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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들deux맘 May 15. 2024

밴쿠버 초등학교 이야기

Hello, Thank you, Sorry 이거면 충분해


레인쿠버라는 명성답게 2월의 밴쿠버는 주야장천 비가 내렸다.

우리 모두가 햇빛을 본 지 거의 2주가 될 무렵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큰 아이의 학교 가는 날짜가 정해졌으니 필요한 것들을 챙겨서 언제 어디로 오면 된다는 내용의 교육청 직원의 전화.


캐나다에서는 부모가 시민권자나 영주권자가 아닌 임시거주자 (학생비자, WORK PERMIT, LMIA)인 경우에도 무상교육을 받을 자격이 된다.

우리가 사는 곳은 포트 코퀴틀람.

이곳 거주 지역의 학생 들은 코퀴틀람 교육청인 SD43에서 모든 것을 관할한다.


코퀴틀람 교육청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1) STUDENT REGISTRATION FORM을 작성 후

2) 관련 서류

부모-비자, 재직증명서, 부모가 학업 중인 경우라면  입학증명서와 재학증명서, 학비증명서, 운전면허증, 집 계약서

자녀- 비자, 출생증명서, 여권

이 서류들과 함께 Form을 교육청에 제출하면 집 주소를 기준으로 학교에 배정이 된다(Catchment라고 부름)

미리 교육청 홈페이지에서 주소를 입력하여 배정될 학교 즉 catchment안에 있는 학교 리스트들을 미리 알 수도 있다.


교육청에 지원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학교를 가게 되다니 너무나 급작스러웠다.

준비물은 생각보다 간단해서 마음은 편했지만 그 무엇보다 놀랬던 사실은 도시락을 싸야 한다는 것.

어린이집부터 대학교까지 완벽한 급식 시스템으로 대한민국 어린이 및 청소년 그리고 학부모에게 행복과 건강을 선사하는  K 급식.

그 급식생활에 너무나 익숙해져 온 우리인데 도시락을 싸야 한다니, 걱정부터 앞섰다.

(Hot lunch라고 불리는 급식 시스템이 있기는 하다. 학교마다 메뉴는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피자, 핫도그, 샌드위치,  등이다.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세 번 꼴로 미리 주문을 하면 학교로 배달이 온다-학부모회 PAC에서 담당)


이미 첫 학기는 작년 9월에 시작을 했고 중간에 들어가는 것이라 딱히 공식적인 안내자료는 없었다.

그저 교육청에서 걸려 전화 한 통 그게 전부였다.


뭘 가져가야 하냐는 질문에 교과서나 공책 또는 연필 같은 당연히 챙겨야 할 것만 같은 준비물이 아니라

생존에 필요한 도시락, 간식, 물 그리고 indoor슈즈만 가방에  챙겨 오면 된다고 했다.

(어떤 학교는 학업에 필요한 모든 준비물을 각자 알아서 준비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학교는 모든 것을 준비해 주고 학부모는 돈만 지불하는 시스템이다.)


이렇게 입학식도 없이 멋진 책가방도 없이 그냥 그렇게 학교 준비를 시작했다.


한국에서 밴쿠버로의 유학을 결정한 후 '헬로밴'이라는 네이버 카페에 가입을 했다.

11만 회원을 자랑하며 밴쿠버 내의 거의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진짜 실용적인 카페.

도움을 구하는 글만 썼다 하면 바로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댓글들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 누구 하나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그리고 때로는 친정엄마, 친한 친구처럼  공감과 위로의  댓글이 달리는 이곳.

내게는 참 친정 같은 네이버 카페 '헬로밴'


나는 바로 헬로밴으로 들어가 폭풍 검색 및 질문을 했다.

역시 내게 필요한 모든 정보가 있었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객서비스를 자랑하는 아마존을 통해 큰 아이의 가방 및 보온도시락을 구매했다.

도시락을 싸는지 미리 알았다면 '가깝고도 먼'그 나라 제품으로 좋은 보온도시락을 한국에서 사 왔을 텐데 많이 아쉬웠다.

Recess 타임이라고 부르는 쉬는 시간에 먹을 간단한 간식을 코스트코에서 박스로 구입하고 한국의 실내화 개념인 Indoor shoes를 월마트에서 저렴히 구입했다.


부모의 역할인 모든 행정적 준비와 절차는 끝나고 이제 모든 것은 우리 장남의 몫.

