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손님 뱍년종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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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내내 영하를 기록하는 한파가 계속됐다.
눈이라도 몰아치면 매서운 겨울바람으로 인한 빙판길로 그렇잖아도 고생길인 아침, 저녁 출퇴근 길은 위험하기까지 하다.
이제 2월이 다가오고 곧 짧지 않은 구정 연휴 즈음엔 다행히 날이 풀려가고 있었다.
결혼 후 첫 구정 명절을 보낸 지 꼬박 2년이 지났고 오늘 설 명절을 맞이하여 종연과 손임 부부는 먼저 서울 시댁으로 향했다.
종연은 명절 전날에 시댁에 가서 어머님, 형님과 같이 명절 음식을 만든다.
종연네 시댁은 남자가 음식하고 부엌일을 함께하는 것에 특별히 질색하거나 못하게 하지는 않지만 권장하지도 않았다.
종연이 홀로 시할머니 첫제사를 갔던 날 이후 첫 추석 명절에는 손임과 함께 설거지를 하고 만두를 빚고, 산적 꼬지도 꽂았지만 이후 제사나 명절에는 손임도 아버님과 아주버님, 도련님과 함께 소파와 사랑을 나누며 티브이를 보거나 방에서 낮잠을 잤다.
종연은 손임과 함께 명절과 가족 모임을 준비하고 싶은 마음에 손임에게 ‘함께하자’고 몇 번의 언질을 주었지만 그저 알았다는 대답뿐이었다.
집안 분위기가 모든 명절 준비는 여자들의 몫이라는 암묵적이고 뿌리 깊은 인식이 있었기에 종연 혼자 그 대쪽 같은 가족들의 생각을 바꾼다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손임도 본인에게 유리한 집안의 흐름을 뭐 하러 어렵사리 역행하겠는가.
그는 자기 집에 오자마자 자연스레 소파에 누워 직장 생활의 피로를 풀었다.
종연은 그렇게 부당하게 여겨지는 상황 속에서도 화목한 남 씨 집안 분위기를 망치지 않게 가족들끼리 모여서 매우 즐겁다는 듯 어머님께서 건네 주신 앞치마를 둘렀다.
종연은 만들어야 할 음식 메뉴를 보고 놀랐다.
분명 이전 추석 명절에는 음식 가짓수를 줄이기로 한 터였다.
“어머님, 닭 요리랑 산적은 안 하기로 했잖아요.”
형님은 종연의 질문에 희미하게 콧방귀를 뀌더니 돌아섰다.
“음식 한, 두 개 더 하는 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조상님들께 정성을 들여야 남 씨 집안이 든든하게 서지.”
종연은 어머님의 조상님 드립에 저번 추석 명절에도 그 이전 성 명절에도 동일하게 말씀하셨다는 것이 떠올랐다.
어머님은 박 씨지만 남 씨 아들을 셋이나 낳았기에 아들들의 집안인 남 씨 집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형님의 뒷모습에서 ‘내 이럴 줄 알았네” 하는 말풍선이 몽글몽글 피어났다.
종연은 주일 예배는 물론 새벽기도, 금요 철야 기도회, 수요 저녁 예배까지 모두 참석하여 참다운 교인의 면모를 보여주시는 권사 시어머님께서 매번 집안일에 관련된 것은 샤머니즘 충만하게 변하시는지 진심 의아했다.
이거야말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하나님은 본인 편할 때 꺼내서 보여주고 거추장스러울 땐 고쟁이 바지춤에 넣어버린다.
문득 일전에 어머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요새 제사 안 지내는 젊은 아줌마들. 제사를 왜 빼먹냐.
그럼 여자들이 뭔 할 일이 있다냐.
요새 것들 너무 게을러.. 집에서 놀면서 제사도 안 지낸다니..
밖에서 뼈 빠지게 일하는 남자들만 불쌍하다니까.”
음식 준비가 막바지에 다다르자 손임네 가족들은 상을 펴고 저녁을 먹었다.
설거지를 하고 가족들이 모여 화투를 치며 돈내기를 하는데 종연은 할 줄도 모르거니와 너무 피곤하고 뻐근해서 졸음이 몰려왔다.
종연네 친정은 지난달에 남원으로 이사했다.
종연은 어르신들께 인사드리고 잠들기 직전 내일은 엄마 아빠 동생들 보러 남원에 간다는 생각에 가슴 콩닥이며 잠들었다.
종연은 다음날 차례를 드리고 아침 식사 후 친정으로 갈 준비를 했다.
‘남편이 어디 갔지?’ 종연이 남편을 찾았다.
손임은 도련님 방에서 아주버님, 도련님과 함께 옹기종기 모여서 태블릿을 주시하다가 소리를 질렀다.
“이얏호!!!!! 대박! 대박! 대박이다. 자기야 나 오늘 목동 구장에서 두산이랑 기아 전 티켓 예매 성공했어. 방금 누가 취소했나 봐. 형이랑 동생만 가서 서운했는데 나도 갈 수 있게 됐어!!!!!”
‘이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종연은 야구 방망이로 손임 엉덩이를 힘껏 내리치는 상상을 하며 이를 악물고 물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우리 남원 가야죠..”
야구를 좋아하는 손임은 처가댁 가는 것이 지금 야구 직관과 비교가 되냐는 듯 사백안을 굴리며 말했다.
“처가댁은 나중에 가면 되지만 이 경기는 이제 기회가 없어.”
저 새끼는 나이를 어디로 처먹었을까? 종연이 철없는 남편에게 단호하게 안된다고 말하려는 순간 주변을 의식하고 정신을 차렸다.
남씨네 집에서 이미 종연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주버님과 도련님은 물론이고 어머님은 실로 몇 년 만에 세 아들들이 야구장에 함께 간다는 사실에 뛸 듯이 기뻐하셨다.
종연은 보통 용기로는 이 끈끈함을 끊어낼 수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형님네 친정은 가까웠기에 아주버님은 경기가 끝나고 바로 처가댁으로 갈 수 있었지만 종연은 얘기가 다르다.
모두 즐겁고 화목한데 종연의 공간 속 공기만 무거웠다.
종연은 낯선 곳에서 혼자 팀을 먹고 싸우다 나가떨어진 루저처럼 터벅터벅 부엌으로 들어갔다.
엄마한테 전화하는 손이 마구 떨렸다.
전화하면 흐느낄 것 같아 종연은 이내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 나 오늘 못 가. 기다리지 말고 점심 드셔. 사랑해’
종연은 차마 남서방이 야구 경기 보러 가서 못 간다고 얘기할 수 없었다.
종연은 폰을 내려놓고 식탁에 앉아 신나게 야구 경기 보러 갈 준비하는 남편을 멍하니 바라봤다.
이 일은 종연에게 상처가 되고 마음속에 흔적이 남게 됐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흘러 손임에게 그날 일을 물어봤을 때 그는 그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