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손님 백년종년
종연의 가족은 그제야 종연이 빨간색 계열을 싫어하는 것과 돌출형 반지에 대한 그녀만의 견해가 떠올랐다.
종연은 왜 새빨간 루비와 자기주장 강한 다이아 반지가 예물함에 들어있는지 궁금해서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그때 종연의 엄마가 머뭇거리면서 말씀하셨다.
“종연아. 먼저 남서방이 가져온 함은 잘 받았다. 시댁 어르신들께 감사하다고 전해드려라.
다만 궁금한 것이 있는데, 봉채금이 돌아오지 않은 것 같구나. 너희 시댁에서 깜빡하신 걸까?
함 구석구석, 포장된 상자와 봉투를 일일이 다 찾아봐도 없다.
알다시피 봉채금이 돌아와야 네 동생들 예복이라도 한벌씩 맞춰줄 수 있는데 말이다.”
아빠와 이모는 이미 알고 계신 듯했다.
그제야 종연은 오후 내내 엄마와 이모의 알 수 없는 행동이 이해되었다.
종연은 일단 함 잘 받았다고 어머님께 연락을 드린 뒤 일요일인 다음날 아침 일찍 목동 시댁에 방문하기로 했다.
종연은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 계속 복잡한 생각을 정리했다.
종연은 시댁 근처 고깃집에서 손임과 함께 어머님을 모시고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조심스레 어머님께 여쭤 보았다.
“어머님. 예물들이 너무 예쁘더라고요.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그런데 목걸이랑 귀걸이 보석이 빨간 루비더라고요. 전 빨간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려서 루비를 보고 좀 놀랐어요. 그리고 반지는 주얼리 매장 매니저님께 유치원 교사라 아이들에게 위험할 수도 있으니 함몰형으로 부탁드렸는데 무슨 착오가 있었을까요?”
“부자 되라고 루비를 골랐지. 빨간색이 재물을 부른다잖니. 재물복이 있다니 너도 그리 알고 싫어도 잘하고 다니렴. 그리고 다이아 반지를 자랑해야지 뭐 하러 감추고 다니냐. 내가 매니저한테 다시 얘기해서 잘 보이게 바꿨으니 그리 알아라.”
어머님의 말에 손임은 웃으면서 엄마에게 핀잔을 주었다.
“엄마. 권사님이 재물복 뭐 그런 얘기해도 돼? 하하.”
종연은 며느리의 의견은 안중에도 없는 어머님의 말씀과 거기에 더해 종연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알 생각도 없는 손임의 태도에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종연은 마음속 생각과는 다르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네 어머님. 그런 뜻이 있으셨구나. 알겠습니다. 예쁘게 잘하고 다닐게요.”
종연의 대답을 듣고 어머님은 문득 생각 난 듯 종연에게 말했다.
“아 참. 내 아들들이 모두 너희 집에 함을 가지고 가느라 고생했는데 함비를 좀 두둑이 챙겨줬어야지?
내 아들들은 내 전 재산이야. 내 전 재산이 갔는데 너무 박한 것 아니냐?”
종연은 갑자기 훅 들어온 어머님의 함비 공격에 잠시 멍해졌다.
“아… 제가 저희 부모님께서 함비 얼마를 드렸는지 모르겠네요. 어르신들이 알아서 챙겨주신다기에 그런 줄만 알았어요.. 부족하셨구나…. 죄송합니다.”
손임이 대꾸했다.
“엄마. 그 정도면 됐지. 우리가 가서 얼마나 푸짐하게 먹고 마시고 왔는데 그래.”
손임의 말에도 종연의 어머님은 내심 자기 아들들이 생각만큼 대접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언짢은 마음을 쉬 가라앉히지 못했다.
갑자기 싸늘해진 분위기에 종연은 다음 질문을 하지 못하고 연신 애꿎은 고기만 씹고 있었다.
종연은 함을 맞이하기 위해 음식 준비로 며칠 동안신경 쓰시고 고생한 종연 가족의 수고가 종연의 조아림과 사과로 인해 초라하게 저물고 있음을 느꼈다.
예단을 들고 시댁에 방문했을 때 종연은 그저 말 뿐인 환대만 받았을 뿐인데 말이다.
“봉채비를 못 돌려보내신다고요?’
“엄마가 얘기하길 봉채비를 돌려줄지 말지는 철저히 시댁 재량이래. 안 돌려줘도 된다 하시던데.”
종연은 손임의 이야기에 순간 아찔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또박또박 맞받아쳤다.
“내가 주변 친구들한테도 물어보고 동료 선생님들한테도 의견을 들어봤어요. 봉채비 안 준 시댁은 없었어요. 양가 예단을 생략하는 경우는 있어도 말이에요. 시댁이 받고 반 정도를 다시 보내주는 것이기 때문에 시댁 재량은 맞지만 안 돌려주는 건 도의적이지 않다고요.”
종연은 주변 지인들에게 들은 이야기와 자신의 생각을 잘 버무려 손임에게 말했다.
‘그리고 내 동생들은 아무것도 받지 말란 건가요? 그 봉채금은 우리 가족 예단비예요. 그걸 탐내시면 안 되죠.”
“우리 엄마가 뭘 탐낸다고 그래. 우리 엄마 그런 사람 아니야.”
“그럼 어머님께 잘 얘기해 봐요. 우린 꼭 받아야겠어요.”
“난 그런 얘기하기 싫은데… 자기가 엄마한테 얘기해 봐.”
종연은 두 귀를 의심했다. 나보고 얘기하라고???
이제 종연은 결단할 수밖에 없었다.
“나 봉채금 돌려받지 못하면 결혼 미룰 수밖에 없어요. 이 문제는 내 문제가 아니라 우리 가족 문제니 까요. 예물 목걸이와 반지는 내 의견이 무시당해서 속상하지만 그냥 넘어갈 수 있어도 봉채금은 꼭 주셔야 해요. 그리고 그 문제는 자기가 어머님과 해결해요. 나보고 어머님께 얘기하라고요? 지금 제정신이에요?
손임은 종연의 단호한 모습에 더 이상 대꾸하지 못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어머님은 봉채비를 토해 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