돌 때 집주소를 외우고 주기도문을 외우던 우리 장남인데

이제 곧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학교를 다녀야 한다니 어찌나 짠하고 마음이 무거운지

잘할 수 있다며 걱정 말라며 오히려 엄마를 위로하는 K장남

아들아!

Hello, Thank you, Sorry 딱 이 세 마디면 충분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아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본다.


2월 15일 등교 첫날

밴쿠버에 도착한 지 2주 하고도 4일 만에 큰 아이는 학교를 가게 되었다.


큰 아이가 다니게 된 학교는  집에서 차로 3분 거리인 Ecole Coquitlam River Elementary (학교 이름 앞에 Ecole이 붙어 있으면 그 학교에 French immersion반이 있다는 뜻)

집 앞 Coquitlam river를 따라 쭉 올라가면 나오는 평온하고 아름다운 학교이다.


밴쿠버모든 초등학교는 1층건물로  되어있다.

그래서인지 전교생과 학교 선생님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또 한 가지  인상적인 것은 한국에서는 입학식, 졸업식 때 만 뵐 수 있는 교장선생님을 이곳에서는 매일매일 만난다.

아주 편한 복장에 선글라스를 끼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학생들을 반갑게 맞아주신다.

심지어 학교 행사가 있을 때는 주차야광봉을 들고 주차안내까지 열심히 하시는 교장선생님.

새롭고 낯설다.


아이들이 Mr. Mushen이라 부르는 이 학교의 교장선생님은 50대 후반 정도 돼 보이는 나이에 학교의 온갖 궂은일을 다 하시는 듯한 모습으로 매일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만난다. 얼마 전에는 5학년 학생들을 데리고 사다리를 가져가 지붕에 올라간 농구공, 축구공을 내리고 계셨다.


밴쿠버 초등학교의 하루는 보통 8시 50분에 울리는 종소리와 함께 시작된다.(학교마다 조금씩 다르다)

보통 8.50분 등교해서 2.45분에 하교하는데 등, 하교 시 모두 종이 친다.

학교를 일찍 가더라도 종 치기 전까지는 교실 안에 들어갈 수없다. 밖에서 줄 서서 기다리던지 놀이터에서 놀면서 기다리던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종소리를 들어야 한다.


킨더아이들이나 저학년들은 부모님들이 교실 앞까지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는데, 고학년들은 혼자 오거나 부모님들이 학교 앞에서 내려주기만 하면 각자 교실로 걸어간다. 


우리는 원래 등교시간인 8.50분 보다 15분 정도 일찍 도착하여 담임선생님과 교장선생님과 함께 교실로 들어갔다. Indoor shoes로 갈아 신고 교실과 앉을자리를 소개받고 어떻게 하루 일과를 보낼 것인지 간략히 안내를 받았다.


큰 아이의 생애 첫 학교 담임선생님은 일 년 내내 반팔을 입고 다니시며 푸근한 인상과 늘 엄마미소를 선사하시는 열정의 선생님이셨다.


그렇게 큰 아이의 학교생활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순식간에 시작이 되었고 아직 공립교육을 받을 수 있는 나이가 되지 않은 둘째는 집에서 홈스쿨링을 시작했다.


밴쿠버의 공립교육은 Kindergarten이라 불리는 유치원부터 시작을 한다. 

도시마다  조금씩 다른데 코퀴틀람 교육청에 속한 학교들은  킨더를 지칭하는 K부터 시작해 Grade 5까지가 초등학교 학년이다.


둘째가  Kindergarten에 입학하는 시기는 9월.

학교 측에서 5월부터 학교에 적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StrongStart라는 프로그램을 통하여 아이들과 학부모가 다른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나 학교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공식적'으로 만들어 준다.

심지어 어떤 준비물을 사는 게 좋은지 샘플까지 소개한다.

친절하고 고맙다.

둘째 이 StrongStart를 통해 지금의 절친 Miles라는 친구를 만났다.

그 당시에 만난 Miles의 아빠

둘째의 영어가 전혀 준비되지 않아 걱정이라는 나의 말에 다른 로컬 아이들도 아직은 말을 잘하지 못한다 그리고 모국어를 잊지 않으며 살아가면 좋겠다는 큰 위로를 해주었다.

