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로부터 배우는 경제관념
코이케 류노스케의 저서 「덜 갖는 삶에 대하여」를 읽는다. 책을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가져본다. "과연 '우리는 유한한 자원인 돈을 과연 올바르게 쓰고 있을까?' 돈은 양면의 얼굴을 하고 있다. 올바르게 쓴다면 내일모레 의식주를 해결해주지만, 해롭게 쓴다면 '내일의 나'를 생각하지 않는 이기심으로 인한 화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소상히 내 과거 경험을 조심스럽게 꺼내본다. 나는 남보다 과다한 식욕을 타고 났다. 이를 족하게 하기 위해 나는 사흘들이 생기는 돈마다 펑펑 써댔다. 예를 들어 나는 오늘 7천원짜리 돈까스 정식을 사먹었고 그 다음날에는 1만5천원짜리 피자, 그다음 날에는 6천원 짜리 햄버거세트를 먹은 식이다. 이렇게 되면 사흘 동안 2만8쳔원을 소비한 셈인데 이정도 돈이면 돈까스를 17개 만들어 먹을 수 있고, 한달 치 반찬을 만들어 먹을 수 있으며, 열흘 동안 저축한다면 28만원이 될 정도의 결코 적지 않은 나 나름대로의 '거금'이다.
그런 거금을 나는 마음 내키는 대로 '충동적'으로 소비...아니 낭비했다. 누군가에게는 한달 생활비가 될까 말까하는 소중한 돈을 나는 그냥 써버린 꼴이다.
나는 나 자신을 그저 정당화하고 미화하려는 일말의 의도는 없다. 하지만, 이 문제를 인문학적으로 치부하기에는 말이 너무나 많다. 인간은 욕망의 동물, 소위 '호모 크레이비누스(Homo cravinus)'라고 하지 않던가? 욕망이 한도 끝도 없다보니 우리는 10만원을 벌어도 100만원이 고프고, 100만원을 벌어도 1천만원이 고프고 1천만원을 벌어도 1억원이 고픈 법이다.
나는 윌리암슨 같은 심리학 교수 같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어떻게 하면 소비를 줄일지 구체적인 방안과 피드백을 제시하지 않는다. 단지 내가 그런 '악감정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악마'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표상(表狀)하련다. 이렇게 하면 나의 잠들고 있는 사악한 악마를 거의 죽일 수 있는 묘책이 될 것 같아서였다.
여기서 나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꺼내고자 한다. 할아버지는 나의 롤모델 그 자체 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증언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19살 때 돌아가신 증조부께서 물려주신 거금을 거느리고 할머니와 결혼하고 부산으로 넘어와 도시 생활을 시작하셨다. 그 과정에서 거창했을지도 모르는 사업을 시작했으나, 모를 이유로 우리 집안 전재산을 다 날리셨고 3남매를 거느리며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재기를 시도하셨단다. 그 이후는 내가 추측한 할아버지의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할아버지는 평소에 검소하셨고 경제관념이 뚜렷한 분이셨다. 아마도 사업으로 재산을 다 탕진하고 얻은 새로운 가치관이 있으셨을 거다. 할아버지는 그 순간에도 '재산은 크건 작건 함부로 대하는게 아니다. 재산을 다룬다는 것은 나의 얼굴과도 같을 것이요, 나의 인성과도 같다. 즉, 돈은 나의 거울이다'라고 생각하셨으리라. 할머니와 세 자식을 거느리고 가정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할아버지 나름에도 돈을 절약하고 소중히 대해야 인동 장씨 가문이 재기하리라 그런 결단을 내리고 이를 실천하셨을 것이다. 아마도.
할아버지는 그러한 모진 수모가 종전의 경제관념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그런 할아버지의 바뀐 경제관념은 텔레비전을 15년씩 쓰셨고, 20년 묵은 농이 있으며, 17년 묵은 식탁을 집에 두셨다. 그리고 돌아가실 때도 평생 쓰신 돌배게와 각종 구두, 허리띠, 정장을 유품으로 남기시고 떠나셨다. 그럼에도 할아버지께서 제일 아끼셨던 손자들에게는 용돈을 5만원씩 주셨다.
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50일이 지난 시점에서 살아생전 그가 배웠던 경제관념을 다시 생각해본다. 할아버지는 꽁돈 모아가며 집을 사고 옛날 화폐를 모으는 등의 소소한 취미를 하시는 한편 식솔들을 거느리고 한 살림 책임 지셨을 남편이자 아버지, 가장이셨다. 그리고 손주들에게 용돈을 마음을 담아 가득 주셨을 때는 그 돈이 아깝지 않으셨으리라. 할아버지의 경제관념은 확실히 쓸 땐 쓰고 쓰지 않을 때는 절약하자는 건실한 가치가 내재되어 있다.
본론으로 돌아간다. 이런 할아버지를 생각할 때면 손자인 내가 한없이 밉보인다는 생각이 든다. 용돈을 받을 때마다 미래의 나에게 양보하지 않고 써버리는 나를보며 할아버지는 하늘에서 가슴을 치셨을 것이 선하다. 비록 나는 할아버지와 달리 전재산을 한꺼번에 잃는 가슴 아픈 일을 경험하지 못 했지만, 할아버지의 소박한 경제관념을 이제는 닮고 싶다.