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손님 백년종년
우렁찬 삼 형제의 목소리가 아파트에 울렸다.
“함 사세요!!!”
손임은 종연 이모가 재래시장에서 겨우 구해온 박을 구둣발로 한 번에 산산조각 내고 당당하게 종연네 집에 입성했다.
종연네 식구들은 요란하게 함을 사고 큰 테이블에 둘러 앉아 함을 풀었다.
함을 열자 오곡 복주머니가 함 구석 네 귀퉁이에 앙증맞게 배치되어 있었다.
그 밑에는 예물 보석 상자와 종연 엄마 것으로 보이는 명품 가방이 포장되어 있었고 옥색 비단 보자기로 곱게 싼 혼서지가 보였다. 종연의 가족들은 예쁘고 정성스레 포장된 예물들을 보시고 즐거워하셨다.
그러나 종연 엄마와 이모는 본인의 가방은 뒷전이고 혼서지를 뺀 후 비단 보자기를 한 귀퉁이씩 풀어보셨다. 기분 탓인가? 종연은 엄마가 보자기 안에서 혼서지 말고 다른 것을 찾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내 이모와 함께 예물로 보낸 가방을 열어 보시며 연신 너무 마음에 드신다고 손임에게 고맙다는 표현을 하셨다. 하지만 종연은 가방 안까지 살피시는 엄마의 모습이 지금의 상황과 너무 이질감이 느껴져서 순간 당황했다.
마침내 종연의 주얼리 예물을 풀어보려던 찰나 종연의 아빠는 손님들 배고프다며 점심식사를 재촉하셨다.
이미 종연은 어머님과 예물을 함께 골라서 초이스 했기 때문에 궁금함이 덜했고 종연의 엄마도 웬일인지 정신이 없어 보였기에 종연은 흔쾌히 엄마와 이모를 도와 상차림을 했다.
모두들 시끌벅적하게 식사를 하며 수차례 이런저런 덕담들을 주고받았다. 종연의 집은 기분 좋은 알딸딸함에 젖어가고 있었다.
종연은 손임의 옆에서 별 것 아닌 것에 계속 흘러나오는 웃음을 내비치며 마냥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부족한 음식을 가지러 부엌으로 들어갔다.
따뜻하고 훈훈한 기운을 안고 부엌으로 들어간 종연은 부엌에서 느껴지는 한기에 흠칫 놀랐다.
부엌에서 심각하게 대화 중이던 종연의 엄마와 이모는 종연을 보자 갑자기 다른 그림체가 되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오징어무침이랑 굴전 다 먹었구나. 역시 너희 이모 솜씨는 어디서나 통한다니까.”
“이모 너무 감사해요. 오늘 너무 고생하시네요.”
종연은 방금 전 두 분의 표정이 심상찮아 보여서 걱정되었지만 더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아 염려스러운 마음을 삼켜버렸다.
노을빛이 짙어진 저녁 어스름. 종연의 친구와 손임의 가족들은 종연 가족들의 배웅을 뒤로하고 돌아갔다.
종연은 문득 어머님과 함께 고른 예물을 확인하지 않은 사실이 떠올랐고 가족들을 불러 모아 윤기 나는 갈색 주얼리 함을 열었다.
어두운 갈색 박스와 대비되어 환하게 빛나는 예물들이 자태를 드러내자 종연의 가족들은 마치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보석을 본 듯 기뻐해 주었다
하지만 종연은 좋지도, 기쁘지도 않았다.
종연은 마치 오늘의 즐거웠던 시간이 사라진 것 같은 표정으로 주얼리 세트를 응시했다.
주얼리 박스 오른편에는 새빨간 루비가 박힌 귀걸이와 목걸이가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가운데 반지함에는 보란 듯이 링에 돌출되어 있는 1캐럿짜리 다이아몬드가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