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손님 백년종년
발코니와 창문 앞에서 울어대는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깨진 꽹과리 소리같이 귀를 후벼 판다.
일어나자마자 더위가 확 몰려왔고 종연은 까마귀 소리에 깼는지, 후끈거리는 열기 때문에 깼는지, 갸우뚱 거리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손임은 전날 갈아 놓은 건강 주스를 들고 이미 출근한 상태다.
한국 여름과 비교할 수 없는 습도 90프로의 물기 꽉 찬 치타공의 여름은 에어컨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더웠기에 종연은 밤새 에어컨을 껐다 켰다 하면서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종연네 집은 한국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쿨시’라는 지역으로 현지 부자들도 많이 살고 있는, 나름 부촌이었지만 깔끔하고 편리한 한국과 비교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곳에서도 시간은 흘러 흘러 행복이는 젖을 뗐고 여기저기 기어 다니며 손에 잡히는 건 닥치는 대로 입에 넣어서 무엇인지 확인하는 시기가 왔다.
한국이었으면 호기심 넘치는 행복이와 함께 문화 센터도 다니고 주말엔 아빠와 공원이나 외곽으로 자주 다녔겠지만 교통이 혼잡하고 먼지가 많은 치타공에서는 불가능했기에 종연네는 나들이를 포기한 지 오래다.
게다가 이곳은 개인 차를 소지한 한국인이 거의 없을 정도로 도로 상황이 위험했다.
대부분의 주재원들은 회사에서 기사와 함께 제공해 주는 차량으로 출퇴근을 했고 각 가정의 아줌마들도 기사 딸린 차를 제공받아 마트나 학교를 갈 때 사용했다.
중앙선을 넘나드는 CNG(엔진이 달린 바퀴 세 개의 작은 자동차)와 릭샤(인력거와 비슷한 자전거)는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도로의 무법자인 데다 서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교통수단이기에 치타공 교통 체증의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종연은 행복이에게 간단히 이유식을 먹인 다음 능숙하게 기저귀를 갈고 시원한 레이스 외출복을 입힌 후 행복이가 좋아하는 작은 별 노래를 불러주며 유모차에 태웠다.
종연과 행복이는 땀을 닦으며 문화센터나 공원 대신 종연이 치타공에서 사귄 친구네 집으로 놀러 갔다.
지성 엄마는 같은 쿨시에 살고 있어서 종연과 행복이는 거의 매일 아침 먹고 지성 엄마네 출근한다.
6살 아들 지성이와 2살 딸 지수를 키우고 있는 지성엄마는 종연과 동갑내기 친구로 종연이의 치타공 생활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은인이다.
지성 엄마는 지금 종연네 집에 있는 현지 도우미(현지어로 ‘아야’라고 부른다)를 구해주고 소통이 안 되는 종연 대신 벵골어로 종연네 집안일을 일일이 가르쳐 주었다.
또한 현지 마트에서 사야 할 것과 사지 말아야 할 것들을 일러주었고 마트 직원들과의 소통도 함께 해주었으며 방글라데시의 전반적인 문화나 하지 말아야 할 행동, 언행들도 가르쳐 주었다.
지성 엄마는 종연에겐 동갑내기 친구지만 치타공 생활 5년 차 베테랑이었고 새내기 치타공댁에겐 그저 신이었다.
종연의 현지 적응을 도운 것은 물론 행복이의 호기심과 성장에 따른 요구들도 딸 지수와 함께 여러 가지 교구와 책을 공유함으로 채워주었다.
행복이는 친절한 지수언니와 함께 방에서 까르르까르르 매우 즐거운 모양새다.
종연은 지성 엄마가 시원하게 말아준 히비스커스 티를 한 모금 마시며 이곳에 처음 왔을 때의 충격적인 모습을 떠올렸다. 치타공에 온 지도 벌써 5개월째다.
이곳에 처음 도착해서 손임이 구해 놓은 집에 도착한 종연은 실망스러운 집 상태에 한동안 캐리어를 풀어놓지 못했다.
사진과는 달리 조명은 매우 어두웠고 벽지 대신 흰색 페인트를 칠해 놓은 벽 군데군데에는 포슬포슬 곰팡이가 피어 있었으며 발코니는 방마다 있었는데 모두 두께가 1센티 정도 되는 먼지가 곱게 쌓여 있었다.
게다가 컨테이너에 실은 짐들은 얼마 전에 도착해서 거실과 3개 방 세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으며 부엌과 화장실에는 모기떼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손임이 짐을 정리한다고 노력한 듯했으나 종연은 한숨만 푹 푹 나왔다.
이뿐이랴.. 치타공 공항 상태나 공항에서 집까지 올 때 겪은 일까지 얘기하면 책 한 권 뚝딱이다.
겨우 행복이와 종연부부가 누울 침대방을 치우고 잠을 청했었다.
다음날 손임이 출근하고 지성 엄마가 종연네 찾아왔을 때 종연은 일면식도 없는 그녀를 보자마자 눈물만 뚝뚝 흘렸다.
손임이 회사 동료에게 부탁해서 종연과 또래인 동료 부인에게 귀띔해 두었던 모양이다.
지성 엄마는 먼저 아야(방글라데시 도우미)부터 구해주고 청소와 짐 정리까지 발 벗고 도와줬다.
처음 만난 날 지성 엄마는 갓 담은 깍두기를 가지고 방문했었다.
시간이 제법 흐른 후에도 종연이 그때 치타공에서 먹었던 액젓 향 가득한 깍두기의 맛이 잊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