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이혼서류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살잖아요 30

백년손님 백년종년

by 사라최


>> ‘착한 아내 증후군’의 뿌리



종연 부모님은 같은 회사에 다니셨고 항상 퇴근이 늦으셨다.

장녀인 종연은 그런 부모님에게 의지가 되는 존재였고 그녀도 곧잘 ‘살림 밑천’이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그 역할을 잘 감당했다.

종연의 아빠는 여씨 집안의 금쪽같은 3대 독자셨고 어려서부터 ‘진자리 마른자리’, ‘금이야 옥이야’ 대접을 받으면서 자라온 탓에 엄마가 항상 아빠를 모시며 지냈다.

어린 종연이가 보기에도 엄마는 아빠의 배우자가 아니라 보호자이자 주인을 섬기는 종이었다.

아빠는 종연이 어릴 때부터 항상 말씀하셨다.

“너희 엄마를 봐라.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지 않니.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서 뜨끈하게 아침 차려내지.

같이 퇴근하면 집안일 다 해놓고 남편인 아빠 출근 준비까지 해놓지.

언제나 여성스럽고 순종적이지.

엄마 같은 아내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여자가 남자한테 사랑받고 사는 거야.”

아빠는 마치 엄마처럼 하지 않으면 나쁜 아내인 것처럼 말씀하셨다.

그리고 아빠의 이런 말들은 종연에게 스며들 듯 가스 라이팅이 되었다.

후에 사춘기에 접어든 종연은 보수적인 아빠의 사고방식과, 딸들에게 엄마의 종노릇을 칭찬하는 남존여비 유교적 마인드가 치가 떨리게 싫었다.

‘남존여비’ 사상과 쌍벽을 이루는 ‘장유유서’도 종연에겐 쓰레기 같은 사상이었다.

여씨 집안 3대 독자인 아빠는 남자로서, 어른으로서 모든 권위를 가진 채 장녀 종연과 항상 대립했다.

“왜요? 여자들이 왜 아빠가 말한 대로 살아야 해요? 여자가 무슨 종이예요? 하녀냐고요?”

그러면 어김없이 아빠의 호통소리가 집안에 메아리쳤다.

“어디 아빠한테 말대꾸야? 그냥 ‘네’ 하면 되지 그게 그렇게 어려워?”

종연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네’ 이외의 말은 왜 모두 ‘말대꾸’로 귀결되는가?

마치 아내의 (단번에 듣지 않음으로 인한) 반복적인 부탁이 ‘바가지 긁는다’라는 끔찍한 말로 몰아세워지는 것 같이 말이다.

“말대꾸가 아니라 물어보는 거잖아요.

난 정말 이상해요.

왜 결혼하기도 전부터 여자라서 안 되는 게 많고 여자라서 해야 할 것도 많냐고요?

온갖 재주는 곰이 부리는데 가만히 앉아서 왕서방이 공치사하는 것과 뭐가 달라요?”

종연의 아빠는 말문이 막혔다.

그럴 때 으레 쓰는 스킬이 있다. ‘아 몰라’ 기술!

“내가 어떻게 알아?

옛날부터 다 그러고 살았지.

이유가 어디 있어?

너처럼 꼬박꼬박 따지고 드는 여자들 피곤하다.

그저 조용히 어른이 말하면 순종하면서 지내.”

항상 이런 식이다.

간혹 종연이 긴 호흡으로 티키타카 아빠 말을 받아 칠 때면 고성과 폭력으로 집 안이 어지러웠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가족들은 하나같이 종연을 질책했다.

극성스럽고, 버릇없고, 주류를 역행하고, 반항심이 강하며, 기가 너무 세서 종연으로 인해 집안 분위기를 망친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항상 말했다.

“바뀌지 않는 아빠를 왜 자꾸 바꾸려 드니?

종연아. 너만 조용하면 돼.”

비록 아빠와의 관계가 특별한 계기로 회복되고 지나온 어색함이 풀렸지만 종연의 인생에 부모님과 같은 부부관계는 종연의 부부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종연은 시댁에서 혼자 일을 떠안고 분주해도 부당하다 느낄 뿐 행동하지 않았으며 남편이 집안일과 아이 셋의 육아를 종연에게 떠 넘길 때도 그저 몇 번의 타박만 했을 뿐이다.

종연의 내면 깊숙한 곳에 아빠가 말한 종연 엄마의 ‘착한 아내상’이 가스라이팅되어 자리 잡고 있음을 종연은 알고 있었다.

종연은 착한 며느리와 착한 아내가 되고 싶었고 그렇게 되려면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축소해야 함을 직감했던 것이다.

아빠에게 반항하고 말대꾸 함으로 집 안의 천덕꾸러기가 된 것처럼 결혼해서도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아빠의 죽음을 마주한 종연은 이제 착한 아내 타이틀도 아빠와 함께 장례 치러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빠의 장례식이 끝나고 손임은 바로 치타공 회사로 복귀했고 종연은 엄마를 모시고 남원 집에서 아빠의 유품을 정리했다.

한 달 후 정기 휴가를 받고 손임이 남원으로 오는 날 종연과 통화했다.

“자기야 오늘 엄마도 같이 남원으로 갈 거야.”

“어머님이요? 어머님 오시면 내가 신경 써야 하잖아요.”

“신경 쓸 필요 없어. 나 혼자 가기 심심해서 내려가면서 여기저기 구경하려고.”

종연은 이런 상황에서 왜 그러면 안 되는지에 대해 상식을 풀어서 설명을 하려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직 아빠 돌아가시고 49제도 안 지났어요.

우리 가족들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다고요.

맏사위인 자기도 빨리 와서 장례식 이후에 같이 유품 정리할 생각을 해야지.

내려오면서 심심하니까 어머님이랑 놀면서 오겠다니요?

“진짜 신경 쓸 필요 없다니까? 처가댁에서 못 지내면 숙소 구해드리면 되지.”

종연은 답답했다.

숙소에 계신 어머님께 손임 대신 이것저것 챙겨드릴 종연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절대 안돼요. 그럴 거면 그냥 자기도 오지 마요.”

결국 손임은 혼자 왔다.

종연은 간혹 시댁에 관련해 무뇌아처럼 행동하는 손임에게 질릴 지경이다.

손임은 그렇다 쳐도 어머님은 무슨 생각으로 얼마 전에 장인어른의 상을 치른 아들과 같이 처가댁에 내려오시겠다는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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