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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Prague (feat. Praha)

새해에도 크리스마스 마켓을 찾으신다면

by 결 May

기차가 어디로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그 기차에 올라타겠다고 결심하는 거지_폴라익스프레스


Prague라 읽고 Praha라 부른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프라하'가 훨씬 익숙한 이곳. 유럽 국가들 중, 비교적 저렴한 물가에, 아기자기하고 예쁜 도시. 프라하가 싫다는 한국 여행객은 찾기 어려울 정도다. 특히, 한 달 살기 여행자들의 비율이 매우 높은 이곳. 나도 기회가 된다면...

더군다나, 크리스마스이전에 대부분의 크리스마스 마켓이 문을 닫고는 하는데, 이곳 프라하만큼은 닫지 않는다. 무려 2022년도엔 1월 6일까지 마켓을 오픈했다.


프라하에서 오랜 친구를 만나다.


10여 년 전, 캐나다에 처음 도착했을 때, 고등학교에서 만난 친구다. 스페인에서 교환학생으로 우리 학교에 온 이자벨이라는 친구인데, 현재 프라하에서 한 달간 출장을 와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2015년에 교환학생을 마치고 스페인으로 떠난 이후,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당시 영어도 서툴고, 캐나다 문화에 익숙지 않았던 나를 정말 많이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며 도와준 친구다. 같이 운동하자며 가기 싫다는 나를 이끌고 눈이 잔뜩 쌓여있는 날에도 헬스장을 가고, 아시아 애들은 노출이 없는 옷을 입는다며 쇼핑몰로 데려가 이 옷 저 옷 입히기도 했던 친구다. (가슴골이 보이는 원피스를 골라줬지만, 결국 나는 사지 못했다.) 아시아 사람들은 왜 남자들과 쉽게 관계를 맺지 않는다며(?) 자신의 파트너도 자랑하던… 정말 나에게 있어서는 파격적인 친구였다.

2014년의 Isabel

그렇게 수년의 세월이 흘렀고, 우리는 캐나다도, 한국도, 스페인도 아닌 프라하에서 다시 만났다. 멀리서부터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고, 지나간 세월이 무색하게도 함께 나눌 대화들이 끝이 없었다.

10여 년 만에 프라하에서 만난 우리

스페인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뉴욕에 있는 콜롬비아대학의 대학원을 졸업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드리드에 있는 회사에 취직해 프라하로 출장을 온 것이라고 했다. 같은 세월을 살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열심히 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정말 멋있다고 연신 박수를 쳤다. 물론, 고등학생이 스페인에서 캐나다로 1년이나 교환학생을 올 정도면 꽤나 엘리 트였다는 게 분명하지만, 한 번도 내색한 적이 없었기에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가벼운 만남이라며 파트너라 소개했던 이자벨의 전남자친구는 무려 7년이나 인연을 지속했다고 한다. 이윽고 현재 하고 있는 일은 정말 별거 아니며, 여행을 다니는 네가 더 대단해라고 말하는 이자벨을 보며, 말은 또 이렇게 해도 정말 멋진 일을 하고 있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녀는, 스페인 특유의 능글거림과 여유로움이 섞인 겸손을 늘 비추고는 했다. 10여 년 전의 나는, 그것들을 곧이곧대로 믿었지만, 지금의 내 눈엔 그 겸손 사이로 그녀의 빛나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가 추천한 프라하의 오래된 즉석사진기를 찾아갔다. 나오는 데에만 5분가량 소요가 되는, 아주 느리고, 낡은 사진기였다. 요즈음, 한국에선 인생 네 컷이라며 즉석 사진이 유행인데, 딱 그 인생 네 컷의 빈티지 버전이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 낡아도, 변하지 않는 점이 우리 우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잠시 머물다 갔다.


Happy New year Christmas


앞서 말했듯, 나와 민이는 크리스마스 당일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여행지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 발견한 곳이 바로 프라하다. 지난 11월에도 방문을 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크리스마스의 흔적도 없더니, 새해에도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려있다는 게 아닌가. 드레스덴을 거쳐, 프라하로 긴 시간의 기차를 달려 프라하에 도착했다.


프라하에 크리스마스의 흥겨움이 가득했다. 독일과는 다르게 글루와인을 종이컵에 줬기에 조금 아쉬웠지만, 대신 다른 기념품을 둘러보기로 했다.


달달한 간식을 좋아하는 민이를 위해, 굴뚝빵을 추천해 줬다. 굴뚝모양의 이 빵은, 사실 이전에 내가 먹었을 땐, 하나를 다 먹기가 버거웠는데, 민이랑 먹으니 순식간이었다. 민이는 연신 입맛을 다셔대며, 프라하 여행 내내 굴뚝빵 노래를 불렀다. 맥주보다 굴뚝빵을 좋아했다.


왜인지 모르겠으나, 크리스마스 당일 괜찮은 숙소들이 모두 굉장히 저렴했다. 에어비앤비에서 우리가 묵은 숙소에 '평소보다 70% 이상 저렴하다'라며 큰 문구가 뜰 정도였다. 그럴 법도 한 게, 바로 중앙에 위치한 숙소이고, 복층에 깨끗한 숙소였다. 화장실은, 호텔화장실 보다 훨씬 좋았다. 독일만 하더라도 이런 수준의 숙소라면 1박에 몇십만 원을 훌쩍 넘을 숙소였다. 그런데 이런 숙소가 10만 원도 하지 않는다니? 크리스마스 당일엔 프라하의 숙소가 저렴한 것인지, 유독 이날만 그랬던 것인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 (현재 이 숙소는 더 이상 에어비앤비를 운영하지 않는다.)


저렴한 물가덕에 배가 터지도록 스테이크를 먹고, 맥주를 마셨다. 어디를 가도, 작게라도 마켓들이 존재했다. 비록, 민이의 눈에 들어오는 것들은 오로지 굴뚝빵 같았지만 말이다.


필스너와 코젤다크가 유명한 프라하에서, 코젤다크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나는 (한국에서 제일 친한 친구가 사랑하던 맥주다) 코젤다크를 연신 마셔댔다. 아쉬운 건 흑맥주와 일반 맥주를 섞어주는 Half & Half를 마시지 못했다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당일, 노을이 유명한 프라하에서 나는 구름 가득이라는 일기예보를 보고도 민이와 언덕을 올랐다. 저 멀리 작게나마 보이는 붉은 노을에, 민이는 내 손을 꼭 잡고 조용히 기도했다. 그냥, 우리가 앞으로의 우리를 위해, 다가오는 새해를 위해, 그리고 서로를 위해.

마치 하늘은, 우리의 기도를 듣고 있다는 듯, 점점 하늘을 빨갛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흐려 예쁜 노을은 볼 수 없을 거라던 일기예보와는 달리, 나는 태어나서 제일 예쁜 일몰을 2022년 12월 25일, 프라하에서 민이와 함께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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