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손님 백년종년
막내 사랑이가 두 돌이 막 지났을 무렵 종연의 친정아빠는 폐암 4기 진단을 받았다.
치타공에 있는 종연은 당장이라도 한국에 날아가고 싶었지만 그저 걱정만 할 뿐이다.
병원비와 검사비는 남동생과 여동생이 종연과 함께 감당하고 있었고 고모 덕분에 암보험도 든든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 이란 병은 가산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벌레와도 같았다.
검사비와 병원 통원치료비, 항암과 방사선 치료 등등 암환자 가족이 되어보니 ‘암’이란 질병에 ‘이렇게 많은 경로로 돈이 나가는구나’ 새삼 알게 되었다.
손임은 몇십에서 몇 백에 이르는 검사비와 수술비를 잘 감당해 주었고 종연은 남편과 함께 애달픔을 나눌 수 있어 감사했다.
종연의 아빠는 1차 수술 후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폐암은 재발 수치가 높기에 마음을 붙들고 있어야 한다.
아빠의 암 발병 1년 차에 한국에 다녀온 뒤 종연은 한국에서 오는 전화벨 소리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드는 나쁜 생각들은 종연의 밤잠을 설치게 했다.
어느 이른 아침.. 보이스 톡이 울렸다.
종연은 폭발하는 예민함을 누르고 여동생과 통화한 후 주저앉았다.
마른 얼굴에 계속 눈물이 흘렀다.
행복이는 우는 엄마를 보고 같이 울고, 우는 행복이를 보고 기쁨이도 훌쩍거렸다.
아빠는 폐암이 재발했고 재발된 암세포의 전이는 가족들의 속도 모른 채 급속히 퍼져갔다.
치타공에 잭푸릇이 조금씩 영글어 가고 있는 4월의 어느 날..
한국에서 온 보이스톡 저 편에서 종연 여동생의 멍든 목소리가 울렸다.
“언니.. 아빠가 이제 곧 떠나실 것 같아.
언니가 와야 아빠를 보내 드리지.. 어서 와 한국으로…”
나중에 종연이 소식을 듣고 한국으로 가는 길 곳곳에서 찍은 사진들을 다시 보았을 때
아이들과 찍은 사진 속 종연은 그녀만이 알 수 있는 웃는 얼굴 깊이 비쩍 마른 슬픔이 고스란히 보였다.
종연은 호스피스 병동에 누워 계신 아빠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아빠. 큰딸 왔어. 나 왔으니 이제 마음 푹 놓으셔.”
종연의 아빠는 어린아이처럼 종연을 반겼다.
아빠의 반가움은 먼 길을 떠나기 전 딸을 볼 수 있게 된 안도감이었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종연과 동생들은 아빠 주변에서 아빠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일상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고 다들 각자의 언어로 담담하게 작별인사를 했다.
손임과 세 아이들과도 이별을 나눈 다음날 아빠는 의식을 잃으시고 산소마스크를 끼셨다.
마치 종연이 오기를 기다리신 듯. 종연을 보자 기다림을 툭 내려놓으신 것 같았다.
의식을 잃으시고 이틀 뒤 아빠가 마지막 숨을 내쉬고 사망 선고를 받는 순간..
병실 방에 있는 모두가 절절하게 헤어짐의 슬픔을 쏟아냈다.
종연은 자신과 가족의 곁을 떠나가는 아빠를 뿌연 눈으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