실제 로컬아이들에게 말을 걸어보니 몇 마디 하지 못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2년이 지난 지금 둘째가 속해 있는 반에 한국아이왔다.

아직은 영어가 힘든 한국 학생의 '공식통역사'가 바로 우리 둘째라며 담임선생님이 칭찬해 주신다.

학교모임으로 모두 만나게 된 어느 날 우리는 그 당시를 회상하며 함께 웃었다.


이렇게 캐나다의 공립교육은 나라, 학교, 선생님, 부모가 정성껏 준비하고 아이를 준비시켜서 학기를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애매한 시기에 들어온 큰 아이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서 4년의 비자를 받았으니  아이는 5학년을 다 마치지 못하고 즉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밴쿠버를 떠날 것이다.


큰 아이의 소중한 인생에서 초등학교 입학식, 졸업식을 단번에 생략시켜 버린 죄책감도 잠시

당장 영어로만 생활해야 하는 큰 아이의 학교생활이 너무나 걱정되고 궁금했다.


일반적으로 학교에서 학부모에게 알리고자 하는 모든 안내사항 및 중요사항은 학생들이 매일 직접 쓰는 Planner와 선생님들이 직접 보내시는 이메일로 알 수 있으며, 개인적인 내용을 묻고 싶을 때도 플래너와 이메일을 자유롭게 사용한. 이메일 답장은 상당히 빠른 편이다. 선생님들은 스마트폰으로 격식 없이 편하게 학부모가 원하는 내용의 답장을 보내주신다.



학교에서 뭘 배우는지 어떤 공부를 하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다.

어떤 과목을 배울지 어떤 교재를 사용할지는 전적으로 선생님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시중에 'Complete Canadian Curriculum'이란 책이 있지만 어떤 레벨정도인지만 가늠할 수 있는 정도이지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


매일매일 학교는 잘 가는데 도대체 학교에서 뭘 배우지? 하는 궁금증이 생길 무렵, 학교에서 이메일이 왔다.

Student-led Conference 예정되어 있으니 그날은 early dismissal 즉 일찍 학교 한다는 내용의 이메일이었다.

Conference라고 하니 무언가 거창해 보이지만 Student-led 즉 선생님이 아니라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학교에서 그동안 배웠던 내용을 부모님들에게 소개하는 날이다. 



큰 아이는 천천히 그리고 담대하게 그동안 배웠던 모든 내용을 우리에게 설명해 주었다.

Duotang이라 불리는 파일 7개 안에 그동안 배운 모든 것이 있었다. 매일 집에 가지고 오는 낱장의 무언가도 있는데 이것까지 포함하면 상당하다.

그냥 왔다 갔다만 한 것이 아니었구나.

뭐가 되었던 학교에서 이렇게나 많은 양의 것들을 배운 다는 것이 기특했다. 그리고 동시에 마음이 저려왔다.


모국어로 배운다면  더 신나게 열심히 배웠을 텐데,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무언가를 배우고 이해하고 습득하는 일은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다.


정말 기특하다 우리 아들

평생 할 효도를 이곳 밴쿠버에서 다 하는구나.

보통 갱년기가 사춘기를 이긴다는데

십 수년 후 엄마에게 갱년기가 찾아와도 지금 이 시기를 생각하며 조용히 보내버리련다.


이렇게 각 선생님들의 관심과 교육관에 따라 수업과목과 내용이 정해지지만 단 한 가지 이 학교 모든 선생님들이 공통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있다.

바로 Salmon

연어다!

특히 이 학교는 연어에 진심인 학교였다.

1학년 때부터 연어의 삶과 특징에 대하여 속속들이 알 수 있게 열심히 배운다. 그림으로, 단어로, 리딩지문으로 , 영상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깊숙이 배운다. 심지어 큰 아이반 선생님은 연어를 교실 앞에 키우고 때가 되면 방생한다.



우연히 만난 학부모에게 1학년 아이가 배우기에는 너무 어려운 것 같다고 얘기하니 웃으며 한 마디 한다.

The same stuff for 5 years!!

5학년때까지 매년 같은 시기에 같은 내용을 배운다.

연어에 관하여 왜 이렇게 진지하고 자세히 반복해서 그리고 오랫동안 배우는지 2년 전 그때나 지금이나 늘 궁금하다.


중고등학교 시절  우리 집 건물 지하 1층에는 노래방이 있었다.

