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손님 백년종년
전통이란 이름의 갑질
에 이어서....
“제사 준비할 며느리가 없느니 제사를 없애 버렸지 뭐야. 그제야 수인이 엄마는 우리 집 노비였구나 깨달았고 우리 가족은 미련 없이 여기서 잘 살고 있지.”
손임은 장 차장의 말에 종연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이기적이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불편했다.
장 차장은 시계를 보더니 이내 소지품을 주섬주섬 챙기며 말했다.
“남대리 오늘 비행기 타나? 서둘러 거래처 다녀와야겠네. 난 이제 사무실 가볼게.”
“네. 차장님 이제 인사드려야겠네요. 다음에 한국에 오시면 연락 주세요.”
손임은 생각보다 진지한 대화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손임도 시계를 확인한 후 중얼거렸다.
“서두르면 아내 선물은 살 수 있겠군."
종연은 재빨리 일어나 서류를 챙긴 후 거래처 방향의 택시를 잡았다.
손임은 한국에 도착해 종연과 차 한잔 마시며 이야기를 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만지작거리던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종연은 퇴근해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시계를 보았다. 얼추 손임이 집에 도착할 시간이다.
마침 손임에게 메시지가 왔다.
‘자기야. 집 앞 사거리 카페로 나와. 쌀쌀하니까 따뜻하게 입고~’
종연은 기다리던 연락이 오자 갑자기 자존심이 상할 정도로 환하게 웃었지만 전날 손임으로 인해 종연의 진심이 무시당했던 것을 상기하며 이내 표정을 다잡았다.
종연은 손임과 어떻게 대화할지 고민하며 손임이 당부한 대로 단단히 준비하고 집을 나섰다.
집을 등지고 나서는 종연의 뒤로 손임을 맞이하기 위해 정돈되고 따스한 거실이 비쳤다.
카페 안..
손임은 여행용 캐리어를 옆에 두고 종연과 연애할 때 그녀가 선물한 머플러를 두르고 앉아 있었다. 종연은 어색하게 나흘 만에 맞이하는 남편 앞에 앉았는데…. 이럴 수가…. 꾹꾹 누르고 참았던 댐이 활짝 열린 것처럼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후드득 쏟아졌다.
‘아이씨…. 이 타이밍에 눈물이라니…’
종연의 이성과 의지는 지금 그녀의 감정을 이길 수 없었다.
손임도 종연의 눈물에 그녀 못지않게 당황해서 손수건을 줄지, 냅킨을 줄지 갈팡질팡 하며 뚝딱거렸다.
코믹인지, 멜로인지, 스릴러인지, 신파인지.. 알 수 없는 장르의 상황이 마무리되고 종연은 눈과 코가 빨개진 채 여유롭고 고상하게 대화하기로 한 모든 계획을 때려치운 채 손임에게 다짜고짜 따졌다.
“뭘 잘했다고 전화도 안 하고 메시지도 없어요? 진짜 너무한 거 아니에요?”
훌쩍거리며 따지는 종연을 손임이 토닥여주었다.
“나 없이 우리 집에 가서 할머니 제사 준비하느라 고생 많이 했지? 아들 도리도 못한 주제에 며느리 도리를 얘기했으니 얼마나 내가 원망스러웠겠어. 내가 정말 미안해.”
종연은 손임의 진심 어린 사과에 남편으로서 듬직함이 느껴졌고 만나면 미주알고주알 따지면서 얘기하려고 벼르고 있던 차가운 그녀의 마음은 눈 녹듯 녹아서 훈훈해졌다.
손임이 말을 이어갔다.
“바로 전화하지 못해서 미안해. 오늘 만나서 얼굴 보고 얘기하고 싶었어.
손임은 크로스백에서 작은 케이스를 꺼냈다.
“자기 취향에 맞을지 모르겠다. 오늘 일본지사 근처 기프트샵에서 고른 거야..”
종연은 어눌한 일본어로 이것저것 물어보며 자신의 선물을 골랐을 손임을 떠올리며 주책맞게 웃어버렸다.
선물 박스 안에는 두 겹 체인의 은색 목걸이가 동일한 은색 네 잎 클로버 펜던트와 함께 들어 있었다.
종연은 그 어떤 명품 목걸이 보다 손임이 그녀를 생각하며 선물한 이 목걸이가 훨씬 빛났다.
종연과 손임 부부는 다정하게 손을 잡고, 캐리어를 끌면서 정돈되고 따스한 그들의 집으로 돌아왔다.
종연은 후에 이 날을 ‘신혼의 끝자락’이라고 추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