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이혼서류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살잖아요 36

백년손님 백년종년

by 사라최


>> 며느리 엿 먹이기



다음 해 여름 방학이 시작되고 종연과 아이들은 1년 만에 한국행에 올랐다.

한국으로 가는 길은 험난하지만 경쾌하다.

인천 공항에 도착한 기쁨이가 눈을 감고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으음~ 역시 한국은 공기부터 다르다니까~”

모두들 동의한다는 듯 숨을 한껏 들이마신다.

애국자 가족 나셨다.


시댁에서 지낸 지 일주일 되는 날 종연은 몸 상태가 좋지 않음을 느꼈다.

빨리 눕고 싶은데 할 일이 많다.

빨래를 널어야 했고 당장 내일부터 먹을 음식이 없기에 장을 봐 놓아야 했다.

종연은 어머님께 빨래를 널어 주십사 부탁했다.

이런 부탁은 잘 안 하는 종연이지만 오늘은 도움이 필요했다.

“어머님. 5분 후에 빨래가 끝나요. 빨래 좀 널어주세요.”

하지만 어머님은 별말씀이 없으셨고 종연은 재차 부탁했다.

“어머님 시간 되시면 꼭 부탁할게요. 정 안되시면 놔두세요.”

어머님께서 작은 소리로 마지못해 대답하셨다.

“내가 널 수 있을지 모르겠네. 일단 알았다.”

어머님은 요즘 들어 여러 가지 상황에서 못마땅했던 며느리가 본인에게 일을 시키니 기가 막혔다.

며느리가 아픈지, 힘든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다 맘에 안 든다.

종연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마트에 갔다.

마트에 가기 전 급하게 진통제를 먹었지만 몸은 점점 시들시들 주저앉는다.

무거운 짐을 들고 집에 도착한 종연은 건조대에 빨래가 없는 것을 보고 맥이 풀렸다.

어머님은 주무시고 계셨다.

종연은 도저히 빨래를 널어놓을 기력이 없었고 아이들과 함께 일찍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종연은 잠들어 있는 행복이에게 외출한다고 살짝 귀띔한 뒤 병원에 다녀왔다.

주사를 맞고 처방된 약을 먹으니 기분 탓인가? 컨디션이 변해가고 있음을 느꼈다.

‘역시 감기에는 주사가 직빵이지. 한국 병원이 최고라니까.

맞다. 빨래… 쉰내 나겠다. 확인하고 다시 빨아야지.’

하지만 집에 오니 분위기가 이상하다.

아이들은 모두 깨어 있었고 빨래도 널어져 있었는데 너무 어설프게 뭉쳐져 있었다.

그때 행복이가 오더니 종연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엄마. 할머니가 우리한테 빨래 널라고 시켰어.

그런데 엄마가 너무 못됐다고 우리한테 막 욕했어.”

종연은 연세가 올해 75살이신 어르신이 이렇게 유치할 수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났지만 평소 며느리를 무급 종년으로 생각했던 분이시라 크게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아.. 행복이 그래서 속상했구나.

할머니께서 너무 힘들어서 그랬나 보다. 괜찮아. 마음 풀어.”

행복이는 기쁨이와 사랑이도 함께 엄마에 대한 안 좋은 말을 들었다는 게 너무 걸리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할머니가 우리 앞에서 엄마 욕을 해서 기분이 너무 안 좋아..”

종연은 본인은 제쳐 두고서라도 아이들이 괜한 상처를 받은 것이 속상했다.

“괜찮아. 엄마가 기쁨이랑 사랑이한테도 잘 얘기해 둘께.”

생각해 보면 며느리가 작년부터 본인 아들을 부려먹는다는 생각을 계속하고 계셨기에 어머님의 이런 모습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행동이리라.

이후 종연은 어머님과 어떤 종류의 대화도 하지 않았다.

이제 종연은 자신을 하대하는 사람은 설령 시어머니라도 대접해 주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사나흘쯤 지난 오후… 종연이 아이들과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을 때 손임에게 전화가 왔다.

“자기야. 아이들이랑 잘 지내지? 지금 뭐 해?”

“점심 먹고 있어. 아이들이 계속 오고 싶어 했던 떡볶이 뷔페집이야.

애들이 정말 좋아하네.”

“그래 맛있게 먹어.”

종연은 아이들과도 화상 통화를 시켜주고 밖으로 나왔다.



“뭐라고? 어머님 정말 기가 막히네.”

어머님은 종연이 손임과 같이 있을 때는 본인을 잘 대접해 주지만 손임이 없을 때는 태도가 돌변해서 같이 지낼 수 없다고 얘기한 모양이다.

“다른 얘기 없이 그 얘기만 했어?”

“그래. 그 말씀만 하시던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종연은 빤히 보이는 어머님의 속내에 혀를 내둘렀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인 자신에게 일을 시킨 주제에 미안한 기색은커녕 투명인간 취급을 하니 아들에게 공을 넘긴 것이다.

빨래 얘기는 쏙 빼고 말이다.

종연은 손임에게 자초지종을 말했지만 손임은 믿지 않는 눈치였다.

자신의 엄마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종연은 역시 연륜은 부정적인 방향으로도 무시 못할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머님은 일흔 살이 넘는 깊은 연륜을 며느리 엿먹이는 데 발휘하셨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누구나 이혼서류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살잖아요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