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이혼서류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살잖아요 7

백년손님 백년종년

by 사라최



# 첫제사


여러 우여곡절 끝에 종연과 손임은 부부가 되었다.

1년이 채 되지 않은 연애 기간을 보냈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 결혼했기에 둘은 꽤 잘 맞았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임은 일본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종연네 시댁은 제사를 많이 지내지 않는다. 시할머니 시할아버지 제사 외엔 구정과 추석 차례가 전부다. 손임이 출장을 간 날 종연에게 어머님이 연락하셨다.

“이틀 뒤에 시할머니 제사가 있으니 참석하거라.”

이틀 뒤면 목요일이다. 당일은 물론 다음날인 금요일도 출근을 하는데 어떻게 참석하란 말씀이신가? 일주일 중 목요일 금요일은 유치원에서 가장 바쁜 날이고 분야별로 회의도 몰려있는 요일이다. 게다가 남편도 출장 가고 없다.

“어머님. 제가 목요일에 아무리 빨리 퇴근해도 6시 넘을 것 같아요. 음식 준비도 해야 하는데 기차 타고 서둘러 가면 9시쯤 도착하는데 어쩌죠?"

종연은 남편도 없이 첫제사에 가야 한다는 부담과 다음날 출근에 대한 압박으로 가슴이 사정없이 뛰었다.

“남편이 없더라도 시댁 첫제사인데 참석해야지. 아무리 늦더라도 꼭 와라. 저녁 늦게 제사드리고 하룻밤 자면 되겠다.”

종연 어머님은 유치원에서 퇴근하자마자 기차를 타고 타 지역으로 가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지, 다음날 출근 시간에 맞춰 기차 타고 대략 3시간 넘는 거리를 출근하는 것이 얼마나 가슴 졸이는 일인지 안중에도 없었다.



그날 저녁 일본에서 걸려온 손임의 전화에 종연이 하소연했다.

“일본에 잘 도착했죠? 컨디션 잘 관리하고 업무 잘 마무리해요.”

“내일 도쿄 지사에서 미팅하고 현장 업무 보면 오후에 좀 한가할 거 같아. 자기는 퇴근하고 저녁은 먹었어?

“선생님들이랑 먹고 왔어요. 그리고 어머님한테 전화 왔는데 내일모레 시할머니 제사여서 와야 한대요. 자기 없이 시댁에 제사드리러 가야 한다니 여간 긴장되는 게 아니에요.”

“내일모레면 목요일인데 엄마는 왜 출근하는 사람을 오라고 하시냐. 그놈의 제사는 없애든지 해야지. 권사님 진짜 안 되겠네.”

“그래도 시댁 첫제사인데 가봐야죠. 오고 가는 길이 주 중이라 쉽지 않겠지만 뭐 어쩔 수 없죠.”

종연은 손임의 걱정스러운 마음을 가슴으로 느끼며 시댁 제사로 인해 긴장했던 마음이 사르르 풀렸다.

이틀 뒤 종연은 동료 선생님들과 나누어 만들고 있던 수업자료 ppt를 결국 끝내지 못한 채 선생님들께 미안한 마음을 안고 학교 앞에서 수원역으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렸다.

7시 영등포행 기차를 타려면 시간이 촉박했다.

다행히 평소보다 일찍 버스가 도착했고 종연은 버스를 타자마자 제발 밀리지 않고 수원역에 시간에 맞춰 도착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7시 기차를 놓치면 8시 20분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종연은 절실히 주님께 매달렸다.

“띵똥!! 이번 정거장은 수원역입니다.”

다행히 늦지 않게 수원역에 도착했다.

손임과 처음 만났던 그곳이다. 종연은 버스에서 내려 정신없이 뛰고 있었지만 그때의 추억을 잠시나마 회상하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간발의 차로 겨우 영등포행 기차에 탑승했지만 종연은 노트북을 꺼내 오늘 회의한 주간계획서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시댁에 가면 업무를 마무리하기 어렵기 때문에 영등포에 도착하기 전 20분 동안 두뇌를 풀가동 하여 타이핑에 열중했다.

