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이혼서류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살잖아요 19

백년손님 백년종년

by 사라최



# 시어머니 아들과의 이별


겨울의 끝에서 봄이 다가온 3월의 어느 날.. 종연은 행복이와 만났다.

많은 종류의 만남을 경험했지만 10달 동안 애지중지 품었다가 가슴으로 만난 행복이와의 만남은 그 자체로 눈부셨다.

종연의 출산 과정은 한 편의 다큐멘터리로도 제작 가능할 만큼 방대한 양의 희로애락이 녹아 있으나… 생략하겠다.

행복이와의 경이로운, 만남의 기쁨은 잠시…

임신으로 인해 24킬로가 불어버린 종연의 몸속에서 행복이는 단지 3. 6킬로만 들고 나온 덕분에 종연은 출산 후에도 꺼지지 않은 배와 내려가지 않는 몸무게로 인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악 아파요!! 아아악.. 으윽.”

주변에 누가 있건 신경도 안 쓰였다.

종연은 출산의 고통을 능가하는 젖몸살과 가슴 부근의 찌릿함으로 인해 계속 비명을 질렀고 젖 마사지 해주시는 간호사 죽빵을 힘껏 날리고 싶었다.

평화롭게 흔들의자에 앉아 아기와 행복하게 눈맞춤 하면서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모유 수유의 환상은 젖몸살이라는 최대 악질 복병을 만나면서 산산이 깨져버렸다.

조금이라도 늦게 모유를 유축하면 젖이 땡땡한 돌덩이가 되어서 젖과 함께 종연의 눈물도 같이 짜게 된다.

그래서 2시간마다 종연의 두 젖통에 모유가 찰 때 행복이에게 젖을 물리거나 유축기로 젖을 짜야 했다.

두 시간마다 말이다!!!

2시간 텀으로 모유수유를 하니 종연은 사람꼴이 아니라 젖이 쭉쭉 나오는 젖소가 된 기분이다.

10개월 만에 오통통한 돼지에서 벗어났더니 이제 젖소다…


그러나 종연은 행복이의 꼬물거리는 손가락과 발가락, 모유를 먹으며 오물거리는 입, 행복이에게서 나는 비릿하지만 큼큼한 냄새가 너무 좋았다.

10개월의 임신기간과 다큐멘터리, 인체의 신비 편을 방불케 하는 출산과정, 지금의 젖몸살과 , 여자로서 느끼는 신체적 상실감 정도는 가뿐히 넘길 수 있는 기쁨이었다.

역시 사랑은 논리적이지 않다.

종연은 헝클어진 머리에 물기라곤 전혀 없는 푸석한 얼굴을 한 채 젖을 물리고 있는 행복이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행복아. 사랑해. 우리에게 와줘서 고맙고 또 고마워.”


5월.. 손임은 이제 치타공으로 떠나야 한다.

종연네 모든 짐은 이삿짐으로 컨테이너에 실려 배를 타고 바다 건너서 2달 정도 후에 도착한다.

그로 인해 종연과 손임은 배로 부칠 짐을 정리해서 컨테이너에 보내 놓았고 신혼집도 전세금을 받고 정리했기에 치타공으로 떠나기 전까지 서울 시댁에서 머물게 되었다.

손임은 그렇게 한 달가량을 시댁에서 보내고 오늘이 떠나는 날인 것이다.

종연과 60일 갓 넘은 행복이는 손임을 먼저 보낸 뒤 2달 후 뒤따라 가게 되었다.

손임은 꼬물거리는 행복이와 아내 종연을 두고 한국을 떠나면서 두 달 동안이나 그들을 못 본다는 것에 속이 아렸다.

찔끔거리는 눈물을 참으며 공항버스를 타는 손임을 종연은 담담하게 배웅했다.

손임은 치타공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종연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자기야. 자기랑 행복이를 두고 치타공에 가려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네.

마음이 너무 무거워서 메일을 써본다. 괜히 가는 건가 싶기도 하고 생각이 많네.

자기 혼자 행복이 데리고 비행기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데 걱정이 한 바가지다.

눈에 밟힌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벌써부터 자기랑 행복이가 보고 싶네.

헤어질 때 나 쳐다보지도 못하고… 자기도 나랑 헤어져서 많이 힘들지?

