가는 길

학교 가는 길

산책 가는 길

뒷마당에서 노는 도중

집 앞 코퀴강에서 물놀이하는 도중

종종 우리의 '곰'이웃을 만났다.


'사람' 이웃들도 곰을 볼 때 절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쌍라이트를 켜고 서행을 하며

전방에 ''이웃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기도 하고

집 앞에 크게 Bear was just here라고 써 놓기도 한다.


캐나다 정부도 방관하지 않는다.

쓰레기통에 잠금장치를 꼭 사용하여

집과 곰을 보호하자는 내용의 홍보 입간판.

코퀴, 포코 주민이라면 꼭 숙지해야 할 내용이다.


그렇게 우리는 아이들에게

'차조심'이 아니라 '곰조심'을 외치는 부모가 되었다.


곰이 나타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미 학교에서 훈련이 되었던 터라 아이들은 크게 겁먹지 않았다.

특히 큰 아이는 학교 Recess(쉬는 시간) 타임에 학교에 곰이 나타난 것을 최초로 목격하고 전교생과 선생님들을 대피시켰던 위대한 이력도 있다.


어느 날은 집 앞 코퀴틀람 강에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이 포착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강산에의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힘찬 연어들을 위하여라는

노래를 좋아했는데

그 진귀한 광경을 목격한 것이다.


그 후 몇 주 정도가 지났을까?

집 앞 강에는 모천(母川)에서 알을 낳고

'위대한 죽음'을 맞은 연어사체들이 즐비했다.

코를 찌르는 비린내, 악취와 함께.

이 연어사체들이 모두 우리 동네 곰들의 맛있는 식사가 된다는 남편의 말에 우리는 기뻤다.


부디

많이 많이 먹고

내년 봄엔 제발 만나지 말자


그렇게 우리의 유학생활 첫 해가 지났고

다음 해 봄이 되었다.


여느 날처럼 집에서 저녁준비를 하고 있는데 건너편에 우리의 이웃 '곰 한 마리'가 지나간다.

그리고 우리 집 바로 건너편 집의 음식쓰레기통을 발견하고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우리는 이제 밖에서든 집에서든

곰을 봐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곰은 그저 우리의 이웃일 뿐..

 

곰은 곰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우리의 저녁메뉴인 떡볶이를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거실에서 보이는 곰은 잠겨있는 음식물쓰레기통을 흔들어 열기시작한다.

세워보기도 하고 밟아보기도 한다.

보통 곰이 지나가는 것만 보았을 뿐

천천히 정찬을 즐기는 곰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건너편 곰은

우리와 함께 저녁식사를 시작해 장장 40분 동안 앉아서 만찬을 즐기고 유유히 떠났다.



사실 우리 동네에 사는 곰들은 블랙곰이다.

사람에게 큰 관심은 없다.

실제로도 내가 만난 곰들은 그래 보였다.

곰도  곰 갈길 어슬렁어슬렁 갔고

나도 내 갈길 바삐 갔다.


이를 아는 주민들은 곰이 나타났다는 말에 흔들림 없이 갈 길 가는 것이고 밴쿠버에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들만 화들짝 놀라 모든 신경을 쏟아내었던 것이다.

사람을 공격하는 회색곰(=그리즐리 베어)은 코퀴틀람에 없다. 그들은 로키산맥에 서식하며 정부의 '관리'를 받으며 살아간다고 한다.



헬로밴에서도 곰을 만난 많은 글들을 읽었지만 곰이 사람을 공격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헬로밴 회원들이 올린 곰 사진들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

음식

배가 고픈 것이다.

음식을 찾아 여기저기 헤맨다.

그리고 음식을 찾으면 열심히 먹는다.

그리고 배가 부르면 다시 제 갈길을 간다.


넷플릭스에서 working moms라는 캐나다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캐나다에 사는 한 워킹맘이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을 하다가 곰과 맞닥뜨린다.


아이를 지키겠다는 일념하나만으로 모성애가 불타오르는 주인공.

그렇게 그녀는 단전에서 올라오는 호흡과 함께 야생곰도 놀랄 정도의 괴성을 질러댄다.


모성애로 인한 간절함과 처절함이 뒤섞인 순간!

놀란 곰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돌아선다.


그 장면을 보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내 아이를 지키겠다는 마음도 간절했을 것이고

아이를 뱃속에 품고 세상 누구보다 행복했던

10개월이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작고 작은 어린아이를 두고 직장으로 돌아가야 하는 마음까지

제목 그대로 '워킹맘'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복합적인 감정이 뒤섞인 괴성이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꿈같은 직장에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살고 있지만

2년  그 당시의 나는

병원, 학원 동시에 투잡을 뛰며 아이들이 깨기도 전에 버스를 타고 출근하곤 했다.


아이들이 깰 때쯤 되면 큰 아이는 변함없이 눈물을 흘리며

내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아이들이 울면

나도 같이 울고 싶었다.


병원으로 가는 152번 버스 안에서

울고 있는 영상 통화 속의 아들을 바라보며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엄마가 너무나도 필요한 아이들을 두고 대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나도 모르게 올라오는 알 수 없는 감정에 복받쳐

애써 눈물을 참으며  출근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2년이 지난 지금

아이들은 그 누구보다 씩씩해져서

아침인사는 '즐거운 하루 보내, 사랑해'

딱 이 두 마디와 뽀뽀면 충분하다.


길거리에

곰, 사슴들이 즐비한

이곳 캐나다는

특별한 곳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곳이 더 특별해지는 건


하나님의 섭리 안에 만난

우리 네 가족이

이렇게 사랑하며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매 순간을 즐기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수십 년 후

사랑하는 내 아들들의 손자, 손녀가 태어나면

캐나다에서 만난 곰 이야기를 들려줘야겠다.


누구나 볼 수 있는

동물원의 풀 죽어 멍 때리는 곰들이 아닌

정확한 목적(모든 음식)을 가지고

정확한 루트(음식냄새가 나는 모든 곳)를 향해 나아가던

우리들의 이웃

'캐나다 곰'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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