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유

by 혜윰

나는 23년째 모태솔로이다. 태어나서 이성인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이 없었다. 제대로 된 이성 친구를 만난 적도 없었고, 감정을 터놓고 이야기 해 본적도 없었으며, 심지어 손도 잡아본 적도 없었다. 철 없던 중, 고등학생때는 나도 한번 연애라는 것을 해보고 싶었다. 누군가와 손을 잡는 망상 아닌 망상을 하였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대학생이 되고나서 갖가지 공부와 알바 때문에 시간과 여유가 남아돌지 않아서 그런 생각을 집어치웠다. 하지만 최근 알바 정리해고 당하고 졸업까지 겹치자 여유가 생겨났고 급기야 철 없던 학창시절 때 했던 생각들이 다시 피어올랐다. 나는 현실을 무시한 채 '가족 말고는 아무에게도 관심과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는 비참한 사람이구나' 라는 터무니 없는 주문을 외웠다. 솔직히 이런 주문 따위를 외우면 누군가가 걸린다. 바로 하나 밖에 없는 단짝 친구와 새해 정월마다 놀러다녔던 형 친구들이 나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런 주문을 들으면 한심해 할 것이 뻔해서 요즘은 자제하려고 하지만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오랫동안 연애를 갈망해왔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도 '분홍빛 연애를' 갈망하고 있다.

그런데 그 순간 그런 나의 뒷통수를 치는 존재가 하나 있다. 바로 '자유로울 권리'라는 하나의 이념이다. 그 이념 또한 내가 열렬히 갈망하는 소원이다. 나는 자유를 사랑한다. 나는 자유롭게 그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고, 화창한 날 프랑스 샹젤리제 거리 (혹은 독일 브란덴부르크 문 앞)를 거닐며 바게트 빵(혹은 잘 익은 프레첼) 을 뜯어먹는 청춘의 낭만을 생각하곤 한다. 이렇게 자유로운 상황을 생각하면 연애 생각 때와 마찬가지로 도파민이 활짝 피어오른다.(사실 연애 생각 하면 자격지심 때문에 기분이 나쁘다) 어릴 때부터 나는 누구에게 예속되어 있는 상황을 싫어했다. 그리고 청소년기에는 누군가와의 연애를 꿈꾸면서도 내 또래 친구들이 게임하고 소설책을 볼 때 나는 도서관에 틀어박혀서 여행서적만을 탐독했다. 언젠가는 자유로운 영혼 되어 세계 만방을 유랑하는 나그네의 삶을 꿈꿨다. 여행은 나에게 또다른 세상을 보여주고, 생생하고 신선한 배움을 선물해줄 것이라고 믿었다.(물론 지금도 그 가치를 굳건히 믿고 있다.)

그러고 보면 연애하고 싶은 갈망과 자유에 대한 갈망은 서로 부딪힐 수 밖에 없는 양가감정이다. 이런 양가감정은 나를 괴롭게만 한다. 생각해보라. 나는 그렇게도 자유를 원하는데 마음 한켠에는 누군가에게 사랑 받기를 원하다니!! 이야말로 황당무계한 모순일 리가 없다. 나는 한번도 이성과의 사랑을 경험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사랑=구속과 예속'이라는 인식이 굳건히 깔려있다. 그렇다. 내가 '사랑'이라는 가치를 선택하는 순간 내가 바라고 꿈꿔왔던 '자유'라는 가치가 삽시간에 물거품이 되고야 말 것이다. 사랑을 택하는 순간 누군가의 '노예'가 되어 나의 모든 인생을 받쳐야 하고, 인간의 엄연한 권리인 여행 마저 그 사람에게 허락을 맡아야 떠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예속과 구속적인 상황을 누가 반기겠는가? 결코 '나는 불굴의 의지로 누구에게 예속되지 않고, 모태솔로로 살면서 나의 소중한 자유를 끝가지 누리다 숭고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하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내가 어릴 적 사랑이란 것을 해보지 못 했다는 강박 때문에 오늘도 이루지 못 할 사랑을 미련하게 곱씹고 있다. 아아!! 남들에게는 쉬운 사랑이 나만 어렵다. 남들은 만남이 쉽고 이별이 어렵다는 말을 하지만 나는 그 반대로 만남이 어렵고 이별은 쉽다고 느낀다. 어차피 영원히 안될 사랑을 끝가지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본다. 어디서 누가 어떤 귀한 집의 딸들이 나 따위를 남자로 보랴!! 이는 내일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나는 아직 어쩌면 영원히 누군가를 책임질 감량이 되지 않는다. 내가 연애하면 그 사람이 힘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사랑은 허황된 과대망상이었다.

나는 사랑을 포기하련다. 사랑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다. 그래서 사랑하고 싶다는 과대망상을 떨쳐버려야 건강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믿기에 그런 과대망상을 '자유의 갈망'으로 승화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누비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려는 것이 내 삶의 목적으로 여기며 살리라.

그리고 미래의 나에게 경고한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호감의 표시를 보내오면 이를 과감히 무시하라. 이는 속박과 노예의 경종이 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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