마돈나 노래방 사장님은 내가 주인집 딸이라는 이유로 언제든 노래를 부르고 싶으면 오라고 하셨다. 그래서 부모님과 함께 자주 놀러 가곤 했다.

그 당시 내 18번은 바로

강산에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신비한 이유처럼

그 언제서부터인가 걸어 걸어 걸어오는 이길

앞으로 얼마나  많이 가야만 하는지

여러 갈랫길중 만약에 이 길이 내가 걸어가고 있는

망막한 어둠으로 별빛조차 없는 길일지라도

포기할 순 없는 거야 걸어 걸어 걸어가다 보면

뜨겁게 날 위해 부서진 햇살을 보겠지


그해 10월 중순경이었을까


실제 집 앞 Coquitlam river에서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흐르는 강물을 아주 힘들게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수백 마리의 연어'들을 실제 육안으로 본 적이 있다.



학교에서 배우는 연어의 내용들이 실제로 눈앞에서 펼쳐지니 아이들은 신기해했고

목회자인 남편은 설교의 영감이 떠오른다고 했다.

나 역시 강산에의 노래를 열창하던 나름 힘겨웠던 내 고등학교 시기를 떠올리며 감탄에 감탄을 자아냈다.


산란을 위하여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며 모천(母川)으로 회귀하는 연어.

연어의 삶이 어디 흔한 삶이던 가.

집 앞 강에서 만난 내 육안으로 직접 본 연어들은 신기했지만 동시에 처절했다. 

최종 목적지인 산란을 위한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투쟁한다.

심지어 그 자리까지 가지도 못한 채 포식자들에게 잡혀 먹히기도 한다.

하나님이 만드신 방법대로 그들은 전진한다.

엄청난 물살을 가르며 온 힘을 다해 앞만 보며 달려간다.

험난한 여정에

등이 굽고, 턱이 부서지고, 피부가  뜯겨 나가도

그들은 주저 없이 나아간다.

단 하나의 목표

란을 위하여

참으로 위대하다.


혹시 이러한 연어의 삶을 통해

학생들 각자가 걸어 나갈 삶의 여정 가운데

어떠한 역경과 시련이 닥쳐와도 결코 희망을 저버리면 안 된다는 '삶의 통찰력'가르치기 위하여?

이렇게나 깊이 있게 연어에 관하여 배우는 것일까?


이때만 해도 전혀 몰랐다.

닥쳐올 모든 난관을 헤쳐 나가 '4년 후'라는 목적지를 향해 질주하며 나아가야 하는 한 마리의 연어가 바로 내 큰아이가   것이라는 것을


2월 15일부터 6월 말까지

짧은 1학년의 생활을 마치고 2학년이 되었다.

주로 고학년만 맡다가 오랜만에 저학년을 맡으신다는 선생님께서 큰 아이의 담임선생님이 되셨다.


밴쿠버의 초등학교는 학기 초, 학기 말에 각각 상담을 한다.

학기 초에는 아이에 대하여 선생님이 잘 알지 못하기에 보통은 짧게 소개하는 정도로 진행이 된다.


그러나 학기 초 , 큰 아이의 이름 외에는 별다른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선생님은 본인 소개에 관해 15분, 교육철학에 관해 15분, 이런저런 내용으로 20분 총 50분의 상담을 이어갔다.


이렇게 열정적인 선생님은 처음이다.

마지막 타임 5시에 갔기에 빨리 상담을 마치고 집에 가실 법도 한데, 모든 것이 진지했다.

그렇게 상담이 끝난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교실을 소개해주신다. 이것저것 진정성이 묻어난 교실의 배치를 보니 우리 큰 아이가 정말 선생님을 잘 만났구나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그저 열정이 넘쳐나는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하면 행복하겠구나 생각했다.


선생님은 글자 하나도 허투루 쓰는 것을 용납지 않으셨다.

그림 하나를 그리더라도 완벽을 요구하시는 선생님

제대로 쓰고, 제대로 그릴 때까지 지우고 지우고 또 지워야 한다.


매일매일이 숙제와 시험의 연속이다.

주중에도 숙제, 주말에도 숙제 심지어 방학 때도 숙제

숙제 리스트는 기본 3개부터 시작한다.

어느 날은 챕터 14개로 이루어진 글밥도 많은 소설을 이틀 만에 다 읽어오라고 하신다.

