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한 도시의, 힙한 크리스마스. 그리고 사랑
There are a million reasons why we can’t, but I love you. _ Elemental
우리가 안 되는 이유는 백만가지지만, 난 너를 사랑해 _ 영화, 엘리멘탈
베를린, 하면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든다. 나는 이곳에서, 가장 오래 머물며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크리스마스 마켓마저도 힙하게 느껴지는 이곳은, 독일의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제일 유명한 나라가 독일인데, 그래서인지, 베를린은 도시 자체가 크리스마스가 된 느낌이 강했다.
장거리 연애가 베를린에서 시작이 되었다. 힙스터들의 성지라지만, 힙찔이인 우리가 말이다. 우리는 안 되는 이유가 백만 가지였다. 정말로. 일단 첫 번째, 나는 캐나다에 산다. 민이는 독일에 산다. 사실, 이 이유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연애라는 항목을 우리 사이에 끼워 맞추기엔 큰 무리가 있었다. 어마무시한 국제 장거리였으니까. 그뿐인가, 우리의 나이차이는 꽤 극단적이었다. 5살. 다섯 살이 뭐 별거라고, 그러지만 나에게는 한 없이 큰 숫자였다. 내 밑으로 쌍둥이 동생들이 나랑 세 살 터울인데, 다섯 살이라니. 심지어 내가 나이가 더 많다니. 연하라는 선택지 자체가 없던 내 인생에,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는 듯이 불쑥 나타난 민이었다. 애당초 연애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지 않았다. 나는, 현재의 인생이 너무 즐거웠고, 나는 이미 너무 바빴다. 연애에 시간을 투자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던 내게 나타나 나를 흔드는 네가, 나는 썩 달갑지는 않았었다.
베를린에서 보낸 크리스마스는, 우리의 기도나 다름이 없었다. 함께 보내는 첫 번째 겨울, 첫 번째 크리스마스. 나는 크리스마스를 마지막으로, 이 길고도 길었던 유럽 여행에 잠시 쉼표를 달 예정이었다. 예정해 두었던 예산은 바닥을 보였고, 예정해 두었던 시간도 끝이 났다. 물론, 이마저도 중간에 민이와 함께하기 위해 많이도 변경되었던 계획들이었지만. 분명한 건, 크리스마스 이후, 우리의 행보는 불명확했다.
내가 얼마나 더 자주, 민이를 보러 올 수 있을지 모르며, 그것은 민이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 도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지금 당장이야, 좋아죽겠지. 나중엔? 나는 가볍게 불같은 연애를 할 시간이 없었다. 만약 만난다면, 진지하게 미래를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을 원했다.
베를린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워낙 컸고, 큰 만큼 다양한 글루와인의 컵들이 존재했다. 우리는 그중 예뻐 보이는 컵에 담겨있는 글루와인을 구매했다. 글루와인을 구매할 때, 컵의 보증금을 미리 받는데, 기념으로 가지고 싶다면, 보증금을 돌려받지 않고 집으로 가져가면 된다. 나는 그렇게 총 서너 잔의 컵들을 가지고 왔다.
맛은 내 스타일이 영 아니었지만, 따스한 와인을 한 모금하고 있노라면, 살짝 취기가 올라왔다. 블랙핑크 멤버들이 베를린의 마켓에서 탕후루를 사 먹었다는데, 나는 영 찾지를 못했다. 하지만, 꽤나 맛있는 먹거리가 많아 입은 심심하지 않았다. 특히, 독일에서는 감자튀김을 마요네즈에 먹고는 하는데, 이게 정말 별미다. 나는 내 이생 감자튀김을 독일에서 만났다. 그 외에도 먹을 것들이 넘쳐난다. 먹고 싶은 음식들이 한가득인데, 배가 너무 불러 먹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왕이면, 굶고 가자.
시린 겨울 한가운데에 서서,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마켓을 보고 있노라면, 그려지지 않던 우리의 미래가 그래도 조금은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바쁜데, 바쁜 와중에 장거리면 오히려 좋지 않나? 애매한 장거리도 아니고 확실한 장거리면, 못 봐서 감정이 상한일도 적을 것이고, 시차가 있다면 오히려 본인의 일에 더욱더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데이트 비용을 아껴, 서로가 살고 있는 나라로 여행도 다니며, 오히려 매일 만나는 연인보다 더욱더 값진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당장 내일의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에, 괜히 마음의 문을 닫을 필요는 없었다. 한 겨울, 크리스마스의 조명이 눈이 부시도록 빛나던 베를린에서, 나는 우리가 안 되는 이유를 백만 가지나 찾았지만,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