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같이 한가위만 같다면?

by 혜윰

옛 격언 중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있다. 이 격언은 예로부터 온 겨례가 물질적, 정신적으로 풍족한 삶을 염원하는 데서 나온 말이다. '한가위'는 어떠한가? 그날 만큼은 가족들과 가까운 친족부터, 심지어 8~9촌 먼 친척들 까지 먼 곳에서부터 한 집에 모여들어 다 같이 지지고 볶고, 왁자지껄 떠들 수 있는 유일한 날이다. 그래서 대개 외국사람들이 보기에는 한국 사람들이라면 하나 같이 설, 추석과 같은 대명절을 기다리는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이에 반론을 제기하고자 한다. 명절은 고생의 장이다. 주부들은 그 누구도 명절을 싫어한다. 주부들 입장에서 쉬는 날에도 시댁에 가서 전, 튀김, 생선 따위를 지지고 볶느라 하루종일 진땀을 뺀다. 그것이 우리네 어머니들의 모습이다.

그렇다. 매일 같이 한가위만 같다면, 어머니들은 경을 칠 노릇일 것이다. 아니, 그렇다. 매일 같이 한가위만 같다면,오늘날 한국의 어머니들은 그들의 시댁에 '불려나가' 시어머니, 즉 할머니의 온갖 꾸중과 핍박 속에 가사노동을 한다. 전을 부칠 때에도 손목이 쓰라려오며, 머리, 허리가 지끈지끈하는 등 '명절 증후군'에 시달린다. 심지어 명절 때 받은 각종 정신적, 육체적 고통 및 핍박에 대한 한(恨)을 차마 시댁 식구들을 향해 표출 할 수 없으니 차라리 이들의 고통을 무관심해하는 남편과 자식에게 표출하는 안타깝고 가련한 어머니들이다.

엄마는 말로는 명절이 즐겁다고 하셨다. 당시 단짝 같은 큰어머니와 음식을 하면서 대화의 꽃을 활짝 피우는 것을 즐거워하셨다. 그리고 당신이 하신 명절음식을 우리 사촌 5형제가 나눠 먹는 모습을 할머니보다 더 흡족해 하셨다. 하지만, 그게 엄마의 다였을까? 아니다. 분명 엄마는 명절에 대한 어두운 면이 있었다. 분명 엄마는 명절을 힘들어 하셨다.

그때 왜 몰랐을까? 그 시절 나는 명절이 좋아서 그 날을 손 꼽아 기다렸지만, 우리 엄마는 명절을 싫어하셨다. 물론, 할머니께서 온화하셔서 별 다른 핍박을 거의 주시진 않았지만, 엄마 스스로 마음속으로 명절을 힘들어 하셨다. 그때 내가 맛있게 먹었던 새우튀김, 쥐포튀김, 생선전, 고구마튀김들이 모두 엄마의 쓰라린 눈물이었다. 엄마는 명절 때 마저 쉬는 날도 없이 할머니와 함께, 아니 할머니보다 더 명절 음식과 갖은 일을 해가며 한강수 처럼 흐르는 설움을 어찌 억눌렀을까.

하지만 9살, 어린날의 나는 엄마의 설움을 외면한 채 그저 사촌들이랑 천진난만하게 먹고 놀기만 했다. 그리고 엄마한테 대못을 박는 말을 했다. "엄마, 새우튀김 더 없어요?" 아마도 엄마는 이 말을 듣고 속으로 경을 쳤을 것이다. '이때까지 뼈빠지게 고생했는데 나더러 또 하라고?' 이렇게 말이다. 그 힘듦이 엄마의 단호한 으름장으로 나왔던 것이다. "안돼"

그 9살 때의 나는 엄마의 마음을 읽지도 못 하고, 그저 더 만들어달라고 떼를 썼다. 왜 그랬을까? 14년전이지만 지금은 "안돼"라고 말하는 엄마의 아픔을 누구보다 안다. 그게 자식의 도리이기 때문이다.

엄마가 명절동안 얼마나 아파했을 지 안 나는 더이상 명절을 기다리지 않는다. 할머니는 노골적으로 엄마를 괴롭히지 않으셨지만(오히려 할머니는 "○○(엄마 이름)아 인자 들어가 쫌 쉬라!!"라고 엄마한테 쉬어라고 하셨다), 엄마 나름대로 그 고생을 혼자서 감내하고 있었다. 철 없는 그 유아기때의 나는 그저 엄마의 눈물로 만든 튀김을 받아먹고만 있었다.

매일 매일 한가위만 같다면 엄마는 축적된 스트레스와 근육통으로 죽어나갈 것이다. 당신의 건강, 몸을 돌보지 못 한채로. 나는 엄마를 정신적으로 죽이는 이런 명절의 실상이 이제는 원망스럽다.

이제는 엄마의 명절을 지켜드리고 싶다. 비록, 모이는 명절은 할머니께서 제사를 중단하시며 끝이 났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고생했던 그 세월만큼 엄마의 명절을 돌려드리고 싶다. 꼭 엄마의 소중한 휴일을 지켜드리고 싶다. 엄마의 얼굴에 강줄기 같이 피어 오른 깊은 주름에 선명히 쓰여 있다.

"하루하루가 힘들다. 이제는 쉬고 싶다."

그리고 나는 후회한다. "아아!! 그 때 설거지라도 해드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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