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손님 백년종년
손임이 6주 후 남원으로 왔다.
손임은 조심스레 종연에게 말을 꺼냈다.
“형이랑 엄마가 자기에 대해 너무 안 좋게 얘기하더라고.
난 자기한테 들은 말이 없으니 ‘직접 물어본다’ 했어.”
종연은 마주친 일이 없는데 무슨 일인가 의아했다.
“어머님께서 자기랑 같이 있을 때 보자고 하셨잖아.
그래서 만나 뵌 적이 없는데 무슨 소리야.”
손임은 그럴 줄 알았다는 식으로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자기야 아무리 그래도 며느리가 1년 만에 한국에 왔으면 같이 지내지 않더라도 먼저 가서 같이 식사도 하고 분위기도 잘 풀어보지 그랬어.”
종연은 웃기지도 않았다.
‘내가 왜?’ 쫓아내실 땐 언제고 말이다.
“먼저 날 보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신 건 어머님이야.
난 나에게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날 내친 분한테 조금의 친절도 베풀고 싶지 않아.”
손임은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그래. 맞는 말이야. 그래도 행복이를 우리 대신 1년 동안 잘 돌봐 주셨잖아.
적어도 고마운 마음은 표현해야지.
이번에 고맙단 말 한마디도 안 하고 쌩~ 가버렸다고 엄마가 너무 화가 나셨어.”
“고맙다는 말을 안 해서 역정을 내셨다는 거지?
우리한테도 딸이지만 어머님한테는 손녀잖아.
옆집 자식도 아니고 손녀를 돌보시는데 그렇게 고맙단 인사가 필요한 거야?
난 삼시 세끼 정성스레 차린 밥에 고맙단 말 한마디도 못 들어보고 옷 사드리고 선물 사드렸을 때도 되돌아오는 감사의 인사는 없었는데 왜 어머님은 본인한테는 진심을 담뿍 담아서 고마워하고 미안해하길 바라는 거야?”
손임은 종연이 이전에 시댁에서 자기가 하는 모든 일은 당연한 거냐며 아무도 자신한테 격려와 지지 없이 바라기만 하냐고 투정 부렸던 것이 생각났다.
손임은 그때 그가 했던 말을 주워 담고 싶었다.
“당연히 며느리니까 하는 거지. 고맙다는 말을 꼭 들어야 해?
우리 엄마랑 형은 무뚝뚝해서 그런 말 잘 못해. 자기가 이해해”
그가 뿌린 말의 씨앗이 지금 큼직한 열매가 되어 돌아왔기에 손임은 종연에게 할 말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종연은 뭔가 생각난 듯 계속해서 말했다.
“어머님 다른 말씀은 없으셨어?
나 기침이 너무 심해서 가래랑 콧물에 피 섞여 나왔다고 말했던 거 기억나지?
열에 들떠 기침하면서 시댁에 도착했는데 어머님께서 나한테 뭐 시키셨는지 알아?”
손임은 불안했다.
엄마가 아픈 애한테 뭘 시킨 걸까…’
“행복이 방이랑 화장실 청소 시켰어.
장거리 비행하고 도착하자마자 청소하는데 서럽더라.
마치 행복이 엄마의 몫을 남겨두신 것 같더라고.”
손임은 청소 이야기는 입 밖에도 꺼내지 않은 엄마의 의도가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난 어머님이랑 같이 지내지 않을 거니까 더 이상 부딪힐 일이 없기 때문에 자기한테도 말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는데, 내가 또 괜한 배려를 했네.
어머님은 본인에게 유리하고 며느리한테 불리하게 싸악 포장해서 아들들한테 며느리 험담을 제대로 하신 거야.
이제 더는 놀랄 일이 남지 않았는 줄 알았는데 어머님 참 대단하시다.”
아내의 말에 손임은 삐걱거리는 마음을 붙잡고 생각에 잠겼다.
엄마가 부끄러워서일까?
엄마를 부끄러워하는 자신이 미워서일까?
엄마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는 아들의 이기심 때문일까?
손임은 안 맞는 퍼즐을 억지로 끼우는 것 같은 불편함을 느꼈다.
손임은 종연을 온전히 이해하고 보듬어 주고 싶었지만 그 사이에 낀 커다란 엄마의 존재로 인해 그 어떤 할 말도 찾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