행복이랑 씩씩하게 잘 있어. 2달 금방 가니 곧 만나자.

사랑하는 신랑 손임]

자… 여기까지는 손임의 시점이다. 종연의 시선으로 다시 보기 해보자.




종연은 신혼 때부터 미뤄왔던 짐 정리를 끝내고 종류별로 필요한 물건들을 분류해서 포장했다. 행복이를 데리고 짐 싸는 일은 장거리 경주와도 같아서 긴 호흡이 필요하다.

손임도 퇴근해서 함께 정리하곤 했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았다.

버릴 것을 정리하다가 행복이 젖을 물리고 물건을 포장하다가 행복이가 잠투정을 하면 재우러 들어가기를 무한 반복한 후에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짐 싸기의 호흡을 2주 만에 마무리했고 간단히 시댁에서 지낼 짐을 챙겨 시댁에 도착했다.

하지만…. 시댁에 온 손임은 짐을 내려놓자마자 티브이를 틀고 누웠다.

손임은 전 회사에서 맡은 업무를 마무리하는데 생각지 못한 문제들이 터지면서 퇴사처리가 늦춰지는 바람에 최근까지 야근을 했고 손임의 사정을 십분 이해했던 종연은 조리원 퇴소 후 꾸역꾸역 집안 일과 육아를 도맡아 했다.

종연은 효진쌤이 얘기했던 ‘육아는 지루한 하드코어’가 무슨 뜻인지 온몸으로 체험 중이다.

물론 산후 도우미 분도 2주간 종연과 행복이를 케어해 주셨고 친정 엄마와 어머님도 종종 오셨지만 혼자서는 울고 싸는 것 밖에 못하는 작은 생명을 종연 혼자 주도적으로 감당하기엔 책임감을 넘어 두려운 마음까지 들었다.

종연은 누구보다 행복이의 아빠와 육아를 함께 하고 싶었고 모든 것이 처음인 육아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며 마음속 두려움을 덜고 싶었지만 손임이 회사 일로 바쁜 탓에 육아의 기쁨과 고됨을 나눌 수 없었다. 손임도 종연의 고생과 애씀을 잘 알고 있었고 함께하지 못함에 속상해했다.

그러나…



시댁에 짐을 싸서 도착하자마자 손임은 으레 시댁에 오면 하는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종연은 육아로 인해 팔목과 허리에 통증이 가시지 않았고 수면부족이라 기미와 다크서클이 코 끝까지 내려왔지만 손임도 최근까지 이어진 회사 업무로 스트레스와 피곤이 쌓였겠다 생각되어 자고 있는 행복이를 방에 누이고 남편에게 별 말 하지 않은 채 가져온 짐들을 가족별로 분류하여 차곡차곡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자고 있던 행복이가 깨서 울기 시작했고 서둘러 젖을 먹인 후 남은 정리를 마치려고 손임에게 행복이를 건네 주려는데 손임의 코 고는 소리가 소파에서 울려 퍼졌다.

‘이런… 행복이 샤워시켜야 하는데… 오늘까지 내가 혼자 씻겨야겠다.’

종연은 한숨을 쉬며 행복이를 안고 일어났다.


그때 어머님은 잠든 손임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에구 우리 아들 고생이 많네. 많이 피곤했나 보구나… 들어가서 자라.”

오자마자 벌렁 드러누워 티브이를 보다 잠든 아들을 안쓰러워하다니…

오자마자 짐 정리하고 행복이 케어하는 며느리는 남의 딸이라 어머님께는 전혀 안중에 없었던 모양이다.

어머님은 아들의 이부자리를 봐주시고 종연과 함께 행복이를 씻겨 주셨다.

‘오늘은 오느라 피곤했을 테니 내가 봐준다. 어이구… 내일은 오늘과 다르겠지.’

하지만.. 한 달 동안 종연은 시댁식구들 삼시 세끼 준비와 행복이 돌보기까지 야무지게 하고 손임을 보냈다.

손임은 한 달 동안 종연의 부탁을 귀로 잘 듣고 입으로 매번 잘 대답해 주었을 뿐 움직여서 함께 하는 일은 손에 꼽았다.

손임을 보내며 종연은 손임의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여기까지가 종연의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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