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이혼서류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살잖아요 23

백년손님 백년종년

by 사라최


누구나 이혼서류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살잖아요 22

>> 어긋나는 부부... 에 이어서...




“또 늦었네. 왜 이렇게 늑장이야. 맨날 자기 때문에 교회 늦잖아.

5분 전에는 출발했어야 한다고.”

또 시작이다.

손임은 아침에 일어나서 가뿐하게 본인만 준비한 후 종연이 차려준 아침밥을 먹고 소파에 앉아서 동동거리는 종연을 다그쳤다.

“내가 자기랑 행복이 아침도 준비하고 행복이 먹인 후에 화장하고 행복이 이유식 담아서 기저귀랑 여벌 옷들 다 챙기려면 정말 숨 쉴 시간도 없다고요.

자기는 느지막이 일어나서 겨우 씻고 차려주는 밥 먹으면 끝나잖아요. 나 애쓰는 거 안 보여요?

자기가 행복이 먹이는 걸 도와주거나 옷 입히는 것만 해 줘도 우린 제시간에 나갈 수 있어요.”

그러나 손임은 종연이 이리저리 오가며 바쁘게 준비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오직 자기 자신과 시계만 보일 뿐이다.

손임은 종연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필요를 채워줄 생각이 없었다.

“행복이 옷 입히는 건 자기가 잘하잖아. 난 행복이 팔 빠질까 봐 도저히 못 입히겠어.

이유식도 너무 많이 흘리니까 오래 걸리고 내가 감당이 안돼서 그렇지..

내가 일부러 안 하는 줄 알아? 잔소리 좀 그만해.”

이 사람이 종연을 너무 사랑해서 그녀 없으면 확 죽어 버릴 거라고 고백했던 그 남자가 맞는 걸까?

“내가 무슨 잔소리를 했다고 그래요?

자기가 먼저 자꾸 늦는다고 투덜거렸잖아요.”

손임은 더 이상 말하기 싫어서 그가 잘하는 포지션을 준비했다.

무시하고 침묵하기!

종연은 손임의 침묵 기술이 발동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제 더 이상 이야기해도 소용없음을 깨닫고 씩씩거렸다.

이렇게 항상 같은 패턴으로 종연과 손임은 어긋났다.

손임은 투덜거리고 종연은 구구절절 하소연했고 상처가 지나간 자리의 끝에는 항상 침묵이 도사리고 있었다.



>> 둘째

종연은 임신 테스트기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희미하던 두 번째 줄이 점점 선명해지고 있다.


종연은 활자를 그림에서 글로 인식한 6살 무렵부터 책을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빨간 머리 앤과 해리포터 시리즈는 생각날 때마다 다시 읽곤 했다.

그녀는 항상 앤의 7남매가 무지개 골짜기에서 여러 가지 사건, 사고를 일으키며 성장하는 스토리에 자신의 아이들을 이입시키는 것을 좋아했고 사랑과 배려, 높은 자존감으로 서로의 상처를 보듬기도 하고 힘들다고 서로에게 스스럼없이 기댈 줄도 아는 이 아이들을 너무나 가지고 싶었다.

또한 해리의 절친 론 위즐리 가의 7남매를 보면서 인생 참 흥미진진하게 바람 잘날 없이 우당탕거리는 모습들을 많이 동경했다.

자연스레 종연은 결혼해서 많은 아이들을 낳고 싶어 했고 둘째 소식이 느닷없이 찾아왔을 때 손임과 종연은 마냥 기뻤다.

행복이를 임신했을 때의 불편함, 출산할 때의 고통, 젖몸살과 육아의 수고는 새로운 아기의 존재 앞에서 기억의 힘을 잃었다.

종연은 현지 병원에서 임신을 확인한 후 손임에게 선전 포고했다.

“나 이제 둘째 가졌으니 지금처럼 자기만 생각하고 행동하면 안 돼. 초기에는 유산확률이 높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했어."

평소 같았으면 언제 자기만 생각했냐며 빈정거렸을 테지만 지금 상황에서 종연에게 그러면 안 된다는 걸 눈치 없는 손임도 알았다.


하지만 손임은 자신이 직접 임신해 본 적도 출산해 본 적도 없는 몸뚱이다.

손임은 임신 과정과 출산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고단한 일인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기 때문에 또다시 찾아온 종연의 임신 과정을 함께 잘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기야 당사지인 종연 또한 모든 수고로움을 새까맣게 잊고 둘째를 가졌으니 말 다했다.


종연은 둘째를 가지고서야 첫 임신 때 정말 행복한 임신 기간이었음을 알았다.

하지만 임신 경력직답게 종연은 나름 뱃속의 아기와 첫째 행복이를 함께 돌보며 잘 버텨냈다.

책을 좋아하는 행복이는 항상 책을 가득 들고 와서 읽어 달라고 했고 한번 꽂힌 책은 스무 번 넘게 읽기도 했다.

종연은 새삼 책을 좋아했던 어린 시절, 맘에 닿는 책을 집어 들고 아장아장 엄마에게 걸어갔던 기억이 났다.

엄마는 항상 일하고 들어오셔서 요리하시느라, 집안일하시느라 바쁘셨지만 언제나 종연의 눈을 바라보며 책을 읽어 주셨다.

그리고 지금 종연은 내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다.

뱃속 아기도 함께 리듬감 있는 엄마의 목소리로 동화를 느낀다.

행복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은 [안아주세요]. 뱃속 둘째도 반응이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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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아줘요 안아줘요, 안아주세요. 안겼네 안겼네 꼬옥 안겼네.

아이 좋아 엄마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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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졸리다… 의욕적인 마음과 달리 임신 중인 종연은 너무 졸리다. 졸려… 졸리다.. 아함…

툭…!!! 책을 떨어트렸다. 행복이는 책으로 호되게 이마를 맞아서인지, 다음 내용을 못 들어서인지.. 서럽게 울고 있다.

벌써 세 번째다. 행복아 미안해~


배가 제법 부른 종연은 한국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느라 바쁘다. 벌써 임신 7개월이라니…

종연은 비행기 티켓팅을 할 때 비즈니스석을 원해서 은근히 손임에게 자신의 바람을 흘렸더랬다.

하지만 가성비를 많이 따지는 손임은 고민했고 눈치 빠른 종연은 바로 자신의 바람을 철회했다.

종연은 두 돌 갓 지난 엄마 바라기 행복이와 함께 무겁고 퉁퉁 부은 몸으로 이코노미를 타야 한다는 사실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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