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손님 백년종년
종연 아주버님의 생신이 다가온다.
형님은 매년 아주버님의 생신이 되면 ‘시부모님 아들’의 생신상을 차렸다.
종연은 일전에 어머님께서 종연에게 말씀하셨던 것을 상기했다.
“신랑 생일상은 아내가 차려야지.
여자들이 밖에 나가서 비싸고 몸에 좋지도 않은 음식을 손 까딱 해서 주문해 먹는 거 보기 안 좋다.”
어머님은 본인의 생일보다 아들들의 생일을 중요하게 여기셨고 본인이 애써서 아들 낳아 키운 보람을 며느리가 차려준 아들의 생일상을 받으며 채우시는 듯했다.
케이크를 들고 형님네 도착하니 구수하고 진하게 끓여낸 소고기 미역국, 고운 색깔 야채 베이컨 말이, 포실한 감자와 쫄깃한 버섯, 통통한 밤까지 듬뿍 넣은 야들야들한 소갈비 찜과 여러 가지 밑반찬들, 각종 김치들이 정갈하게 차림 되어 있었다.
종연은 형님이 3살 조카를 데리고 생신상 준비했을 것을 생각하니 절로 존경심이 들었다.
시댁 가족들은 오랜만에 모여서 먹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종연은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손임의 생일이 벌써부터 걱정되었다.
(통화 신호음..) 띠리리띠리리
“형님. 오늘 고생하셨어요. 어머님도 너무 흡족해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사랑받는 며느리셔요. 호호호.”
전화기 너머로 형님의 다운된 목소리가 전달됐다.
“사랑받는 며느리는 무슨… 동서.. 나는 어머님께 ‘좀 짜다’는 말 밖에 못 들었어. 수고했다, 맛있었다 이런 말씀은 전혀 없으셔. 며느리가 아들 생일상 차리는 건 당연한 거라서 고마움은 애초에 없으셨지.”
“아.. 그러고 보니 저도 못 들은 것 같네요.”
종연도 오늘의 기억을 더듬으며 덩달아 속상한 맘이 들었지만 애써 밝게 말했다.
“그래도 아주버님은 얼마나 좋으셨겠어요. 형님의 정성스러운 상차림으로 귀하게 대접받으셨잖아요.”
“동서… 그러지도 않아. 어제 음식 준비하다가 다퉜어. 너무 힘들어서 좀 도와 달라고 짜증 냈더니 1년에 한 번 준비하는 자기 생일상 즐겁게 할 수 없냐고.. 화를 내더라고.
정말이지. 누구를 위한 생일상인지 모르겠네. 참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동서 목소리 들으니 울컥한다.”
종연은 아직은 어색한 동서지간이지만 친구와도, 엄마, 아빠 하고도 나누기 힘든 그들만의 시댁 이야기를 하며 적지 않은 시간을 통화했다.
2개월 후.. 종연은 마음을 다잡고 계획한 대로 손임의 생일상을 준비하기로 했다.
종연은 일주일 내내 인터넷과 요리서적을 뒤져가며 메인 요리를 선정하고 짬짬이 밑반찬들을 만들어 두었다.
시댁 식구들이 오기로 한 날 손임은 집 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정돈했으며 종연은 기록해 둔 레시피대로 차근차근 요리하기 시작했다.
골뱅이 소면이 퉁퉁 불은 것과 닭볶음탕 감자가 조금 딱딱한 것, 무쌈 말이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서 모양이 들쭉날쭉 한 것…. 빼고는 완벽한 상차림이었다.
아차. 밥 안치는 것을 까먹었다!!!!
종연은 정신없이 상차림을 마치고 시댁 가족들과 식사를 했다.
사실 종연은 시댁 식구들과 집들이를 할 때도 밖에서 식사하고 집에서 간단한 티타임만 했기 때문에 처음 하는 생일 상차림에 혼이 쏙 빠져서 잘 먹지 못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상황이 갑자기 나빠졌다.
종연은 완벽한 게 준비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 시어르신들께 꼭 1시까지 시간 맞춰 와 주십사 거듭 부탁했던 터였다.
그 때문에 조금 일찍 도착하셨던 어르신들은 주변에서 공회전을 하며 기다리셨던 모양이다.
“아니 내 아들 집 오는데 왜 밖에서 기다려야 하는 게냐.”
어머님은 식사를 하시고 언짢은 심기를 드러내셨다.
종연은 자초지종을 듣고 말씀드렸다.
“일찍 도착하셨으면 말씀하시죠. 그런 뜻으로 시간을 말씀드린 게 아니었어요. 죄송합니다.”
“너희 아버님이랑 아주버님, 형님까지 다 1시까지 오라고 했다고 말리는데 어떻게 들어가냐. 아들 집도 이리 눈치 보면서 와야 하니.. 내 참..”
종연은 자신의 엄마, 아빠에게도 한 번을 안 한 정성스러운 음식을 대접하고도 핀잔을 들으니 가슴이 빠르게 쿵닥거렸다.
당연히 고맙다, 수고했다는 말씀은 없으셨다.
오늘의 주인공인 어머님의 둘째 아들은 어머님과 아내 사이에서 꽤 곤란한 모양새다.
“자기야 10월에 있는 내 생일상은 자기가 차릴 거예요?
우리 엄마랑 아빠, 동생들 불러서 나를 낳아주고 길러 주신 우리 부모님께 상다리가 휘어지게 오늘 나처럼 준비해서 보답할 수 있어요?
그럼 우리 엄마가 사위가 차린 음식을 감사한 줄 모르고 맛있는 지도 관심 없이 당연하게 드시고 이상한 억지 부리신 뒤 집에 가시면 되는 거예요?”
종연은 시댁 식구들이 모두 돌아가신 후 손임을 불러 속상함을 토해냈다.
물론 손임은 잘못하지 않았다. 그는 오늘이 그저 생일일 뿐이다.
하지만 오늘의 생일 상차림이 종연에게 어떤 의미인지, 얼마큼 정성을 들었는지, 손임은 종연의 하소연을 통해 알아야 했다.
종연은 오늘의 수고에 마땅한 격려를 받을 권리가 있었지만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당연한 의무로 치부되어 속상했다.
손임이 말했다.
“오늘 너무 고마웠어. 준비하느라 고생 많았지? 다음부터는 이런 거 하지 말자.
자기도 힘들겠지만 나도 생일인데 너무 불편하네..”
손임의 말을 들고 종연은 결심해야 했다.
자신을 존중하기로 마음먹고 당당하게 미움을 받을지, 알아주지 않을 짐을 짊어지고 매해 남편의 생일상을 차릴지....
무엇을 선택할지는 너무 뻔하지만 종연은 나쁜 며느리가 되는 것 같아 무서웠다.
하지만 종연은 잠시 고민한 뒤 결연하게 손임에게 선포했다.
“시댁 어르신들을 위한 자기 생일상은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다음부터는 밖에 나가서 외식해요.
나는 당신의 생일이 자기와 나는 물론 모두에게 행복한 날이었으면 좋겠어요.”
손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형님과 종연은 남편들 생일상에서 해방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