결석이라도 하는 날에는 숙제가 누적된다.

예외가 없다.


한 번은 5대양 7 대주를 학교에서 배웠는데

매일의 과제는 세계지도를 보고 Point & Say 하기였다.

그리고 마지막은 5대양 7 대주 Point, Say and Spelling Test.

외우기 어렵고 귀찮다는 아이를 간신히 설득시켜 시험 준비를 시켰는데 아이는 그날 시험 본 결과를 말해준다.

엄마 나 2등이야.

로컬아이들을 제치고 네가 2등을 했다고?

의문이 들어 어떻게 등수를 알았냐고 하니까 선생님께서 칠판에 적으셨단다.  

1등부터 꼴등까지.

적나라하게

 

밴쿠버에 오기 전에 캐나다 초등학교는 공부를 시키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한편으론 걱정이 앞섰다.

광활한 자연에서 뛰어노는 것도 좋지만 배움에는 시기에 있기에 적당히 공부하는 것도 놓치기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분명히 달랐다.


특히나 4년 후 한국에서 치러야 할 초등검정고시를 위해 일 EBS만점왕을 공부해야 하는 큰 아이는 넘쳐나는 학교숙제와 공부 때문에 학습자체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연어에 관해 자세히 배우고 추가 리딩 지문이 숙제로 나왔을 때는 정말 너무한다 싶었다.

3장으로 된 긴 지문을 읽고 이해하고 모르는 단어는 동그라미 치라는 것이었다.


입시학원에서 영어강사로 일했던 나는 그 지문을 보는 순간 전적으로 아들의 편에 서게 되었다.

1년 반이란 시간 동안 선생님의 교육철학을 존중하며 선생님 편에 서서 아들을 설득하고 또 설득했지만 더 이상 그럴 수가 없었다.

지문의 수준은 한국의 고2 모의고사 또는 고3 3월 모평 수준이라 해도 전혀 지나침이 없었다.


헬로밴에 숙제 지문을 올리고 댓글을 기다렸다.

열댓 개 달린 댓글 중에 의견은 분분했다. 이 정도가 맞는 것 같다는 의견도, 고등학생도 저 정도는 안 한다는 댓글까지 그리고 대부분의 댓글에는 '숙제가 있나요? 숙제 한번 해 봤으면 좋겠다'내용의 댓글이었다.


교과서도 없고 모든 것은 전적으로 선생님의 교육철학이 기준이 되므로 아이들의 레벨도 학습의 과정도 이렇게 상당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이  밴쿠버 초등학교의 현실이다.


어느 날은 숙제가 너무 많아 토요일임에도 놀러 나갈 수가 없는 상황이 닥쳤다.

김에 나는 그냥 숙제하지 말자! 라며 속마음을 말해버렸지만 아들의 대답은 No!

완벽주의 성향인 아들은 숙제를 안 해간다는 사실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보였다.


우연히 선생님과 상담 중에 알게 된 사실이다.

2학년 때 만나 3학년까지 같은 선생님과 함께 공부하고 있는데 반편성을 할 때 큰 아이를 일부러 데리고 가셨다는 것이다.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했으면 더 실력이 향상되었을 텐데 그렇게 되지 않은 것 같아 3학년 본인 반으로 직접 넣으신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모든 숙제를 하려고 노력했고 늘 초조한 마음으로 Planner를 확인했다는 변명을 하다가는 엄마인 나도 혼날 것 같아 말을 아꼈다.


귀한 내 아들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이쁜 내 새끼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말도 많은 수다쟁이 우리 큰 아들이 완벽하지 않은 언어와 숨 막히는 교실 분위기 때문에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큰 아이의 첫 등교 날


Love라는 글자와 함께 도마뱀 그림을 3일 연속 그려주며 큰 아이에게 잘해 주던 Linden이란 친구.

Linden과는 2학년 때 잠시 헤어졌다가 지금은 다시 같은 반이 되었다.

며칠 전 Linden과 앉아서 대화를 하는데 1학년때 그려주던 도마뱀 그림을 나한테 주는 건지 모르고 다시 너에게 돌려주었다 얘기하며 둘이 한참을 웃었다고 한다.  

