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손님 백년종년
종연은 크리스천이다.
사실 종연은 배우자 기도제목 1순위가 크리스천 배우자, 1순위에서 별첨으로 배우자의 부모님도 교회를 다니시는 분들이기를 소망했을 정도로 신앙에 진심이었다.
뭐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주님은 종연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손임은 모태 신앙이었고 시부모님도 교회를 다니시니 말이다.
하지만 종연은 좀 더 구체적으로 기도하지 못한 자신을 탓했다.
어머님께서 주님 말고 한국적인 미신과 조상신도 함께 섬길 줄은 몰랐으니 말이다.
어찌 되었든 종연은 치타공에 오자마자 한인 교회를 찾았고 주일예배를 드리고 기도생활을 하며 신앙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애썼다.
방글라데시는 무슬림 국가이기에 벵골인들 중에서 크리스천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그로 인해 매체로 접했던 급진 무슬림 교도들의 기도교인 박해가 있을까 염려했지만 걱정과 달리 이들은 외국인들에게 호의적이고 온순했으며 외국인들의 종교 생활을 존중했다.
일반적으로 여타 국가는 일요일이 휴일이지만 무슬림 국가인 방글라데시나 인도, 파키스탄 등등은 금요일이 휴일이다. 중동지역이 대부분 그렇다.
따라서 손임의 회사도 금요일에 쉬고 교회 예배도 금요일에 드렸다.
종연은 한국의 교회를 염두에 두고 치타공 한인교회를 방문한 탓에 적잖이 놀랐다.
한인교회는 한 채의 성당 건물을 생각나게 하는 높은 아치형 천장에 철심으로 커다란 선풍기가 군데군데 매달려 있는 단층 건물이다.
광이 나는 검정 페인트칠을 한 견고하고 투박한 입구로 들어가면 바로 직사각형 공간의 꽤 큰 예배당이 펼쳐진다.
높은 건물 양쪽에는 스테인드 글라스로 형형색색 꾸며놓은 창문이 늘어져 있었고 앞쪽에는 목사님께서 설교하시는 강대상이 보였다.
전체적으로 정감 있고 포근한 기운이 들었지만 올드하고 촌스럽기도 했다.
무엇보다 찌는 듯이 덥고 습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선풍기에만 의지해 드리는 예배는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목사님은 설교가 끝나면 땀으로 폭 젖어 있었다.
종연은 그제야 최상의 컨디션에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며 급진 무슬림들의 박해를 걱정하지 않고 편하게 드렸던 한국에서의 예배에 감사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무슬림 국가에 주재원으로 와서 20명 남짓 모이는 교인들과 더위를 사이좋게 먹어가며 함께 교제하고 삶을 나누는 예배의 시간은 종연에게 귀한 축복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신앙생활과는 별개로 종연과 손임은 자주 어긋났다.
손임은 도로의 반 이상을 점령한 릭샤와 툭툭이 사이로 매연을 뿜어 대는 오래된 세단과 100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폐차 직전의 버스들로 꽉 막힌 도로를 달린다.
2시간이 넘게 걸려서 회사에 도착하면 이미 지쳐있다.
게다가 현지 직원들을 통솔하며 해외 영업부를 담당하는 손임은 그들만의 일하는 방식에 미쳐가고 있었다.
문화의 차이겠지만 한국 직장인은 빠른 일처리와 책임감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이곳 사람들은 생각보다 일처리가 느긋했고 소속감이 주는 책임감보다는 개인을 우선하는 분위기다.
그로 인해 조금만 방심하면 계획된 일정에 타격이 심했고 질적인 업무 실적이 떨어지기 일쑤였다.
손임은 늘 2시간에 걸쳐 집에 오면 지치고 짜증이 난 상태였으며 습관적으로 독설을 했다.
“아.. 여기 애들은 너무 게으르고 멍청해…”
종연은 홀로 가족들을 위해 일하는 손임이 안쓰러웠다.
“자기야. 고생이 많네. 조금만 버티면 현지 직원들과 합이 잘 맞춰질 거야. 힘내..”
종연은 자신이 남편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좋은 아내이길 바랐다.
하지만 종연도 치타공으로 오게 되면서 휴직을 퇴직으로 변경한 후 경력 단절에 대한 아쉬움이 컸고 출산, 퇴직과 동시에 맞벌이에서 외벌이 가정으로 바뀐 것에 대한 부담이 컸다.
열악한 환경에서 고되게 일하고 있는 손임을 위해 이곳에서 종연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가족을 잘 먹이는 것이었고 종연은 한국에서 바리바리 챙겨 보낸 한국 부식들을 이용해 음식을 만들며 행복이를 양육했고 손임을 내조했다.
행복이를 돌보며 낯선 땅에서 적응하는 것은 수월하지 않았지만 종연은 그렇게 한동안 손임에게 투정 부리지 않고 속으로 삭였다. 그렇게 하고 싶었다.
이것은 외벌이 가장을 향한 아내의 배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못 본 척하고 덮는다고 종연의 고달픔이 가벼워질까?
종연은 지쳐갔고 행복이에게 그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평소와 별로 다르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갈수록 자기주장이 확실해지고 요구하는 것도 많아진 행복이에게 종연은 또 소리를 질렀다.
“그만!!!! 엄마, 이제 못해!!! 한 번만 더 하고 그만하기로 했잖아.. 그만.. 그만하라고!!!”
종연은 거실에서 행복이와 졸음을 참아가며 퍼즐 맞추기를 3번 연달아 한 다음 마지막 조각을 끼우고 끝내려는 찰나!!! 다시 하려고 퍼즐판을 뒤집어엎어 버리는 행복이에게 핏대를 세우고 발을 구르며 화를 낸 것이다.
부엌과 집 안에 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자기 차례를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 종연의 화는 용암이 되어 목에서 뿐만 아니라 온몸에서 켜켜이 터져 나왔다.
행복이는 엄마의 역정에 움찔 놀라 울음을 터트렸고 종연은 또 화를 참지 못하고 터트린 자신을 견딜 수 없어서 행복이를 다그쳤다.
“왜 엄마를 이렇게 힘들게 해!!! 한 번만 더 하자고 했잖아!! 왜 약속을 안 지켜! 왜!! 왜!!!!! 엄마는 이거 말고도 할 일이 산더미라고!!!!”
행복이는 이제 겨우 돌이 지났을 뿐이지만 종연은 자신이 이렇게 화가 난 건 다 그녀 때문이라면서 악다구니를 썼다.
한동안 소리를 지르다가 종연의 동공이 갑자기 빙의했던 악마가 빠져나간 듯 커졌다.
미친 건가… 종연은 땀과 눈물로 범벅인 행복이를 와락 껴안고 이 세상에 ‘미안해’란 단어만 존재하는 듯 연신 ‘미안해. 미안해.’를 토해냈다.
종연은 오늘만 몇 번째 엑소시즘을 하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