인간이 극한의 상황에 몰리니 이리도 능력치가 상승한다는 걸 종연은 몸소 체험했다.

평소에 1시간은 족히 걸릴 주간 교육 계획서 타이핑을 18분 안에 끝내 버린 것이다.

종연은 의기양양하게 노트북을 정리하고 기차에서 내렸다.


퇴근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영등포역은 사람들로 북적댔다.

종연은 내일 실습 교사들에게 줄 평가지와 평가기준서, 갈아입을 옷과 세면도구들이 들어있는 무거운 백팩을 메고 노트북 가방을 손에 든 채 목동 사거리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렸다.

아직 시댁에 발도 디디지 않았지만 종연은 방전되기 직전이었다.

띠리링띠리링~ 어머님은 오는 길에 두 번 전화하셨고 지금은 세 번째 연락이다.

“기차에서는 잘 내렸냐? 나랑 니 형님이 음식은 다 만들어 놨으니 너만 오면 된다.”

“네 어머님. 잘 내렸어요. 이제 버스 한 번만 타면 됩니다. 제가 같이 음식을 해야 하는데 너무 죄송해요.”

종연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시댁 제사를 챙기러 가고 있었지만 어머님과 형님에게 죄송한 맘이 물밀 듯 밀려왔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남편 집 제사에 왜 아낙네들이 이리저리 동동거리며 애쓰는지 원론적인 물음이 떠나지 않았다.


종연은 시댁에 간다고 회색 간절기 예복과 구두를 신고 온 것이 내내 후회됐다.

오른발 뒤꿈치는 찌릿하게 물집이 올라왔고 무거운 백팩에 짓눌려 예복은 구겨진 지 오래다.

손임과 종연이 결혼할 때 약속한 것 중 하나가 차는 첫 아이를 가지고 구매하는 것이었다.

아이를 낳고 나면 종연이 휴직을 하게 될 것이고 그에 반해 아이 관련해서 빠져나가는 돈이 만만찮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손임과 종연은 아이 없는 신혼 생활을 알뜰하게 보내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 종연은 자차를 운전하고 시댁에 왔으면 어땠을까? 를 생각하며 버스를 타고 멍하니 오목교를 바라보고 있었다. 종연은 벌써부터 내일 아침 출근길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종연은 오목교를 지나 목동 사거리에서 하차했다.

내리자마자 단전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종연의 한숨에 목동 사거리 땅이 꺼질 듯했다.

종연은 발 뒤꿈치가 아픈 줄도 잊고 서둘러 언덕배기를 올라가 드디어 시댁에 도착했다.

서둘러 왔는데도 9시가 지나 있었다.

형님과, 어머님은 종연을 반갑게 맞이해 주고 고생했다며 다독여 주었다.

서둘러 음식을 차리고 시할머님 사진을 마지막으로 테이블에 올려 세팅을 마친 뒤 어머님은 서둘러 가족들을 불렀다.

“여보 다 준비됐어요. 우리 아드님들, 장손~ 나오세요.”

상차릴 때 티브이를 보며 깔깔거리던 아주버님과 시조카, 시동생은 다 차려진 제사상에 나란히 섰다. 뒤늦게 아버님께서 상 가운데 앉아 술을 따르고 잔을 세 번 돌린 뒤 정종 옆 빈 대접에 술을 부었다. 남자들은 모두 예를 갖춰 두 번의 절을 올렸다. 아버님께선 생전 시할머님께서 좋아하시던 약과 접시와 산적이 담긴 접시에 젓가락을 놓으시고 소복이 쌓인 밥에는 숟가락을 꽂아놓으셨다.

젓가락과 숟가락이 옮겨질 때마다 종연네 시댁 남자들은 두 번씩 절을 올렸다.

종연네 가족은 제사를 지내지 않고 구정과 추석 때 함께 모여 명절음식을 만들어 함께 먹기 때문에 종연은 시댁의 제사 모습이 마냥 신기했다.