 아이가 영어를 전혀 못 알아듣던 그 시절을 회상하며 둘은 추억에 잠겼다.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가 2, 3학년 내내 다른 반이 된 Kingston. 그래서 서로 속상한 그들. 매 년  반편성 이메일을 보자마자 연락이 오는 Kingston엄마는 what a bummer! 를 외치며 속상해한다. 4학년때는 과연 같은 반이 될 수 있을까?


신나게 뛰어놀 때는 그 누구보다 쿵짝 잘 맞는 Enzo

그리고 이제는 중학생이 된 친누나처럼 늘 챙겨주며 보살펴주던 Enzo 누나


학구파인 Mary와도 늘 깊은 대화를 나누는 듯해 보인다.


마이클 잭슨의 엄청난 팬인 Augie와는 문워크 춤도 같이 춘다며 집에서 연습도해가던 아들

 

몸짱에 복근까지 있다는 Robbie 얘기를 하며 본인도 복근을 키우겠다 말한다. Robbie와 4학년 때 꼭 같은 반이 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2학년때는 달리기 라이벌이었다가 3학년때는 절친이 된 Sava.Sava는 집에 초대해 자랑스러운 K치킨도 선보였다.


그리고 평생 잊지 못할 존재만으로도 고마웠던 한국 형아 Jun과 하주

메이플 릿지로 이사 간 하주와는 가끔 영상통화를 하는데

20,30분이 지나도록 끊지 않는다. 너무나 귀여운 수다쟁이들이다.

발렌타인데이때 반 친구들을 위해 준비한 구디백

공부가 조금은 힘들긴 하지만 주위엔 늘 좋은 친구들과 좋은 선생님들이 계시다. 


같은 학교 선생님이기도 하지만 옆집 이웃이기도 한 선생님. 큰 아이 부담임을 잠깐 맡으셨고 그 후로는 학부모로만 만났지만 늘 큰아이, 작은아이 안부를 물으시며 쏟아지는 내 질문에 성실히 답해주신다.

참 따뜻하다.

그리고 둘째의  절친인 Miles는 현재  담임선생님의 아들이다. 킨더 입학 전에 만나 오랜 시간 우정을 지켜 온 그들은 서슴없이 서로를  집에 초대한다.

담임선생님이란 존재가 부담스럽지 않고 언제든 서로의 아이를 맘 편히 맡길 수 있는 친한 '옆집 아줌마' 같이 느껴지는 이곳.

참 정겹다


이렇게나 따뜻하고 감사한 선생님들에게 소소하게나마 감사의 마음을  표시할 수 있는 학교행사도 있다. 김밥을 좋아하는 선생님들도 계시다는 특급정보에 난 열심히 김밥을 말았다.


사실 조기유학을 목적으로 왔다면 지금의 선생님은 그 누구보다 환영받았을 것이다.

학생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도 남을 만한 커리큘럼을 갖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렇게 길고 긴 공부와 시험이 끝나면 쿨하게 파티도 연다. 전자기기도 학교로 갖고 오게 해서(없다면 학교 랩탑을 빌려주셔서) 신나게 게임도 몇 시간이나 하게 허락하신다.


중간이 없다.

학생을 위해서라면 극과 극을 달리는 선생님.


최근 선생님과 상담이 있었다.

How is your son? 이란 내 질문에 40분 동안 아들얘기를 하셨다. 아들이 아파서 이틀간 수업을 못 오셨던걸 큰 아이를 통해 들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장성한 25세 아들이 뇌암판정을 받았던 것.

그렇게 선생님은 아들얘기를 시작하셨고

우린 함께 울었다.

아들이 그렇게 아픈데 어떻게 학교일에 집중할 수 있는지,

나였으면 아무것도 못하고 무너졌을 거라고 얘기하니 오히려 학교 일과 아이들에 집중하면서 아들일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으니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밴쿠버 땅에서 존경받아 마땅하신 분.

큰 아이도 나도 평생 잊지 못할 선생님이심에 분명하다.


2년 전

Hello, Thank you, Sorry 세 마디면 충분하다 말하며

아무것도 모르는 너를 무작정 학교로 보냈다.

얼마나 어려웠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지난 2년 잘 버텨준 너무나 고마운 아들에게


아들아!

돈 버는 영어는 Hello, Thank you, Sorry로는 턱도 없지만

돈 쓰는 영어는 Hello, Thank you, Sorry 저 세 마디면 충분하단다!


네가 꿈꾸는 그 꿈을 반드시 이뤄내어 전 세계를 누비며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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