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된 불만과 제도의 빈틈이 만든 ‘폭력의 도미노’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넷플릭스 드라마 〈트리거(Trigger, 2025)〉는 총기 청정국이었던 대한민국에 불법 총기가 유통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액션 스릴러이다. 특히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와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사회 문제에 대한 메시지 등이 호평을 받고 있다. 총기 난사, 묻지 마 폭행, 스토킹 살해 사건이 뉴스에 오를 때마다 사회는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사건 직후의 분노와 대책 논의는 몇 주를 넘기지 못한 채 잊히고, 비슷한 사건이 다른 곳에서 다시 벌어진다. 겉으로는 한 개인의 일탈과 범죄처럼 보이지만, 그 방아쇠를 당긴 힘은 종종 사회 구조 속에 켜켜이 쌓여온 불만과 제도의 미비다. 분노는 사라지지 않고, 해소되지 않은 채 온라인과 거리로 번져 더 큰 균열을 남긴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발생한 강력범죄 건수는 7만 1천여 건으로, 5년 전보다 12% 증가했다. 특히 피해자와 가해자가 전혀 모르는 ‘무관계 범행’이 전체의 18%를 차지했다. 대검찰청 자료를 보면 범행 동기 중 ‘분노·불만 해소’가 2020년 8.7%에서 2024년 13.2%로 증가했다. 이는 단순한 우발적 충동이 아니라, 장기간 누적된 사회적·제도적 불만이 폭력으로 분출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수치 뒤에는 지친 얼굴과 무너진 일상이 있다.
불만의 배경은 다양하다. 법원의 판결이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인식을 굳히는 사례, 검찰·경찰 수사의 불공정성 논란, 행정기관의 민원 처리 지연이나 불투명한 절차, 직장 내 갑질과 불합리한 인사, 지방자치단체의 무책임한 행정 집행까지. 피해자는 제도를 믿고 도움을 요청하지만, 답은 더딘 행정 서류와 복잡한 절차뿐이다. 이런 경험이 쌓일수록 사람들은 제도에 기대는 대신, 분노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위험한 선택으로 기울 수 있다. 신뢰가 부서진 자리는 보복의 상상으로 채워진다.
스토킹 범죄는 그 전형적인 예다. 2024년 스토킹 범죄 신고 건수는 8,300여 건이었으나, 구속된 비율은 3%에 불과했다. 법원에서 실형이 선고된 경우도 드물었다. 피해자가 위험을 호소해도 경찰의 피해자의 정보노출의 행정 실수, ‘경고 조치’나 ‘접근금지’ 명령은 종이에만 존재했고, 결국 피해자 사망으로 이어진 사례가 잇따랐다. 행정의 미온 대응이 범죄를 막지 못한 셈이다. 피해자는 오늘을 버티기 위해 이사를 고민하고, 때로는 직장을 포기한다.
직장과 학교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난다.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2023년 직장 내 괴롭힘 진정 건수는 1만 5천 건을 넘었지만, 절반 이상이 ‘증거 부족’으로 종결됐다. 교육부의 학교폭력 실태조사에서도 피해 학생의 28%가 “신고 후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라고 답했다. 제도는 있으나, 실행이 따르지 않는 ‘속 빈 대책’이 현장의 체감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여기에 경제 불안, 고립된 인간관계, 심리적 고립이 결합하면 폭력의 위험은 더욱 커진다. 보건복지부가 2024년 발표한 조사에서,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단절을 동시에 겪는 성인의 14%가 “타인에 대한 공격 충동을 느낀 경험이 있다”라고 답했다. ‘방아쇠를 당기는 손’만 탓할 수 없는 이유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선 세 가지 변화가 필요하다. 첫째, 법과 제도의 신뢰 회복이다. 판결과 수사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법 적용의 형평성을 강화해야 한다. 둘째, 행정 대응의 속도와 실효성이다. 스토킹·가정폭력·직장 내 괴롭힘 등 반복 범죄에 대해 실시간 모니터링과 즉각적 보호 조치를 의무화해야 한다. 셋째, 사회적 안전망과 분노 관리 시스템 구축이다. 경제·심리·관계의 복합 위기 신호를 조기에 포착해 상담·치료·중재로 연결하는 촘촘한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사건 직후의 규탄과 일시적 단속은 폭력의 근원을 뽑아내지 못한다. 총성은 멈춰도, 방아쇠를 당기게 한 사회의 구조와 무관심이 그대로라면 또 다른 비극은 시간문제다. 우리는 이제 범죄를 ‘개인의 일탈’로만 보는 시선을 넘어, 그 뒤에 드리운 사회의 그림자를 직시해야 한다. 방아쇠를 쥔 손이 아니라, 그 손을 쥐게 만든 사회를 바꾸는 일. 그것이 반복되는 비극을 끝내는 유일한 길이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인생3모작 전문가】는 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 공기관, 중앙부처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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