제사 의식을 모두 마친 후 상을 물리고 가족들 모두 식사를 했다

늦은 시간이라 종연은 음식이 넘어가지 않았지만 어머님의 성화에 못 이겨 한 두 숟가락 겨우 먹었다.

식사 후 설거지를 하고 부엌을 정리한 뒤 종연은 왜 음식 할 시간이 없는 먼 거리에 있는 며느리가 잘못한 것도 없이 세상 미안한 감정을 다 끌어 모아 남편 없이 제사에 참석했는지 곰곰이 생각하면서 식사 전 손임과의 전화 통화를 떠올렸다.


“들어보니 고생이 많았네. 엄마가 자기랑 음식 준비 못해서 서운했다고 하시더라.

다음부터는 며느리 도리 톡톡히 하라더라고. 엄마도 참.”

종연은 손임이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터무니없는 한 단어에 맥이 탁 풀렸다.

“며느리 도리? 내가 오늘 며느리 도리 못한 게 뭐죠? 음식 준비를 일부러 안 한 것도 아니고…

내가 며느리 도리 하기 위해 유치원까지 결근하고 제사 준비를 하라는 거였어요?”

“아니, 결혼하고 첫제사인데 엄마랑 형수님이 음식준비 다 했잖아. 엄마 입장에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종연은 유치원 회의도 끝마치지 못한 채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득 안고 대중교통을 3번이나 갈아타고 그 와중에 기차에서 밀린 업무까지 한 데다가 시댁에 도착하자마자 헐레벌떡 앞치마 두르고 일하느라 제사가 끝난 지금도 오른발 뒤꿈치는 약을 못 바른 상태다.

종연은 이 모든 상황이 머릿속에 화살을 쏘듯 쌩~ 떠올랐지만 말하다가 울음이 터질 것 같아서 침만 꼴깍 삼켰다. 그리고 차분하게 말했다.


“며느리 도리를 운운하니 나도 아들 도리에 대해 얘기해 볼게요.

자기는 아들로서 제사에 참석 못해서 어르신들께 안 죄송해요? 아들 도리를 못 했잖아요?”

“에이 미안하긴 내가 뭐가 미안해. 나는 다르지. 난 출장 중이잖아.”

“뭐가 다르죠? 나도 직장에 다니기 때문에 가능한 시간에 최선을 다해 왔는데 어르신들께 저녁 내내 속이 쓰릴 정도로 미안해하고 급기야 며느리 도리를 못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그러면 자기도 출장 중이라 어쩔 수 없이 못 왔지만 어르신들께 아들 도리 못했으니 미안해해야죠.

어머님께서 며느리 도리만 얘기하시고 아들 도리는 말씀 안 하셨나 봐요?

그런데 어찌 보면 제사의 주체가 되는 이 집 아들인 자기가 더 안절부절못하고 죄송해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손임은 종연의 말에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종연은 침묵하는 손임에게 선전 포고를 했다.

“며느리 도리를 하기 원하면 유치원을 그만둘 수밖에 없어요. 직장 다니면서 며느리 도리까지 잘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말아요. 난 슈퍼우먼 아니에요. 되고 싶지도 않고요.”

손임은 갑자기 손임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따지는 종연에 짜증이 밀려왔다.

“제사 한번 모신 거 가지고 뭐가 그렇게 예민해. 제사 두 번 지냈다간 나까지 퇴사하겠네.”

종연은 시댁의 첫제사를 위해 달려온 수고로움과 노력에 대한, 정당하다고 여겨지는 소신 발언이 단지 예민함으로 표현된 것에 억울하고 화가 났다.

게다가 그렇게 표현한 사람은 종연이 가장 사랑하는 배우자였다.

종연은 손임과 대화하고 싶은 의지를 잃고 손임과 흐지부지 통화를 마무리했다.



sticker sticker


keyword
작가의 이전글누구나 이혼서류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살잖아요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