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손님 백년종년
종연은 어젯밤 언제 잠들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평소에 11시가 넘어야 잠이 드는데 요새는 8시만 넘어가도 내려오는 눈꺼풀을 잡을 수가 없다. 이상한 건 10시간 넘게 자도 마치 전날 밤을 새운 듯 졸음이 쏟아진다는 것이다.
종연은 추석 명절 이후 쉴 틈 없이 달려온 시간들을 돌아보며 '기력을 보충해야겠다' 결심했다.
퇴근 후 손임의 야근으로 인해 종연은 저녁을 먹으러 동료들과 삼계탕집으로 갔다.
지영쌤이 사장님께 쪼르르 달려가 말했다.
“사장님. 저희 왔어요~ 뽀샤시한 영계 3마리 빨리 잡아주세용”
몸보신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면 자주 갔던 유치원 근처 삼계탕 집 사장님은 종연 일행이 방문하자 서글서글하게 인사했다.
“아이구 선생님들 오셨구먼. 오늘 아침에 마침 땟깔 번지르르한 영계들이 줄줄이 들어왔는데 임자들이 있었네. 어서 방으로 들어가요.”
다들 입맛을 다시며 방으로 들어가는데 종연은 뭔가 처음 느끼는 이상하고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엔 구수한 닭 육수와 쌍화차를 연상케 하는 한약재 냄새가 종연의 단전에서부터 치유와 건강함을 끌어올리는 황홀한 향기였는데 오늘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역했다.
종연은 계속 속으로 구역질을 삼키다가 참지 못하고 입을 틀어막은 채 밖으로 나와버렸다.
지영쌤이 부른 배를 안고 따라 나와 물었다.
“쌤~ 괜찮아요?”
종연은 밖에 나와 바깥공기를 계속 들이마시며 말했다.
“오늘 유난히 삼계탕 냄새가 지독하게 울렁거리네.. 우웩.”
“어머 쌤~ 임신 아니에요? 요새 계속 피곤하다 하셨잖아요. 평소 잘 먹는 음식 냄새에 헛구역질도 하시고… “
종연은 아기가 종연에게 찾아오면 누구보다 빨리 바로 알아차릴 줄 알았는데 이리 갑작스레 지영쌤의 말을 들으니 혼란스러운 데다 아기가 종연에게 ‘엄마 나 왔어요.’라고 텔레파시를 보냈는데 못 알아챈 못난 엄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맞네 맞아.. 쌤~ 임신 초기엔 갑자기 기분이 확확 오락가락하고 슬펐다가 우울했다가 갑자기 울기도 하더라고요. 저도 그랬잖아요. 쌤. 기억하시죠?”
그러고 보니 효진쌤과 지영쌤도 임신 사실을 확인할 때 즈음 상당히 예민했었다.
종연은 입을 틀어막고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약국에서 임신 테스트기 사서 확인해 봐요.”
지영쌤의 말에 종연은 삼계탕 집을 뒤로하고 근처 약국으로 향했다.
삑삑삑..삐~~~~ 잘못 누르셨습니다.
종연은 현관 비번을 잘못 누르고 당황했을 손임의 얼굴이 떠올라서 킥킥거렸다.
철컥! 삐삐삐삐 띠리링~ 다급하게 문이 열리고 손임이 신발을 벗어던진 채 종연에게 달려왔다.
이미 사진으로 종연의 임신사실을 확인했지만 손임은 실제로 보고 싶어 그녀를 조심스레 다그쳤다.
“정말이야? 난 아직도 맏겨지지 않아.”
종연은 슬며시 투명 박스에 들어 있는 임신 테스트기를 보여줬다.
선명하게 두 줄이 그어진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손임은 기다렸던 아기 소식에 표현이 안될 만큼 벅찬 감정이었지만 종연의 뱃속에 자신의 아기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이제 결혼 3년 차다. 나름 년수가 차오르면서 아기에 대한 압박이 있었지만 종연과 손임 부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아기가 생겼다고 하니 안도감이 밀려왔다.
종연은 저녁을 먹지 못해 배가 고프던 차에 남편이 포장해 온 냉면을 후루룩 먹었다.
겨울이라 시원한 물냉면을 파는 곳을 찾기 어려웠을 텐데 손임에게 너무 고마웠다.
세상에…. 물냉면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었다니… 종연은 국물까지 싹 다 마시고 만족스럽게 배를 두드렸다.
종연은 어릴 때 냉면을 먹고 심하게 배탈이 난 후로 냉면을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너무 신기했다.
집에서 임신 테스트기로 임신 사실을 확인한 후 종연은 갑자기 냉면이 너무 먹고 싶어서 손임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고 냉면을 사 오라고 부탁했던 터였다. 삼계탕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손임도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며 말했다.
“자기가 이렇게 냉면을 잘 먹을 줄이야… 먹고 싶을 때마다 얘기해. 계속 사다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