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과 전문성을 되살리는 물가 리더십
“위기에 침묵하는 사람은, 이미 책임의 자격을 포기한 사람이다.”
만약 지금 내가 대한민국 기획재정부 물가정책관이라면, 이 말은 스스로에게 던지는 첫 문장이 될 것이다. 요즘처럼 생계물가가 시민의 일상 깊숙이 스며든 상황에서, 정부 관료의 역할은 ‘숫자를 관리하는 사람’이 아닌 ‘심리를 책임지는 사람’ 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포도’ 이야기처럼, 우리는 때로 손에 닿지 않는 과실에 대해 “원래 신 것이었다”며 합리화하려 한다. 최근 일부 정책 당국자들의 언행도 이와 다르지 않다. 고환율·고유가·고물가의 삼중고 상황에서, 일각에서는 "국제요인이 크다"거나 "예상보다 선방 중"이라는 말로 물가 불안을 희석하려 한다. 그러나 국민의 냉장고 사정은 통계가 아니라 체감으로 반응한다. 서민 경제는 숫자가 아니라 숨결로 반응한다는 말을, 이제는 구호가 아니라 정책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정책의 무게는 현장에서 실감된다. 지난 5월, 한국은행은 2025년 소비자물가상승률을 연평균 3.1%로 상향 조정한 바 있다. 이는 OECD 평균을 웃도는 수준으로,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이 체감물가 상승을 주도하며 그 이상으로 느껴지고 있다. 국민 10명 중 6명은 “물가 안정‘을 가장 시급한 정책과제로 꼽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대응 메시지는 여전히 원인 분석이나 해명에 치우친 채, 선제적 대응은 보이지 않으며, 국민은 ‘누가 책임지는가’라는 근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재부 국장이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정무적 눈치를 보기보다 경제 리더십을 회복하는 것이다. 대통령 지시 이후에야 움직이는 시스템, 책임을 분산시키는 브리핑, 원론적 대응에 그치는 자료 보고는 관료 시스템의 안일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만약 내가 물가정책을 총괄한다면, 다음의 세 가지를 즉시 실행에 옮기겠다.
첫째, 현장 대응형 인플레이션 진단체계를 구축하겠다. 단순히 물가를 전년 동기 대비로 추적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밀착형 품목(계란, 우유, 라면, 배추 등)에 대해 주간 단위로 가격 변동률과 공급망 리스크를 실시간 분석하고, '물가조기경보지수'를 도입하여 민감 품목을 선제 관리하겠다. 이를 위해 민간 유통사 및 AI기반 데이터 분석업체와 협업하여, ‘체감물가 인덱스’를 공동 발표하는 체계도 병행하겠다.
둘째, 부처 간 물가 대응 거버넌스를 정비하겠다. 농식품부·산업부·공정위·기재부가 따로 움직이는 지금의 구조로는 품목별 가격 급등에 대응할 수 없다. '물가안정 전략회의'를 주 1회 정례화하고, 담당 부서에 책임자 실명제, 연동된 성과 평가제를 도입하겠다. 대국민 브리핑도 형식이 아니라 각 부처 간 합의된 통합 메시지로 재편성한다.
셋째, 국민과의 신뢰 회복형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새로 짜겠다. 물가에 대한 심리적 공포는 실제 수치보다 더 큰 파급력을 가진다. “단계별 대응이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전문가 간담회·지역 설명회·SNS 등 다양한 채널로 선제적으로 알리고, 이 과정에서 민간과의 상시 협의 구조도 함께 만들어나간다. 특히 국민이 ‘정보를 통해 안심’할 수 있도록 정부 대응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높이겠다.
일본은 1995년 고베 대지진 이후, 위기 매뉴얼을 각 부처별로 정비하고 매 분기별 대응점검 시스템을 마련했다. 이후 동일본대지진(2011), 구마모토지진(2016) 등 대형 재난에서도 초기 대응 체계가 한층 안정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상황 발생 시 즉시 행동할 수 있는 준비된 정부’는 매뉴얼보다 태도에서 비롯된다.
우리도 ‘슈퍼맨 대통령’이 아닌, ‘스스로 움직이는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처럼 모든 위기 대응의 중심이 청와대나 대통령의 일괄 지시에 의존하는 구조라면, 정책 리스크는 언제든지 반복될 수밖에 없다. 현장의 정보는 관료가 갖고 있고, 전문성과 대응력도 관료 조직이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명령으로 움직이지만, 행정은 책임으로 움직인다.”
이 말은 어느 유명 학자의 말도, 고전 속 격언도 아니다. 오늘 아침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는 신념이자 다짐이어야 한다. 내가 기재부 국장이라면, 적어도 그런 자세로 책상에 앉을 것이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전문가, 칼럼니스트】는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 공공기관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개인메일 charly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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