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이혼서류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살잖아요 31

백년손님 백년종년

by 사라최


>> 도망자 남편의 최후



행복이와 기쁨이는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들떠 있다.

오늘 새로 이사 온 가정의 두 자매가 종연네 집에서 슬립 오버를 하기 때문이다.

사랑이도 누나들이 떠는 호들갑에 장단 맞춰 같이 정신이 없다.

이틀 전에도 만났지만 아이들은 언제나 처음 만난 것처럼 에너지를 쏟아서 논다.

종연이 아이들 간식과 저녁 준비를 위해 부엌에서 분주할 때 손임이 부엌으로 들어와 종연에게 소식을 전했다.

“자기야 방금 김 차장이 온다는데 집에 만들어 놓은 빵이 있어?”

김차장은 태국에 유학차 가족을 보내 놓고 홀로 치타공 생활을 하시는 분이다.

금요일마다 종종 손임네 집에서 티타임을 하는데 오늘 시간이 되나 보다.

종연은 바쁜 종연을 배려해 손임 선에서 이번 방문을 거절해 주길 바랐지만 이미 늦었다.

“오늘 아이들 와서 내가 좀 바쁜데…. 알았어요.

내가 빨리 카스텔라 만들 테니까 자기가 커피는 책임지고 내려놔요.”

손임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잘 준비해 놓을게.”

치타공의 빵 만들기 전문가 종연은 아이들 간식을 준비하다가 서둘러 모카 카스텔라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손임이 계속 부엌문을 열고 종연에게 물어봤다.

“자기야. 커피 메이커는 어디 있어?”

“어떤 원두를 넣어야 해? 종류가 많은데.. 가루가 있고 원두콩이 있는 게 있어.”

“자기야 물을 넣는데 다른 쪽으로 물이 빠지네. 어느 쪽으로 물을 넣어야 하는 거야?”

“커피잔은 내가 알아서 꺼낼까?”

종연은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손임에게 알려줬다.

집에 손님이 왔을 때 하나부터 열까지 종연이 준비했던 것을 손임이 하려니 손임은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김차장과 손임 부부는 자녀 유학 문제와 미래 거취 문제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녁 시간이 되었다.

“김차장.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우리 집에서 저녁 먹고 가.”

종연은 마음속으로 깊은 한숨 삼키고 말했다.

“그래요 차장님. 식사하고 가세요.”

김차장은 거실 밖에 네댓 명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놀고 있는 이 집에서 식사를 하고 가도 되는지 고민했다.

그렇지 않아도 방문했을 때 아이들 손님이 있어 놀랐던 터였다.

“형수님이 너무 고생스럽겠네요. 안 주셔도 되는데… 그럼 간단히 먹고 가겠습니다.”

남의 집 남자도 종연이 애쓰는 모습이 보이는데 손임의 눈에는 안 보이나 보다.

종연은 서둘러 아이들 저녁과 김차장과 먹을 저녁을 따로 준비했고 식사 후 김차장은 늦은 저녁에 귀가했다.

종연 집의 넓은 거실엔 인라인 스케이트와 퍼즐, 블록, 인형, 색연필, 책들이 빼곡히 늘어져 있었고 부엌은 급하게 요리한 흔적들로 산더미 같은 일감이 버티고 있었다.

손임은 하품을 하며 말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난 먼저 들어가서 잘게.”

종연은 단호하게 말했다.

이제 그냥 넘어가는 착한 아내는 없다.

“무슨 소리예요. 식탁 정리하고 설거지해야죠.”

손임은 어림없다는 듯 말했다.

“내일 출근해야 해. 지금 치우면 난 언제 자라고..”

종연도 지지 않았다.

“나 혼자 하면 오래 걸리지만 같이 하면 한 시간도 안 걸려요.”

손임은 이제껏 써먹었던 기술을 발휘했다.

“그럼 조금만 누웠다가 할게.”

평소 같았으면 종연은 이쯤에서 손임과의 대화를 끝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종연은 달라지기로 한 터였다.

“누워있다가 바로 잘 거잖아요.

당신과 나 둘 중에 누가 더 피곤하겠어요.

당신이 밥을 했어, 빵을 만들었어요?

커피 내리라고 부탁한 것도 일일이 내가 다 해줬잖아요.”

손임은 종연의 태도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오늘 교회 다녀와서 당신이 한 게 뭐죠?

누워서 티브이 보고 전화받고 손님 온다고 알려주고 빵 만들 수 있냐 부탁하고 밥 차리라고 했네요.

당신이 김차장이랑 차 마시고 밥 먹고 얘기할 때도 난 계속 애들이 소환해서 정신없었는데, 알고 있었어요?”

손임은 슬슬 화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말투가 왜 그래? 기분 나쁘게 이런 식으로 말할 거야?”

“말투 잡고 늘어지지 말아요.

내가 오늘 뭐 했는지 들여다보긴 했어요?

오늘 애들 손님 온 건 알아요?

날 사랑해서 결혼한 건 맞아요?

어쩜 그렇게 자기만 생각해요?”

손임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갔다.

종연은 이렇게 싸움을 끝낼 수 없었기에 아이들이 행복이 방에서 영화 시청하는 것을 확인한 후 안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더 이상 나중으로 미루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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