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에 관하여

by 혜윰

나는 어릴 때 기다리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바꿔 말하자면 나는 어린날의 패배자였다.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라고들 하지 않던가? 밥을 먹을 때, 누군가를 기다릴 때, 시험을 치를 때의 대기시간, 병원 대기시간 등이 다 기다림에 속한다. 밥을 먹을 때는 윗 사람, 즉 할아버지께서 수저를 먼저 집어드실 때까지 그 누구도 수저를 먼저 집어들지 않는것, 시험칠 때(국가자격증, 수능 등) 응시대기시간이 너무 힘겹고 지루해도 끝가지 기다리는 것, 인기가 많은 식당에서 대기 인원이 80명이라 나도 그 '웨이팅' 대열에 합류해야 할 때 등 말이다….


그렇다, 기다린다는 것은 잠시 쉬어감을 말한다. 세상에는 기다림이라는 쉼이 없는 상황은 일체 없으며, '그'의 연속으로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그 어린날 나는 그 기다림이 싫어서 이를 무시하였고, 결국 세상의 이치를 져버렸다. 예를 들어 '급식줄 새치기'가 그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다른 아이의 차례를 범하는 중대한, 그 아이의 차례를 무시해버리는 '중대한 인권침탈행위'를 했기에 지금은 그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하지만 그 때 당시에는 나의 새치기에 대해 스승과 친구들의 지적을 받음에도 이 행동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 하였다.


그때는 너무 악랄했고, 나 중심적이었다. 늘 나만 생각하고, 다른 이의 인권은 생각하지 않았다. 모름지기 기다림에도 때가 있지 아니한가? 수많은 친구들과 스승의 진심어린 지적에 어느날 나는 버쩍 정신을 차렸다.내가 기다리지 않고, 새치기 하면 다른 시람들은 나로 인해 자신의 차례를 빼앗기고 무한정에 가까운 시간을 또다시 기다려야만 한다. 이건 정말 남들 입장에서 기분 나쁘고, 불공평한 상황이다. 누구는 정말 '뼈빠지게' 기다리는데 나 혼자 먹겠다고 찰나에 남의 순서를 취하는 못되고, 양심을 져버리는 악랄한 행동이 미칠 부정적인 파급력을 그때는 생각하지 못 했다. 어리석은 이야기이지만, 나는 그 순리를 뒤늦게 깨달았다. 그때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이다.


대학생 막학년이 된 지금은 나는 기다림을 시험 때 기다리는 시간을 제외하고(그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진짜 기다리기만 해야 한다!) 모든 기다림을 예술로 취급한다. 특히, 식당 웨이팅 시간에서의 기다림은 더 드렇다. 시겟바늘의 박자에 맞춰 꼬르륵거리며 기다릴 때 마다 나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자유감을 느낌과 동시에 기다림의 미학을 느낀다. 그 미학이란 뭘까?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내가 누릴 최고의 순간을 잠시 염원하며,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렇다. 기다림이라는 시간 속에 나만의 시간을 갖는 일은 너무나도 고고한 행위이다. 그렇다. 누구에게나 쉼은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다림이라는 시간에 쉼의 자세를 가져야 하며, 결코 '조바심'을내면 안된다.


무언가를 위해 기다릴 때 우리는 막연하게 가만히 있지 않아야 한다. 평상시 읽지 못 했던 책을 읽을 수도 있고, 기다리는 공간에 책상이 놓여 있다면, 그림을 그리거나 미처 완성하지 못 했던 원고를 마저 써볼 수도 있다. 무언가에 집중하면 기다리는 시간이 결코 지루하거나 따분하지 않다.

막연히 가만히 앉으나 서나 하염없이 시계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간에 글을 쓰고, 시를 읽고, 책을 읽고, 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어느새 나의 차례가 되어 있다. 나는 이 순간이 너무 즐겁다. '쉬는 시간'의 탈을 쓴 기다림에 나만의 시간을 맘껏 누리고, 마침내 기쁜 마음으로 내 차례를 맞이하는 보상이야말로 값지다.

조바심에 못 겨워하는 사람들이여 잘 들으라. 누군가는 말했다.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며, 그 누구도 이를 피해가지 못 한다." 나는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을 말 했다. 그러니 거기에 덧붙여서 이 외마디만 하겠다.

"부디 뭘 해도 좋으니 조금만 기다려라!"

P,S: 어쩌면 기다리는 사람 중에 백옥 같은 캔버스를 들고 나타난 고독한 화가가 자신의 초상화를 멋지게 구경하는 모습을 넋놓고 구경하는 것도 좋은 기다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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