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이혼서류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살잖아요 28

백년손님 백년종년

by 사라최


>> 시부모님의 치타공 한 달 살기



치타공에서는 잭 프룻이 단단한 가지에서 푸릇푸릇 열리기 시작하면 10월~2월까지의 치타공 쾌적한 겨울이 지나가고 쨍한 여름이 시작되었음을 알게 된다.

보통 다 자라는데 수개월이 걸리는데 가장 크게 열매가 자라나면 그때는 혹서기 중 가장 맹렬한 혹서기다.

치타공에서 잭푸룻이 손가락 한마디에서 50킬로를 육박할 정도로 제일 크게 영글었을 때 종연의 시부모님은 둘째 아들네서 한 달간 지내시겠다며 치타공 공항에 도착했다.

손임은 물론 행복이 기쁨이 사랑이는 치타공까지 오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온몸으로 환영했다.

더위가 절정인 치타공에서 아버님은 하루 24시간을 에어컨에 의지하셨고 동남아의 물기 가득한 더위로 인해 밖에 나가시는 것도 삼가셨다.

어머님은 아들 가족이 사는 치타공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어디든 다니고 싶어 하셨다.

아침에 행복이와 기쁨이 학교에 데려다 줄 때도 함께 하셨고 마트나 재래시장 갈 때도 종연과 동행했다.

손임은 출근을 해야 했기에 종연은 폭염 속에서 자주 반나절 이상을 치타공 곳곳에 어머님을 모시고 다녔다.

치타공의 가장 큰 규모의 레아주덴 재래시장은 야채코너, 육류등을 다루는 곳이 먼저 등장하는데 한여름에 가면 매캐한 커리 볶는 냄새와 코를 찌르는 땀내, 암내가 진동을 한다.

수산 코너에 가면 파리떼가 생선 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고 바닥은 생선에서 나온 비릿한 물과 생선 내장 쓰레기들이 섞여 발 디딜 곳이 애매했다.

곳곳에 여름용 스카프나 수건을 팔기도 했고 각종 잡화들을 파는 곳과 현지에서 쓰는 알루미늄 식기들이 늘어선 곳도 보인다.



“자기야. 쉬는 날 어머님 모시고 재래시장 다녀와요. 난 이렇게 최고로 더운 날 레아주덴 못 가.

냄새 때문에 토할 수도 있어.”

종연은 손임이 쉬는 날 어머님과 재래시장에 같이 가길 원했으나 손임은 단칼에 거절했다.

“엄마도 참.. 거길 왜 가.

얼마나 비 위생적인데..

난 안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

손임의 단호한 거절에 종연은 남편이 출근한 뒤 어머님을 모시고 재래시장을 방문했다.

어머님은 소싯적 자주 다녔던 한국 오일장이 생각나신다며 올나(방글라식 스카프)와 알루미늄 그릇들을 쇼핑하며 제법 흥이 오르신 모양이다.

어머님께서 한 시간 넘게 구경하시는 와중에 종연은 계속 입과 코를 막고 다녔다.

겨울에만 겨우 한번 올까 말까 한 치타공 재래시장을 한 여름에 이렇게 오래 쇼핑하다니..

종연은 쇼크로 쓰러질 것 같아서 어머님께 말씀드렸다.

“어머님. 이제 가실까요? 제가 너무 힘들어서 더 못 있겠어요.”

하지만 종연 어머님은 쇼핑을 끝낼 생각이 없으셨다.

“어머나 여기가 뭐가 어때서 그래.

너도 참 유난이다.

이나라 사람들한테 미안하게 왜 코를 막고 다니니?

옛날엔 우리나라도 다 이렇게 장사하고 쇼핑하고 그랬어.”

종연은 손임이랑 왔어도 어머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생각했다.

정작 아들은 비위생적이라고 절대 못 간다고 했는데 말이다.

종연은 주르륵 흐르는 땀과 풀려가는 다리를 부여잡고 겨우 어머님을 모시고 나왔다.

어머님은 더 쇼핑하고 싶었지만 양껏 둘러보지 못하심에 잔뜩 속상해하셨다.

아들도 안 모시고 다니려는 걸 며느리가 함께 했는데 왠지 종연은 미운털만 박힌 기분이다.

‘한 달 금방 간다… 좀만 버티자. 종연아..’



매주 목요일 종연과 손임은 금요 예배를 위해 찬양연습을 한다.

찬양팀 언니, 오빠들을 잘 따르는 종연네 삼 남매는 항상 찬양 연습에 동행한다.

손임은 퇴근 후 바로 합류하기 때문에 연습이 끝나고 집에서 늦은 저녁 식사를 하곤 했다.

문제의 목요일…

종연은 어머님과 아버님 이른 저녁밥을 차려드리고 손임과 찬양 연습을 한 뒤 집에 도착해서 급하게 아이들을 챙겼다.

늦은 저녁이라 아이들은 잠들기 직전이었고 잠드는 골든 타임을 놓치면 삼 남매는 언제 잠이 들지 모르기에 종연은 졸려하는 아이들을 재우기 위해 분주하게 아이들을 씻기고 있었다.

그때 화장실 문이 열리고 어머님께서 빼꼼히 고개를 내밀며 말씀하셨다.

“우리 손임이 아직 밥 안 차려줬니?

손임이 배고플 텐데.. 얼른 차려줘라.”

종연은 밖에서 다 씻은 아이들을 수건으로 닦이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손임을 향해 급하게 말하면서 어머님께 대답했다.

“자기야 지금 사랑이 나가요. 닦고 잠옷 입혀!!

네 어머님 곧 차릴게요.”

하지만 3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어머님은 다시 오셨다.

“아니 지금이 몇 신데 아직까지 저녁을 못 먹게 두니.

애들보다 네 서방을 더 챙겨야지..

난 네 아버님 배고프시기 전에 항상 밥 차려서 대령했다.”

종연은 씻기는 속도를 올렸다. 하지만 어머님은 다시 오셨다.

“네 아버님께서 저녁에 먹은 돼지고기 고추장찌개 맛있다고 하더라.

그거 챙겨놨지? 얼른 손임이 밥 챙겨줘라.”

종연은 어머님의 재촉에 기쁨이를 씻기다가 나와서 허겁지겁 밥을 차렸다.

이렇게 까지 아들 밥에 목숨을 걸 일인가?

종연도 아직까지 밥을 못 먹었는데 어머님은 알고 계실까?

한 끼 정도 늦게 먹으면 전과 기록이 생길 것처럼 왜 저렇게 난리를 치시는 걸까?

하기야.. 죽은 사람들한테도 복 받으려고 제삿밥을 차려주시니 말 다했다.

종연은 며느리를 대하는 어머님의 인격에 또다시 실망했다.

종연에게도 마지노선이라는 게 있다.

종연은 데드라인을 자꾸 넘어가는 어머님의 모습에서 어렴풋이 자신의 한계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감했다.

한 달 후 시부모님이 한국으로 돌아가시고 종연은 어머님이 내려치신 교묘한 상처에 한동안 힘들어했다.


그들에게 종연은 자신의 손자, 손녀를 케어하는 보모와 아들의 밥을 차려주고 살림하는 식모일 뿐이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이번 한 달 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종연은 그들에게 처음부터 가족이었던 적이 없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종연은 누가 뭐래도 행복이와 기쁨이, 사랑이의 엄마이고 손임의 배우자다.

보모와 식모가 아니란 말이다.

변하지 않는 이 명제를 두고 종연은 자기 자리를 자신이 찾아야겠다고 다짐 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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